뜨개질 은유
나는 어디서 새 심장을 구해야 하나
담당자와 면담을 마치고, 저녁 요가를 하러 요가원으로 향했다. 이번에 맡은 일은 예전과는 다른 성격의 새로운 프로젝트이다.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온통 흐린 하늘에서 눈이 깃털처럼 내리고 있었다. 눈 앞을 어지럽게 하는 눈발과 그렇게 어지러운 마음 한구석을 응시하며 걷고 걸었다.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걸어가는 편이 마음에 들었다. 이십 여분쯤 지나 요가원 근처에 도착했다. 내가 원하는 힐링 프로그램이 시작하려면 아직 한 시간이 더 남았다. 그 사이 눈발은 점점 강해지고 짙어져서 시야를 가릴 정도가 되었다. 눈을 피할 생각으로 근처 카페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사실은 카페에서 해치워야 할 소일거리가 하나 있었다. 가방 안에서 뜨다 만 실뜨개를 꺼내어 코바늘로 한 땀 한 땀 코를 만들어 나갔다.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탓에 코바늘은 자주 실을 놓치거나 엉뚱한 실 그물에 걸렸다. 어울리지도 않게 코바늘 뜨개질을 시작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동네 병원에 갔다가 우연히 뜨개질
공방의 입간판을 보았는데 거기에 실린 뜨개질 작품들이 근사해 보였던 것이다. 배워두면 카드 지갑이나 파우치 정도는 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벼운 생각으로 뜨개질 공방의 문을 두드렸다. 내가 만난 선생님은 친절하고 무엇보다 인내심이 하해와도 같은 사람이었다. 보통 사람들보다 배우는 속도가 훨씬 느린 나를 무던히도 참아주었으니 말이다. 내가 지금 고군분투하며 만들고 있는 건 핸드폰 가방이다. 하필 빨간색의 도톰한 벨벳실을 고른 건 겨울이어서 그렇다. 추운 한겨울에는 빨갛고 따스한 것들이 그리워지기 마련이니까. 그런데 이 실은 숫제 피(血)를 연상하게 할 정도로 붉다. 뜨개질을 하다가 자칫 힘을 세게 주면 실뭉치에서 실이 호로로록 풀려나오는데, 그럴 때는 꼭 사람의 어지러운 혈관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실이 혈관이라면, 실뭉치는 여러 혈관들이 한데 모여 맥동하는 심장에 비유할 수 있을까. 만약 이 실뭉치를 모두 써버린다면, 나는 어디에서 새 심장을 구해야 하나. 새 심장은 과연 나를 사랑하게 만들 수 있나... 또 한 번 코바늘이 실을 놓치고 헛돌았다.
실뜨개를 내려놓고 따뜻한 머그잔을 양손 가득 부여쥐었다. 걸핏하면 차가워지는 손 때문에 도대체 되는 일이 없다. 차를 마시면서 멍 때리다가 다시 실뜨개를 붙들었다. 밖에는 여전히 흰 눈이 펄펄 내리고 있겠지. 거리마다 쌓인 눈은 다시 꽁꽁 얼어붙겠지. 퇴근길 자동차들은 엉금엉금 기어가고, 사람들은 행여 넘어질까 싶어서 발에 힘을 주면서 걷겠지... 나는 실을 힘주어 노려보고 있다. 엉뚱한 곳에 코바늘을 찔러 넣지 않도록, 나중에 실수를 깨닫고 도로 풀어버리고는 이거 못해먹겠다, 짜증 내지 않도록.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 실은 사람의 피가 흐르는 혈관 같다. 이 실로 엮어지는 건 그게 무엇이든 간에 틀림없이 뜨거운 것이다. 어쩌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즐겁다. 손가락은 또다시 차갑게 굳어지고 있지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렇게 서툰 손으로 누군가의 뜨겁고 살아있는 것을 한사코 흉내내는 시간이 조용히 흘러갔다.
2022년 1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