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국에 유니클로를 사 입는 나는 매국노인가.

NO재팬’을 강요하는 애국주의를 중심으로

by 민또
7주차_주간과제_52기 광고전공 김민수.jpg [유니클로 매장 앞을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함께 사진이 찍힐까 얼굴을 가려 보였다]

지인 중 하나는 유니클로의 붉은 로고가 마치 일장기라도 되는 양 거북스럽다 했다.

일장기가 또 거북스러울 필요까지 있겠나 싶어도 최소한 요 몇 달의 시국은 그랬다.


[NO재팬시국, 올해는 유니클로 ‘히트텍’ 대란은 없을 것인가]

날이 쌀쌀해지고 있다. 매년 이맘쯤이면 유니클로의 기능성 내의인 히트텍을 구매하려는 사람들 대기행렬이 장사진을 이뤘었다. 미디어들도 그것이 광고인지 뉴스인지 구분하기 어렵도록 연신 연례 이벤트처럼 이를 다뤄왔다. 이쯤 되니 유니클로의 후리스 한 벌 안 걸려있는 대한민국 옷장이 있을까나 싶었었다.

올해는 어떨까. 노(NO)재팬의 물결이 거세게 일었고 이제는 끝물인가 싶어도 여전히 논란은 남아있다. NO재팬. 굉장한 선동의 구호며 기호 아닌가. NO아베도 NO수출규제도 아니고 일본은 무조건 NO인 샘이다. 지인 중 하나는 유니클로의 붉은 로고가 마치 일장기라도 되는 양 거북스럽다 했다. 유니클로 매장 앞을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함께 사진이 찍힐까 얼굴을 가려 보이기까지 했다. 일장기가 또 거북스러울 필요까지 있겠나 싶어도 최소한 요 몇 달의 시국은 그랬다.


바람이 차다. 히트텍에 후리스까지 뜨뜻하게 껴입으면 썰렁한 계절에도 버틸만했었다. 옷장에서 꺼내 입었다가는 무식하고 교양 없이 나몰라라며 괜한 뭇매 맞을 수 있으니 당분간은 깊숙이 넣어둬야겠지. 정신 없이 출근 준비하다 꺼내 입을 수 있으니 옷장을 걸어 잠거둬야겠지.


그 배경과 맥락을 떠나 NO재팬이라하면 동조할 대한민국 국민이 많을 것이라 확신한다.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미디어를 통해서 언론사, 방송, 뉴스, 및 온라인 커뮤니티 뿐만 아니라 공공장소에 버젓이 반일불매운동의 포스터가 여기저기 붙어있다. 하나의 큰 흐름이 된 것이다. 2019년의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는 반일이라는 정서를 겉으로 표출하고 있다. 어떤 의도를 담고 만들어진 구호일까 그 안에 담긴 목표의식은 애국을 외치고 민족을 대표할 정도로 고결한 것일까.


[NO재팬시국, 수많은 일본브랜드 중에 왜 유독 유니클로인가]


일본의 제품, 브랜드들. 반일불매운동과 관련된 수많은 브랜드들이 있다.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일본 수입맥주는 물론이고 니콘, 캐논의 카메라. 도요타 렉서스의 자동차. 일본의 게임콘텐트들과 애니메이션콘텐츠들. 왜 유니클로에 집중하려 하며 유니클로가 나타내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유니클로가 현재사용하고 있는 브랜드 슬로건이자 아이덴티티는 ‘life wear’다. 실제로 유니클로 브랜드는 해당 카테고리의 선두 급인 대표적인 spa브랜드로서 대한민국에 깊게 뿌리 해있다.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유니클로의 제품 하나쯤 홈웨어로 대부분 가지고 있고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보편적인 브랜드로 인식 되어있다. 렉서스처럼 일부 특권층만이 구입할 수 있는 가격도 아니며 사뽀로 맥주처럼 취향에 따라 선택을 받을 수 있는 기호품도 아니며, 캐논카메라처럼 특정한 취미나 직업을 위한 도구도 아니고 게임콘텐츠나 애니메이션처럼 특정 세대만이 한정되어 즐기는 편도 아니다. 이처럼 의식주중 하나를 점거하는 일상문화적으로 쉽게 또 깊게 젖어 내려져있는 유니클로는 대한민국이 오랜기간동안 품고 있던 일본의 잔재 그 공생의 역사의 상징으로서 대표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NO재팬시국, 미디어들은 유니클로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관여하였는가]


시작은 일본의 대한민국 수출규제, 한국경제의 대들보를 흔들어 보려는 경제침략이었다. 산업전반에 파급이 미치기도 전에 촉발된 반일정서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감적정인 부분을 자극하여 지금의 시국을 만들어 냈다. 가히 폭발적이었다. 이때다 싶었던 이들이 들고 일어나는 모양새였다. 이 과정에서 미디어가 의도하였던 메시지와 대중인 우리에게 해석되어진 결과값은 무엇이었을까. 이를 통해 특혜를 입는 집단은 또 누구이며 반사이익을 가져갈 기업들은 그들과 동조하였던 결과인가? 국민을 분노케 하고 움직이게 한 금번의 헤게모니는 어디서 어떤 목적으로 결집되어 외교, 또는 경제분야의 정부차원 협상의 문제가 한일국민정서의 싸움으로 비화되어 우리의 삶이 대응되게 된 것인가. 실상 따지고 보면 오늘 당장 내가 하루를 살아가는데 있어 국가 차원의 수출규제가 내 삶에 관여하는 바는 없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긴 안목을 두고 본다면야 그 영향 정도가 미칠 따름이 있겠지만 이렇게 즉각적인 대중의 단합은 미디어의 힘이 없이는 불가능했다.


[NO재팬시국, 유니클로는 어떻게 대한민국에 해석되었는가]


누구에게나 부담 없이 구입할 수 있는 나쁘지 않은 퀄리티의 의류제품들. 유니클로는 일본이 가지고 있는 실용적인 신념체계가 담겨있는 듯한 브랜드이다. 특정국가의 문화코드가 제품자체에 프린트되어있는 것은 아니나 그 가치가 제품에 흡수되어 공감케 되도록 만들어졌다.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기능적인. 불필요한 차림이 없으면서도 정갈한. 매장의 형태며 제품의 디자인 서비스의 프로세스까지도 일본식 사고가 준거되어 있는 듯하고 그것이 전세계적으로 또 우리나라에도 통했다. 극단적으로 문화식민으로 전락하였다 할 수는 없으나 그 시스템에 우리는 충분히 동화되었다. 유니클로가 가져다 준 편의와 안락은 그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대한민국 누구에게도 제공되었다. 굳이 그 안에 담긴 아젠다를 부각하거나 특정하지 않는다면 의식할 필요 없이 손에 쥘만한 ‘not bad’한 상품이 됐다.


[NO재팬시국, 왜 우리는 유니클로를 사 입을 수 없는가]

전통시장의 더 저렴하겠지만 보장할 수 없는 퀄리티의 의류제품들보다야 납득이 갔다. 유니클로라면 실용적인 또 합리적인 편이라는 위안도 되었다. 그 대안이 되는 국내 브랜드도 몇몇 있으나 접근성에서도 유니클로가 단연 으뜸이었고 유니클로 만큼의 퀄리티를 보장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퀄리티를 떠나서도 유니클로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일정 브랜드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도 괜찮은 편이었다.

지금은 어떨까. 그 시작이 어떻게 되었든 상관없이 그 결과값으로 우리에게 강요되는 행동은 불매다. 정치적 선동일 뿐이다. 선거에서 유리하게 작용하기 위한 술수 중 하나였다 거리를 두려 해도 여전히 결과값으로 불매에는 동조해야 뭇매를 맞이 않는 시국이다. 적어도 대중에 무리로 어우러져 있기로 하였고 모난 돌이 될 용기가 부족한 일원이라면 굳이 타겟이 되기를 택하는 무모함은 지양하는 게 나으니.


[NO재팬시국, 그렇다면 이 시국에 유니클로 매장을 찾는 이들은 매국노인가]


친일파, 빨갱이, 매국노 등 적대시, 배타시하는 그 이름도 참 다양하다. 그 역사도 깊고 용례도 다양하겠다. 미디어에서 그 대를 잇도록 양분을 꾸준히 대왔으며 해당 단어를 듣게 되는 것만으로 감정적으로 동요케 판을 짜왔다. 그 대상이 내가 아님에 안도하도록. 그 대상의 반대편에 팔짱을 끼고서 혀를 차도록 대대로 끌고 왔다. 의식지도 못하게 그렇게 동화되어 해당 용어의 대척 점에 서서 서로를 감시토록 배양되었다. 미디어는 낙인을 깃발로 흔들며 대중을 겁탈해왔고 사정이 좀 나아졌다고는 하나 인도적 가면이 씌어졌을 뿐 그 파워는 날로 커져가고 있다. 상상 가능한 모든 방면에서 미디어가 우리를 에워싸고 있으니 이제는 숨돌릴 사각지대도 없다. 히트텍을 매대에서 꺼내 결제를 마치기도 전에 이마에 낙인이 박혀있을지도 모른다.


[NO재팬시국, 유니클로 불매운동은 애국을 위한 민족운동인 것인가]


이번 NO재팬운동은 폭발적이었다. 한국적 냄비근성이 이번엔 없을 거라 장담했다. 불매운동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독립운동가라도 되는 것처럼 포장되어 말해지곤 한다. 그 맥락과 배경을 떠나 일본제품을 구매 안하는것만으로도 독립운동을 하는 것이다. 편리하게도. 수탈의 역사에 대해 공부할 필요도 그 사명에 대해 숙지할 요구도 없다. 모금을 할 필요도 없고 불편이 강요되는 측면도 적다. 대중에게는 충분한 대안이 있고 그 대안을 통해 손해 보는 것도 없다. 너무도 손쉽게 독립운동의 대열에 설수 있는 것이다. 복잡한 메시지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단순하고 명료할수록 전달력이 높은 이유에서다. 거기다 해당 메시지를 통한 대상의 손실가능성이 적고 얻을 수 있는 명분과 가치가 높을수록 수용도는 높아진다. 그것이 비단 우리 삶에 깊숙하게 침투되어있는 ‘life wear’일지라도 기존의 그 가치에 충분히 공감하고 동화되어 왔더라도 그보다 더 위협적인 구호와 세력에 대척하여 맞설 용기가 없다면, 아니 굳이 필요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뎌지기를 택하는 편이 낫다.


NO재팬의 메시지는 단순했다. 명료했고 충분했다. 삽시간에 퍼져나갈 운반 책도 충분히 성숙된 단계였고 살이 보태질 필요도 부연한 설명이 요구되지도 않았다. 배경적으로 충분히 공감할 수 있도록 오랜 기간 동안 쌓여온 이물감이 있었고 그 불편한 마음은 언제고 터져 나오길 기다리고만 있었다.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단합하기에 지극히 분열된 개개인이었지만 언제고 공공의 적 앞이라면 연대할 각오가 되어있는 불안전한 대중으로서 우리는 그 파도에 몸을 맡기고 유영중이다.


빨갛게 불온한 기운을 내뿜는 동시에 도처에 깔려있는 불순한 것들을 색출해내고자 하는 민족의 오랜 염원. 이미 나조차 그 안에 동조되어 그 삶을 영유해온 것을 까맣게 잊고 도려내기의 과정에 소리를 높이는 아이러니에서 대한민국이 다시 한번 대한민국인 것으로 확인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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