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혹시 '보헤미안 랩소디'란 노래를 아시나요? 얼마 전 동명의 영화로도 개봉한 보헤미안 랩소디는 세계적인 록그룹 퀸의 대표곡이자 1975년 발매한 이후로 지금까지도 전 세대에게 사랑받는 곡입니다. 보헤미안은 현재 체코 공화국의 옛 지명인 보헤미아 지방에 살았던 사람들을 의미하는데, 과거 보헤미아 지방에 집시들이 다수 거주하였기 때문에 보헤미안과 집시를 동의어처럼 사용하기도 합니다. 즉, 보헤미안은 사회의 관습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예술가를 의미하고, 보헤미안 랩소디를 직역하면 '자유인의 광시곡' 정도로 풀이할 수 있겠네요.
오페라의 형식으로 시작하는 보헤미안 랩소디는 잔잔한 피아노의 선율과 퀸의 보컬 프레드 머큐리의 감미로운 목소리로 이어지다 다시 오페라 형식으로 급변합니다. 후반부는 강렬한 헤비메탈 사운드로 가득 채워지다가 다시 잔잔한 피아노 반주로 노래는 마무리됩니다. 문득 보헤미안 랩소디라는 노래가 보헤미안의 고향인 체코 프라하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노래 가사에는 체코와 프라하에 대한 내용은 없지만, 중세부터 현대까지 유럽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는 점과 그럼에도 보헤미아의 중심을 굳건히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요. 오늘은 보헤미안의 고향 프라하로 떠나봅시다.
독일 뮌헨역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체코 프라하 역에 도착했습니다. 잠든 사이 별다른 여권 검사 없이 독일과 체코의 국경을 넘을 수 있었습니다. 독일과 체코는 모두 유럽 연합에 소속되어 있어서 자유롭게 국경을 이동할 수 있죠. 이를 쉥겐 조약이라 합니다. 체코 중앙역을 나와 조금만 걷다 보니 거리 곳곳에는 유로화를 체코 화폐 코로나로 바꿔주는 환전소가 가득합니다. 독일에서 사용하던 유로화를 체코에서는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죠. 이처럼 체코는 유럽 연합에 속해있지만 유럽 연합의 공통 화폐인 유로화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가지고 있던 유로화를 전부 체코 화폐 코로나로 환전하였습니다.
사실 모든 유럽 연합 국가가 유로화를 사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얼마 전까지 유럽 연합이었다가 탈퇴한 영국도 끝까지 자국 화폐인 파운드를 고집했고, 폴란드와 헝가리 역시 유럽연합이지만 유로화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유로화를 사용하는 국가들을 유로존이라고 하는데, 유로존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일정한 경제적 수준이 필요하죠. 물론 동유럽의 경제 강국 체코는 경제적으로 충분히 유로화를 받아들일만한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다수의 체코 국민들의 유로화 도입을 반대한다고 합니다. 이는 체코의 물가가 유로화 도입으로 오를 것이라는 걱정과 유로화 도입 이후 경제 위기를 겪은 그리스의 사례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체코는 유럽 연합 가입 이후 유럽 연합의 두 배가 훌쩍 넘는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구 130만 명의 프라하는 1992년까지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도였지만, 이후 슬로바키아가 분리되면서 현재는 체코의 수도입니다. 흔히 유럽을 영국, 프랑스의 서유럽, 러시아, 우크라이나를 포함하는 동유럽,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위치한 북유럽, 그리고 지중해 국가들로 이루어진 남유럽으로 구분합니다. 과거 냉전시대에는 자유진영에 속한 국가는 서유럽, 공산진영에 속한 국가는 동유럽으로 칭하곤 하였지만 냉전이 끝난 현재의 체코는 독일, 오스트리아와 함께 중부 유럽에 속합니다. 체코는 서부유럽과 동부유럽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어서 오래전부터 교역이 발달하였습니다. 또한 체코는 기계, 제철 산업이 발달한 독일과 인접해 있어 자동차 산업 역시 발달하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자동차 기업 중 하나인 스코다가 체코에서 탄생하였고, 현재에도 체코에는 현대, 토요타 등 해외 자동차 기업들의 생산기지가 있습니다. 2023년 체코의 제조업 비율은 전체 산업에서 약 30%를 차지하는데 이는 대표적인 산업 국가인 대한민국과 일본보다 높은 수치입니다.
프라하 최고의 번화가이자 역사적인 장소 바츨라프 광장으로 향했습니다. 광장이 시작하는 곳에는 바츨라프 기마상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는 19세기 중반 체코의 민족 부흥 운동을 상징하는 성 바츨라프를 기리기 위한 동상입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9월 29일을 성 바츨라프의 날로 지정하여 공휴일로 삼을 정도로 성 바츨라프는 오늘날까지도 체코인들의 추앙받는 인물 중 하나입니다. 1918년 10월 28일에 이 바츨라프 기마상 앞에서 체코의 독립이 선언되었습니다.
바츨라프 광장은 체코의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 곳이기도 합니다. 체코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섰지만,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서부 유럽에 비해 떨어지는 경제력과 정부의 억압적인 정책에 불만을 갖게 됩니다. 1968년 체코 정부는 국민들의 바람대로 언론,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고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도입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프라하의 봄이라 부릅니다. 하지만 소련은 이를 가만 두지 않았죠. 소련의 전차 부대는 곧장 프라하로 진군했고, 프라하의 봄의 실패로 끝납니다.
하지만 프라하의 봄은 동부 유럽 민주화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바츨라프 광장에는 80만 명의 프라하 시민들이 모였습니다. 이런 대규모 시위 앞에 체코의 공산주의 정권은 결국 굴복하고 맙니다. 이를 벨벳 혁명이라고 하는데, 별다른 사상자 없이 민주화를 이룩하였기 때문에 신사 혁명이라고도 부릅니다. 이처럼 바츨라프 광장은 체코의 독립과 민주화가 시작된 시민의 광장으로서 체코 현대사에 있어 역사적 장소입니다.
프라하의 또 다른 역사적 장소 레논 벽으로 향했습니다. 처음 레논벽은 세계적인 아티스트 비틀즈의 멤버 존 레논을 기리기 위한 벽이었습니다. 1980년 존 레논이 암살된 이후, 이 벽에는 그의 초상화를 그려 넣거나, 그의 노래 가사 일부를 기록해 놓았습니다. 이는 점차 평화, 서구 문화, 정치 투쟁과 같은 주제의 글과 그림들로 확장되었습니다. 서방 세력을 대표하는 비틀즈의 멤버 존 레논을 공산주의권에서 동경한다는 상징성은 어느새 이곳을 체코의 민주화 운동의 근거지로 변화시켰습니다.
1989년 동부권 국가들에서 민주화 열풍이 불었을 때 대규모 인원들을 모이기 위한 상징적인 장소가 필요했고, 레논벽은 바츨라프 광장과 함께 적합장 장소였습니다. 벽에는 '공산당 OUT, 소련 철수'라고 도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체코 정부는 벽을 철거하려고 했으나 프라하 시민들의 끈질긴 저항으로 철거에 실패하였죠. 민주화를 이룩한 현재의 레논벽에는 공산주의, 사회주의 관련 낙서는 없어지고 존 레논과 비틀즈를 추억하는 내용으로 다시 바뀌었습니다.
카렐교는 프라하 가운데를 흐르는 블타바 강에 놓인 다리입니다. 보헤미안 왕국의 국왕이자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카렐 4세의 이름을 딴 카렐교는 1841년까지는 프라하에서 블타바 강을 가로지르는 유일한 다리였기 때문에 프라하 성과 구시가를 잇는 중요한 교통의 요지였습니다. 이러한 점 때문에 프라하는 서유럽과 동유럽을 잇는 주요 교역루트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카를교는 길이 621m, 너비 약 10m로 16개의 아치로 다리 상판이 지탱되고 있습니다. 구시가 쪽 다리에 위치한 탑은 고딕 건축 양식의 진수를 보여주지만, 다리 위의 상판은 30개의 조각상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대부분이 바로크 양식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처럼 카렐교는 다리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블타바 강과 강너머로 보이는 프라하 성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프라하의 상징이자 체코의 상징인 프라하 성으로 향했습니다. 카렐교를 건너 블타바 강 서쪽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 프라하 성은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등 다양한 건축 양식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프라하 성은 870년 성모 마리아 성당이 건설되면서 시작됩니다. 10세기 초 성 비투스 대성당과 성 게오르기우스 성당이 건설되었고, 12세기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궁전이 건설되었습니다. 이처럼 프라하성은 시간이 지나면서 성터에 새로운 건물이 추가적으로 지어지면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성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프라하 성 내부에는 9세기부터 지어진 웅장한 성당과 궁전을 비롯하여 유럽의 아기자기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작은 골목으로 이루어져 있어 프라하의 옛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또한 프라하 성은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성벽 위에서 프라하 시내의 전망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체코의 왕들과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들이 이곳 프라하 성에서 통치를 했으며 현재는 체코 공화국의 대통령 관저가 이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다시 카렐교를 건너 프라하 구시가 쪽으로 향했습니다. 프라하는 다른 유럽의 도시들과는 2차 세계 대전의 피해를 거의 받지 않아서 중세 유럽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도시 중 하나입니다. 그 덕분에 프라하의 구시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프라하는 11세기부터 유럽의 서부와 동부를 잇는 교역의 중심이었는데, 그 핵심이 바로 프라하 구시가 광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츨라프 광장과 카렐교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구시가 광장은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룹니다. 특히 크리스마스 기간에는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려서 전 세계에서 모여든 관광객들로 북적입니다. 이곳에서는 고딕 양식 및 바로크 양식 등 다양한 건축 양식을 볼 수 있는데, 특히 틴 성모 마리아 교회는 14세기에 지어진 고딕 양식의 교회로 구시가 광장의 랜드마크 중 하나입니다. 중세시대 때 세워진 천문시계 프라하 오를로이는 현재까지 작동하는 천문시계 중에는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합니다. 정각이 되면 시계탑 위에 문이 열리며 인형들이 나와서 움직이고 광장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이 공연을 보러 모여들곤 합니다.
날이 어두워지자 트리에 불이 하나둘씩 켜지고, 경쾌한 캐롤과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어우러지면서 도시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가득합니다. 구시가 광장에서 바츨라프 광장까지 길게 이어진 인파 속을 걸으면서 유럽의 한가운데, 이곳 프라하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를 마음껏 즐겨봅니다. 오늘 저녁은 체코의 대표적인 음식 꼴레뇨에 플젠 맥주를 마셔야겠습니다. 모두들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