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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리는 강선생 Jul 15. 2023

상상과 일상이 공존하는 도시 도쿄

일본 경제의 중심지이자 애니메이션의 성지 도쿄에 대한 이야기

저는 고등학교 시절 일본 문화 마니아였습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라는 첫 문장이 인상적이었던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을 동경하여 소설의 배경인 니가타를 꿈꿨고, 고갯길에서 아찔한 레이싱을 펼치는 애니메이션 '이니셜 D'의 배경인 군마현도 꼭 한 번 가보고 싶었습니다. 그 밖에도 많은 일본 영화와 애니메이션의 배경이었던 도쿄의 시부야, 신주쿠 거리를 주인공들처럼 걷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꼭 한번 가보고 싶었지만 한동안 여행지로서 인연이 없던 일본을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꼭 10년 만에 처음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도쿄 나리타 공항에 도착해서 나리타 익스프레스를 타고 한달음에 도쿄로 달려갑니다. 귓가에는 고등학교 시절 제가 가장 좋아했던 일본 밴드 Spitz의 노래 Robinson이 흘러나옵니다. 익숙하면서도 오묘하게 다른 풍경을 안주삼아 천 번은 넘게 들었던 간주를 듣습니다.

도쿄 교통의 중심 신주쿠 역


일본의 수도이자 최대도시 도쿄의 인구는 도쿄도 기준 약 1400만 명이고, 도쿄시 지역 23개 구로 한정하면 약 970만 명입니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과 마찬가지로 일본 역시 도쿄를 중심으로 수도권이 형성되어 있는데, 이를 기준으로 하면 무려 전체 일본 전체 인구의 1/3이 넘는 4400만 명이 도쿄 중심으로 밀집되어 있습니다.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 본사가 집중되어 있는 거대한 메가 시티 도쿄는 세계도시체계에서 미국의 뉴욕, 영국의 런던과 함께 최상위 세계 도시로 불립니다. 에도 지역이라 불리던 도쿄는 17세기 이전까지 작은 해안 마을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전국시대의 승자가 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곳에 에도 막부를 세웠고, 이후 도쿄 지역은 지속적인 발전을  하였습니다. 결국 메이지 유신으로 일본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가 오사카, 교토 등 간사이 지방에서 도쿄의 간토 지방으로 이동하게 되었죠.

치요다 구의 중심 도쿄역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중심은 어디일까요? 경복궁이 위치하고 있는 종로구, 오랫동안 경제적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던 중구 일대의 도심 지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2023년 현재 서울의 중심 하면 바로 떠오르는 곳은 바로 강남입니다. 도쿄의 중심지 역시 과거에는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가 모여있고, 일왕이 거주하고 있는 치요다구를 중심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현재에는 누가 뭐래도 도쿄의 중심은 미나토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나토구는 도쿄 23개 구 중에서 가장 잘 사는 지역입니다. 미나토구 직장인의 연봉은 2021년 기준 1163만 엔으로 2위인 치요다구보다 100만 엔 이상의 차이로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땅값 역시 가장 비싼 곳이죠. 다수의 다국적 기업의 본사 건물이 위치하고 있고, 세계 여러 국가의 대사관, 영사관이 가장 많이 위치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로 인해 외국인 거주자 비율이 10% 정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미나토구의 랜드마크로는 롯폰기 힐, 아카사카, 그리고 도쿄타워 등이 있습니다. 그중 저는 동명의 영화로도 유명한 도쿄타워로 갔습니다.

롯폰기 힐즈 전망대에서 바라본 도쿄 야경


프랑스의 에펠탑을 모방하여 만든 도쿄 타워의 정식 명칭은 일본 전파탑으로 본래 목적은 도쿄의 방송 전파 송신탑을 일원화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물론 디지털 TV가 보급된 현재에는 전파 송출 기능보다는 전망대와 랜드마크로서의 관광지 역할을 담담하고 있습니다. 도쿄 미나토구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도쿄타워는 일본의 경제 부흥이 막 시작하려고 할 시점인 1959년에 완공되었습니다. 높이는 333m로 파리의 에펠탑보다 33m 높고, 당시 일본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습니다. 도쿄 타워가 건설된 이후 일본 경제는 그 높이만큼이나 가파르게 성장하였습니다. 1964년에는 도쿄 올림픽을 개최하였고, 세계에서 가장 빠른 기차 신칸센을 개통하였죠. 1980년대에 들어서는 도요타, 소니를 비롯하여 일본 기업들이 전 세계 자동차, 전자 제품 시장을 휩쓸었고, 도쿄땅을 팔면 미국땅 전체를 살 수 있었다는 1990년대 초반에는 세계 최강 미국의 자리를 넘보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이후 버블이 붕괴되면서 현재까지 잃어버린 30년을 겪고 있지만, 이런 일본의 흥망성쇠를  도쿄타워는 묵묵히 그 자리에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도쿄타워를 아래에서 볼 수 있는 잔디밭에 앉아서 오랜만에 오다기리 조 주연의 도쿄타워 영화를 봤습니다.

일본의 발전과 함께한 도쿄 타워


일본은 음악, 영화 등 특유의 매력을 지닌 다양한 문화 산업이 발달했지만 역시 일본 문화 하면 애니메이션을 빼놓을 수 없죠. 고등학교 시절 저를 일본 문화로 이끈 것도 'アニメ(아니메)'로 불리는 일본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최근 우리나라에서 역대 애니메이션 중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스즈메의 문단속'의 신카이 마코토 감독 작품을 좋아합니다. 그의 작품은 일본 특유의 감성과 정서를 화려하면서도 깔끔한 작화와 상황에 적절한 음악을 조합하여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의 배경은 실제 도시의 건물이나 거리를 구체적으로 묘사해서 표현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래서 특정 애니메이션의 팬들은 직접 그 작품의 배경이 된 곳을 찾아가는 일종의 성지순례를 떠나기도 합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도 여러 작품의 배경을 도쿄를 묘사했고, 그래서 저는 그의 작품 중 '언어의 정원'의 배경이 된 신주쿠 공원과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 '초속 5cm'의 마지막 장면인 기찻길을 찾아가 봤습니다.

애니메이션 언어의 정원의 배경 신주쿠 공원의 안내도
애니메이션 초속 5cm 마지막 장면의 기찻길


신주쿠역 동쪽에 위치한 신주쿠 공원은 넓이 약 18만 평, 둘레 3.5km로 도쿄 도심 지역에서 가장 큰 공원입니다. 에도시대 나이토 가문의 저택이 있었던 토지 일부가 메이지 유신을 거치며 황실 소유의 땅이 되었고, 1906년 앙리 마르틴 교수에 의해 황실 정원으로 완공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민간에게 개방되어 현재까지 운영 중입니다. 신주쿠 공원은 영국식 정원, 프랑스식 정원, 일본식 정원이 서로 조화롭게 디자인되어 있는 메이지 시대를 대표하는 근대식 서양 정원입니다. 특히 일본식 정원이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 '언어의 정원'에 주 무대로 등장하였습니다. 저는 일본 정원에 있는 정자에 앉아 남녀 주인공이 비 내리는 날씨에 이곳에서 이야기 나누는 장면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초속 5cm의 배경 중 특히 가보고 싶었던 곳은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기찻길입니다. 남자 주인공 타카키는 성인이 되어서도 초등학교 시절 첫사랑 아카리를 잊지 못합니다. 대도시 도쿄에서 계속 아쉽게 스치듯 지나치던 두 사람은 결국 마지막 장면인 기찻길에서 마주칩니다. 남자 주인공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무심하게도 기차는 연달아 지나가며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습니다. 기차가 지나간 이후에는 여자 주인공은 이미 사라져 버렸고, 그렇게 벚꽃 잎이 초속 5cm 속도로 천천히 떨어지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이 기찻길에 도착해서 애니메이션 OST를 들으며 주인공 타카키의 마음이 되어 봅니다.

애니메이션 언어의 정원 속 신주쿠 공원
애니메이션 초속 5cm의 마지막 장면


이어서 일본 문화 마니아들의 성지, 아키하바라로 향했습니다. 과거에는 우리나라의 용산과 같은 전자 상가의 이미지가 강했으나, 2000년대 이후 전자기가 및 PC 시장의 축소와 함께 마니아 문화 및 애니메이션 상품 판매를 위한 장소로 변하였습니다. 아키하바라는 애니메이션 이외에도 비디오 게임, 프라모델, 음향기기, 밀리터리, 아이돌 등 일본에서 발달한 마니아들을 위한 거의 모든 것에 모여있는 곳입니다. 아키하바라 역 주변 큰길은 도쿄 거리와 비슷하지만 안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신세계가 펼쳐집니다. 거리 곳곳이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음악으로 가득 차있고, 메이드 복장으로 코스프레한 메이드 카페 홍보 아르바이트생들이 귀여운 말투로 말을 겁니다. 일본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많이 어색할 수도 있는 마니아스러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꼭 한 번씩 가보고 싶어 곳으로 애니메이션 왕국 일본을 상징하는 일본 문화 마니아들의 성지와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 문화 마니아들의 성지 아키하바라


최근 한국 문화가 일본에 인기를 끌면서 일본 내 한국 문화 마니아들의 성지인 신오쿠보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도쿄 안의 작은 한국 신오쿠보는 신주쿠역 북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신오쿠보는 한류가 인기를 끌기 전인 1990년대 중반까지는 도쿄에서 발전이 덜 된 지역 중 하나로 재일교포나 한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 음식점이나 한국 물품을 파는 상점이 모여있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다 2000년대 초반 겨울연가와 같은 한국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2010년 이후 본격적으로 한류붐이 불면서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젊은 일본인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넷플릭스에서 한국 드라마가 일본에서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었고 BTS가 전 세계적으로 공전의 인기를 누리게 되면서 신오쿠보는 최전성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신오쿠보 역에 내려서 오른쪽 방향으로 한 블록만 가면 거리 좌우에 전부 한글 간판과 한국 음식점이 가득하고 K-Pop과 한국말이 들려옵니다. 명랑 핫도그, 호식이 두 마리 치킨, 치즈 닭갈비, 삼겹살집, 심지어 백종원 대표님의 프랜차이즈 음식점도 있습니다. 일본의 수도 도쿄 한가운데, 이렇게 많은 일본사람들이 한국 연예인의 사진을 손에 들고, 한국말로 된 한국 노래를 들으면서, 떡볶이, 순대와 같은 한국 음식을 먹기 위해서 길게 줄 서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한국인으로서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일본 내 한국 마니아들의 성지 신오쿠보


도쿄의 또 다른 랜드마크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로 향했습니다. 교차로가 내려다보이는 2층 카페에 앉아서 넓은 유리창으로 여러 방향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교차하는 장면을 바라봤습니다. 순간 불현듯 이상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분명히 여기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며 여행하고 있는데, 제 옆 테이블에 앉아있는 일본 사람은, 그리고 유리창 밖으로 바쁘게 출근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분명 나와 같은 공간에 있지만 여행이 아닌 일상을 살고 있습니다. 분명 똑같은 공간에서 똑같은 행위를 하고 있는데 누구는 여행을 하고 다른 누구는 일상을 살고 있다는 것이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하루하루 똑같이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을 살면서도 그 하루를 여행처럼 살 수는 없지 않을까? 매일매일을 여행처럼 산다면, 평범하게 일어나는 아침을 여행자의 마음가짐으로 한다면 다가올 하루가 잔뜩 기대되어서 기분 좋게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에요. 그래서 매일매일 신나게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하루라는 여행을 준비하지 않을까요? 사실 같은 장소여도 그 장소를 받아들이는 느낌, 그리고 추억은 각자 다르게 적힙니다. 이곳 스크램플 교차로가 보이는 카페 안도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이 있는 장소일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별의 장소일 수도 있으니까요. 평범한 일상의 장소, 학교 앞에 있는 벤치, 너무나도 익숙한 동네도 누군가에게는 아기자기한 추억이 있는 장소일 수 있는 것이죠. 결국 장소를 바라보는 마음가짐(attitude)이 그 장소를 의미 있게 만든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평범한 매일의 일상도 그저 그런 하루가 될 수도 있지만, 어떻게 생각하냐에 따라서 의미 있고 설레는 여행의 한 순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저와 여러분의 내일 아침도 두근거리면서 하루를 계획하는 설레는 여행의 아침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시부야역 스크램블 교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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