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 시대의 소셜미디어의 6가지 분리적 성격을 중심으로
‘Connet’가 아닌 ‘Separate’
[현실세계와 분리]
유튜브 ‘준비’를 하면서 내방을 스튜디오화 하기 시작했다. 그러기 위해 2가지 종류의 작업을 했다. 하나는 연결. 그것은 장치적으로 조명, 녹음 등을 위해 장비를 구비하는 일이었다. 기술적으로 편집, 효과 넣기를 익히는 일과도 관계를 맺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분리. 유튜브 채널을 위해 어쩌면 연결의 작업보다 분리에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영상에 배경으로 걸리고, 주변부에 결릴만한 내방의 소품들, 그리고 개인물품들을 정리하거나 완전히 이별하는 일들이 꽤 많았다. 초등학교 때의 사진, 고등학교 때의 낙서, 군 시절의 편지, 취준생 시절의 서류들 모두 안녕. 인터넷 세상과 연결되기 위해 나는 현실세계에서 내가 아날로그적으로 쌓아왔던 것들과 분리되고 이별하는 중이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있어 내가 오히려 [현실세계와 분리]되는 과정이었다.
[아마추어와의 분리]
유튜브를 시작하기 전에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사이에는 브런치라는 플랫폼이 나에게 있었다. 영상으로의 내 자아의 표현에 앞서 ‘긴 글’에 대한 욕망이 있었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에서 자기표현 확장을, 어쩌면 자기표현의 완성을 이상화하여 생각했었다. 인스타그램 특유의 지극히 가볍고 캐주얼한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그리고 의미 없는 사회(교)적 성격에 대한 허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나는 긴 글을 통한 그들과의 분리, 선긋기를 노렸었다. 정보 전파적인 성격으로 포장되기도 하지만 스낵 컬처라고 불리는 캐주얼한 콘텐츠들과 대비되는 나만의 권력을 축적하고자 하는 야망으로 브런치를 했었다. 아니 지금도 하고 있다. 지금도 노력 중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10대들과 20대들의 놀이터에서 30줄의 아저씨가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는 것이 더 추잡스럽기 전에 나에게 맞는 플레이그라운드에서 자리를 잡고자 하였던 것이 브런치의 시작의 명분이었다. 브런치 말고도 미디엄도 있다. 그 외에 다양한 칼럼 형태의 전문적 글쓰기가 가능한 플랫폼들이 몇 년 사이 인기를 얻고 있는 것도 내가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이유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청춘의 팔팔한 글쓰기와 ‘안’ 청춘의 뽐내기류 전문적 글쓰기의 서로 간 떼어놓기 작업. 내 마음대로 [아마추어와의 분리]라 해도 되지 않을까.
관종과 더불어 ‘인싸’ 그전에는 ‘힙스터’ ‘힙하다’라는 표현이 미디어에서 자주 사용되었다. 내가 선망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나의 스마트폰 화면에 노출해주는 ‘인싸’들이 방문하는 카페와 맛집, 숙박하는 호텔, 구입하는 옷, 아이템들을 나도 한번 차용하고, 복제하고, 모방해보면서 현실에서의 [非쥬류와의 분리]를 이루어 보고자 하는 노력이 현대에서는 일종의 미디어적 계급화를 이뤄내는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한다. 메인스트림과의 분리에 대한 불안을 그 촉매로 우리는 계속해서 주류에 편승하고자, 또한 끊임없이 비주류들과 자신을 분리하고, 그 갭을 견고히 하고자 애를 쓰고 있다고 나는 분석한다. 분리해내지 않으면 분리당한다는 강제적 위기감으로 말이다. 집에 홀로 남겨두고 온 애완견이 분리불안으로 이상행동을 보이는 것처럼 우리의 행동양식에는 이제 주류문화에서 이탈, 분리당할 것을 두려워하는 불안증으로 이상행동들을 보이고 있는지 모른다. 같은 자리를 이유 없이 맴돌고 여기저기 변뇨를 싸지르며 수습 없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애완견들과 같을지도 모른다.
[진지한 관계로부터 분리]
친인척과의 관계보다도 팔로우를 주고받는 랜선 친구들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부모님의 어색한 칭찬보다 소셜미디어의 인플루언서가 내게 해주는 좋아요와 댓글에 나는 더 기분이 좋아지는지 모른다. 진지한 삶의 얘기를 나눌필요야 없고 서로의 최상의 컨디션에서의 글, 사진, 영상으로 서로를 대한다. 과거의 트라우마를 이해할 필요도 없고 집안의 사정이야 알바 아니다. 그저 요즘 유행하는 새로운 빵집에서는 무엇을 찍어 올려야 좋아요를 더 많이 받을 수 있는지 어떤 구도로 사진을 찍어야 내 얼굴이 더 생기 있고 활기차 보이게 나오는지에 대한 아니면 더 신비적이고 사연 있어 보이게 나올 수 있는지에 대한 감각의 얕은 공유면 된다. 새벽까지 술을 들이붓다 사실은 말이야로 운을 띄우는 비극적 내러티브를 감당하는 것보다 오늘도 흥, 내일도 흥 가볍게, 더 캐주얼하게 실오라기 아슬아슬하게 연결된, 그래서 언제고 끊어내도 서로가 상처 없는 관계가 이제 더 만연하다. 적어도 소셜미디어 소사이어티 안에서는 그러는 편이 더 낫다. 이것은 [진지한 관계로부터 분리]라고 분류할 수 있겠다.
[커리어가 아닌 직장과의 분리]
매일 출근하는 직장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서로의 깊은 사유에 대해서는 공유하는 것이 민폐일 지경이다. 같이 이따금 점심을 함께하는 런치메이트일 뿐, 흡연장에서 어색하지 않기 위한 정도의 농담 메이트일 뿐,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을 때 눈 둘 곳을 몰라 헤매지 않을 정도로 대화 몇 줄 나누는 정도의 근황 메이트일 뿐 진지한 관계로의 발전은 서로가 피곤하다. 직장에서의 관계뿐만 아니라 직장 자체와도 우리는 있는 힘 것 분리해내고자 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에 걸맞은 소셜미디어는 링크드인이 대표적이겠다. 페이스북도 마찬가지의 속성이 있지만 링크드인의 상세한 프로필과 경력란을 가득 채울수록 수많은 헤드헌터와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동시에 회사를 회사로서 객관화하고 언제든 노동시장에 나올 수 있는 상품임을 스스로 각인하는 정리 및 분리 작업이 된다. 이를테면 [커리어가 아닌 직장과의 분리], 커리어에 대한 나의 객관화 작업과 미래적인 준비 작업의 공과 내 안의 숙제에서 인터넷상으로 던저버린다. 보다 서구문화적인 접근을 우리는 링크드인이나 여타 헤드헌터와 링키지 될 수 있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실현한다. 평생직장으로서 입사동기와의, 직장상사와의 가족 같은 끈끈한 정이라는 미명에 구애받지 않아도 된다. 언제든 나는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주머니 속 사표 대신 스마트폰 안에 소셜미디어를 품고 달랜다.
[결국 나 자신과의 분리]
네트워크를 이용하여 네트워크를 이루게 되는 기능으로서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다양한 상호 연계된 플랫폼 간의 재매개 과정을 직접 현시대인으로서 사용, 경험하며 소셜미디어의 분리적 특성에 대해서 서론 한다는 것이 나의 자아표현에 있어서 일정 유의미한 작업이었다. 팔로워 1, 구독자 1과 같이 숫자 1로서 존재하는 기호로서 나의 의미가 끝이 아니라. 미디어 공간으로 억지로 밀어 넣고 소모되어지는 알파벳이며 활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내가 일부 의도한 방향으로의 적극적 활용을 위한 도구로서 소셜미디어를 보다 주체적으로 대하고 있다는 관점의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는 논의였다고 판단한다. 소셜미디어의 기능이 톱니바퀴처럼 굴러가기 위한 일부 부품으로써의 개인이 아닌 사용자로서의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분리의 과정 [결국 나 자신과의 분리]를 통한 객관화가 이 시대 소셜미디어를 이용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필요한 관점이 아닐까 고민해본다.
분리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