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 특강을 하게 될 춘천여고 지리 교사 강이석입니다. 지리는 강선생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고, 오늘 특강의 주제이기도 한 여행 에세이 '여행이 부르는 노래‘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를 소개할 때 부연 설명이 점점 길어지는 것 같아서 그렇게 달갑지는 않더라고요. 원래 자기소개는 짧고 간결한 것이 더 멋있는 것이라고 어디선가 들었거든요. 그래도 저는 아직까지 tmi 식 자기소개를 선호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명사(noun) 스타일의 자기소개보다는 형용상(ajective) 스타일을 자기소개를 선호합니다. 명사는 그 사람에 대해서 한 마디로 정의 내릴 수 있지만, 형용사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니까요. 저는 형용사에 보다 가까운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명사, 형용사 중 어디에 가까운 사람인가요?
이번에 특강 요청이 들어왔을 때 살짝 고민을 했습니다. 고등학교나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 주제로는 적합할 수도 있겠지만, 연수원에서 진행되는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에 '과연 나의 이야기가 적합할까?' 하는 걱정이었죠. 하지만 다시 마음을 고쳐 먹었습니다. 교직 경력 약 10년간 제 수업을 관통하는 단어는 '이야기'였습니다. 수업 시간에 썰을 푼다고 하죠. 오늘은 그 이야기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오늘 강의 제목은 '빅데이터와 스토리텔링 수업'입니다. 보통 연수원에서는 전국의 많은 지리 전문가분들이 강의를 해주시는데, 제가 그 안에서 차별성을 가지면서도 잘할 수 있을게 무엇일까 고민해 봤을 때 생각나는 건 이것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용기를 내서 강의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저는 차가운 얼음물로 가장 먼저 뛰어드는 첫 펭귄 같은 사람이 되고 싶거든요. 익숙하면서도 생소하고 체계적이지는 않고 말랑말랑한, 그래서 조금은 선생님들의 생각에 자극이 될 수도 있을 거라는 기대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첫 펭귄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오늘 강의는 두 가지 파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주제는 '빅데이터와 알고리즘 세상 속 이야기'입니다. AI 시대가 다가왔음을 온몸으로 직면하고 있는 요즘, 지리를 가르치고 있는 교사로서 AI의 도구인 챗GPT를 다루는 것만이 능사가 아닐 것이라는 고민에서 발현된 주제입니다. 물론 AI의 개념과 기술을 익히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미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사로서 보다 근본적인 대안을 찾는 것이 필수라고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 주제는 ‘음악과 함께 하는 북 콘서트’입니다. 작년에 출간한 여행 에세이 '여행이 부르는 노래‘의 주요 챕터를 간략하게 소개하면서 중요한 순간마다 함께 음악을 듣는 식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첫 번째 파트에서 제가 말씀드린 스토리텔링의 사례와 이를 직접 시연하는 시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부가 끝난 후에는 15분 간 인터미션이 있습니다. 2부는 휴식 후에 커피나 간식을 드시면서 마음 편하게 들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Ⅰ. 빅데이터와 알고리즘 세상 속 이야기
1. Square와 알고리즘
몇 해 전 봄에 있었던 일입니다. SNS를 통해 동네 서점에서 음악 감상회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평소 음악을 좋아하고 수업하고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음악을 듣는 사람으로서 음악 전문가, 그리고 나처럼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음악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는 게 재미있을 것 같아서 참석했습니다. 첫 번째 주제는 'Asian pop'이었는데, 그날 저는 이 노래를 처음 들었습니다.
음원보다 더 좋은 백예린의 Square 라이브
사실 백예린에 대해서 아예 모르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2016년 여고에서 근무할 때 실용음악 준비하는 학생들이 로비 버스킹 할 때 종종 백예린 노래를 부르곤 했습니다. 그전까지 저에게 백예린은 '우주를 건너'를 불렀던 K-Pop 출신 백아연과 헷갈리는 정도의 그런 가수였습니다. 그런데 그 4분 남짓하는 라이브 영상 속 초록색 원피스를 입고 등장한 백예린은 너무나도 매혹적이었습니다.
팟! 파밧! 파열되는 드럼 비트에 가볍게 몸을 돌려 등장하는 도입부터 엇박인 듯 정박인 듯 연주되는 피아노 리듬에 맞춰 흥이 나서 춤추며 노래하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팝의 전성기에 수줍게 등장한 신인처럼 영어 가사를 자연스럽게 멈블(mumble) 거렸습니다. 무엇보다 그녀의 노래가 너무 좋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백예린이라는 가수를 발견했고, 그렇게 나는 Square란 곡에 흠뻑 빠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자연스럽게 유튜브 뮤직으로 백예린과 Square를 검색해서 들었고 구글의 알고리즘은 그녀의 노래와 그녀와 관련 있는 노래들을 몽땅 추천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유튜브는 백예린의 곡들 뿐 아니라 그녀와 비슷한 장르의 곡들을 연달아 나에게 들려줬습니다. 단지 저는 평소에 듣지 않았던 백예린의 Square란 곡을 검색해 들었을 뿐인데, 저의 유튜브 뮤직의 플레이 리스트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바뀌었습니다.
평소처럼 음악을 들으며 길을 걷고 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 하나의 노래가 알고리즘을 통해 플레이 리스트를 바꿔놓은 것처럼, 단 하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생각을 확 바꿔놓을 수 있지는 않을까?
이 너무도 당연하면서도 또한 새로운 생각은 오래전 교육학에서 배웠던 피아제의 동화와 조절 개념도 떠올렸습니다. 새로운 개념이 머릿속으로 들어오면 기존에 갖고 있던 개념들로 동화시키거나 새로운 것을 조절하면서 평형화라는 안정 상태로 변화된다는 구성주의 인지발달 이론 말입니다. 새로운 개념이 기존의 개념과 이질성이 클수록 인지구조가 조절되는 변화의 정도는 더 커질 것이고, 그로 인한 사고의 흐름과 생각의 변화는 너무도 자명할 것입니다.
알랭 드 보통이 '여행의 기술'에서 말한 여행 중 차창 밖으로 빠르게 지나는 풍경이 사고의 흐름을 빠르게 한다는 말의 의미도 다시 한번 생각해 봤습니다. 기존의 것들과 더욱 많이 다른 새로운 것이 머릿속으로 들어온다면 그 변화의 폭과 정도는 더 커질 것이고, 그로 인해 사고의 흐름과 생각의 변화는 자명할 것입니다. 그가 언급한 여행 중 차창 밖으로 빠르게 지나는 풍경이 사고의 흐름을 빠르게 하는 원리도 단순히 빠르기 때문만이 아니라 매번 보던 익숙한 풍경이 아닌 새로운 풍경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2. 라떼보다 민트초코
여기 계신 선생님들, 그리고 저처럼 말하는 것을 주업으로 하는 직업의 경우 이야기는 더욱 중요해집니다. 중학교든 고등학교든 매년 비슷한 교육과정과 교과서로 수업을 하지만, 실제 수업 환경은 바뀌기 마련입니다. 매번 똑같은 내용으로 수업을 준비하더라도 실제 수업은 교실마다, 학생마다, 심지어는 계절이나 수업하는 시간에 따라서도 다르게 나타납니다. 특히, 저처럼 수업을 구조적으로 준비하는 편이 아니라 중간중간 맥락과 사태에 따라 즉흥적으로 수업을 재구조화 경우에는 이야기가 더욱 중요해집니다.
지리 과목 특성상 수학이나 영어에 비해서 조금 더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 같긴 합니다. "나도 여행 참 좋아하는데, 세계지리나 여행지리를 가르치면서 내 여행 이야기를 하면 학생들이 얼마나 좋아할까요?"라고 부러워하시는 영어 선생님이 계십니다.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과연 학생들이 여행 이야기라서 좋아할까요? 지리 과목이라서 좋아할까요? 또한 제가 수학이나 영어를 가르친다고 해서 딱히 제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말하는 사람만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듣는 사람도 흥미로운 들을만한 이야기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따분하고 재미없고 나와 전혀 관련 없는 이야기는 누구나 듣기 싫어하기 마련입니다. 또한 요즘은 조금이라도 수상하거나 의심스러운 것은 아주 작은 노력을 들이면 몇 초만에 팩트를 내 눈으로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점에서 말하는 것을 주업으로 삼고 있는 교사의 경우, 예전처럼 스피커(Speaker)의 권위나 지식보다는 매력과 유니크함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디서 들어봤던 이야기, 사골처럼 우려낸 이야기, 나와 전혀 상관없는 재미없고 지겨운 '라떼'같은 이야기는 사랑받지 못합니다.
학생들을 교사의 이야기를 가만히 앉아서 듣는 수동적인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 중 흥미 있고,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는 매력적인 이야기를 선택할 수 있는 적극적인 소비자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트초코'처럼 톡 쏘면서도 상긋한, 달콤하면서도 트렌디한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사전 속 개념과 지식보다는 스토리텔링과 이를 풀어내는 매력적인 플롯이 중요합니다. 민초단의 마음을 한 번에 확 사로잡은 민트초코의 맛과 향은 마치 혀에 짜릿한 자극을 줘서 새로운 자극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민초단은 아니지만 민트 초코가 어떤 맛인지는 압니다
3. 도대체 무슨 이야기?!
만약 '새로운 이야기가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 낸다'라는 전제가 맞다면, 여러분은 저에게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하란 말이야?' '어떤 이야기가 라떼같이 않고 민초같은 이야기인 거야?' '그리고 너의 이야기가 진짜 민트초코같은 이야기라고 어떻게 확실할 수 있어?' 사실 저도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확실하게 '그렇다'라고 대답하지는 못 합니다. 저의 이야기 중심 수업이 '학생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주는가?'라는 질문에 저는 확실하게 학생들에게 어떠한 도움을 준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공교육에 발 담그고 있는 교사 입장에서 사교육 시장의 1타 강사처럼 수치상으로 보이는 객관적인 자료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학년말 교원평가에서 학생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다고 해도 이는 그저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소소하지만 소중한 기쁨으로 여길 뿐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야기가 있는 수업이 그렇지 않은 수업에 비해 학생들의 평가와 스스로의 주관적 평가가 좋다는 것을 느낍니다. 개념과 사례의 나열, 그리고 정리와 문제풀이를 하는 수업보다 서사와 스토리텔링, 그리고 질문과 답변으로 재구성되는 수업이 저에게도 잘 맞고, 또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수업을 하면서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이야기를 꺼내 놓는 것이 좋을까요? 처음 스토리텔링 형식의 수업을 시작한 2012년 9월 이후로, 약 10년 동안 이렇게 썰을 풀다 보니까 적절한 이야기들이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저의 인생에 대해서 서사적으로 털어놓기도 했고, 지난 방학에 떠났던 여행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조금은 특이했던 학창 시절 이야기나 고백했다가 거절당한 이야기, 그리고 제 이야기 중 가장 반응이 좋은 이야기 중하나인 Love story in Italy도 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 도중 새롭게 이야기가 재구성되어 다음 수업의 또 다른 이야기감으로 탄생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수업을 하다 보니 내가 적재적소에 맞춰서 이야기를 꺼내놓는 대단한 능력을 갖추었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저의 착각이었습니다. 다만 저는 이야기를 풀어놓고, 그 이야기가 적힌 벽에 하얀 분필로 둥글게 여러 개의 원을 그려 마치 나의 이야기가 화설처럼 절묘하게 과녁 한가운데 명중한 것처럼 꾸며댈 뿐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와 현재 이야기들의 모든 순간, 소소하지만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차곡차곡 소중하게 기억했다가 적절한 상황에 풀어내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이야기들을 떠올려보면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1. 내가 관심 있는 이야기
2. 듣는 사람이 관심 있는 이야기
3. 인상 깊었던(Critical) 순간의 이야기
첫 번째, 내가 관심 있는 이야기는 듣는 사람들이 관심 없어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특히 화자와 청자가 라포가 형성되어있지 않은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관심 있는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말하는 사람이 스스로 관심 있어하는 주제로 이야기를 할 때 비로소 말에 에너지와 열정이 담기게 되고, 역설적으로 그 에너지가 온전히 청자에게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말하는 사람의 내 이야기에 대한 관심은 메시지와 감정 전달의 필수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듣는 사람이 관심 있는 이야기는 최근의 가장 핫한 이야기이거나 특정 화자가 관심 있어하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하면 이야기 초반의 make-up 과정을 생략하거나 간소화할 수 있고, 또한 별다른 노력 없이도 주목을 끌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화자인 나의 관심과 청자인 학생의 관심사가 겹치면 가장 좋겠죠. 그래서 학생-교사 간의 공감대 형성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듣는 사람들의 성별이나 나이, 직군에 따라 '어떤 이야기를 할까?'정도의 고민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비교적 젊은 남초 집단에서 이야기를 한다면 '테슬라 다음 차도 너로 정했다'와 같은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나, 'Memoirs Of A Gay'와 같은 조금은 자극적인 주제를 선정합니다. 그리고 여고나 여대에서 강의를 한다면 'Love story in Italy'나 '꼬부기를 처음 만난 날'과 같은 로코 스타일의 이야기를 주로 합니다.
세 번째, 지금까지 살면서 정말 인상 깊어서 잊을 수 없었던 사건이나 인생의 방향을 틀 정도의 결정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는 말하는 사람의 인생 그 자체이기 때문에 스스로가 관심이 없을 수가 없고, 그래서 말을 하면서 화자의 열정과 에너지가 묻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살아가면서 겪는 입시, 직업, 연애, 결혼과 같은 결정적인 선택들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내용들이기에 청자들의 관심도 웬만해서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대표적인 이야기는 스스로 창업한 회사를 스스로 그만두고 떠난 춘천-여수 도보여행 이야기 '할 수 있을 텐데가 아니라 지금 당장!'이나 유튜브 채널에 게시된 '내가 교사가 된 이유'와 같은 사례를 들 수 있습니다.
4. 공중에 떠다니는 말과 손에 잡히는 글
평소 말을 많이 할 수밖에 없는 직업 군이 아니라면 굳이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설령 교사의 경우라도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는 뭔가 아쉬움이 남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그렇게 썰 풀어서 뭐 어쩌겠다고?
스스로 관심 있어하는 이야기와 학생들이 관심 있어할 만한 이야기, 그리고 결정적이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10년 정도 해왔습니다. 생각해 보면 교사가 되기 전에도 술자리에서, 여행을 하면서, 그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해온 것은 그보다 훨씬 더 이전부터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무수히 많이 늘어놓다 보니 듣는 사람들의 반응과 호응에 의해서 이야기의 조각들은 적절하게 부가되거나 소거되었고, 그럴수록 이야기는 내가 되었고 나는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체화된 이야기를 공중에 떠다니는 말이 아닌 손에 잡히는 책의 형태로 구체화시키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결과물을 만들어보고자 하는 욕구일 수도 있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 학생들, 친구들 뿐만이 아니라 조금 더 다양한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도 감화시킬 수 있는지, 한 마디로 '나의 이야기가 세상에 먹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의 나의 이야기를 글로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월간 '새교육'에 '세계로 떠난 지리교사'라는 주제로 틈틈이 그동안의 여행기를 연재했습니다. 이는 나의 이야기를 공식적으로 글로 옮길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좋은 기회였습니다. 나의 말들이 글과 사진을 통해 손에 잡히는 잡지의 형태로 출판되고, 인터넷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매우 신기했습니다. 하지만 교사를 대상으로 하다 보니 독자층이 한정돼 있고, 인터넷을 겸하긴 하였지만 잡지의 구독자 수가 매우 적었습니다. 또한 어쨌든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잡지의 특성상 표현과 내용은 수위가 어느 정도 있기 마련이었습니다.
그래서 2019년 12월부터는 아예 20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해왔던 여행에 대한 기억을 시간순으로 정리하고 이를 장편의 글로 써보기로 했습니다. 처음부터 보여주기 위한 글이었기 때문에 아예 초고를 블로그에 공개로 썼고, 어느 정도 틀이 잡힌 이후에는 작가 플랫폼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한 후, 글을 올리고 30여 편의 에피소드가 쌓인 이후에는 브런치 북으로 엮었다. 책의 이름은 '여행이 부르는 노래'입니다.
브런치북 '여행이 부르는 노래' 소개
여행을 하면서 보고, 만나고, 느꼈던 순간들을 떠올려보면 그 속에 항상 음악이 있었고, 노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여행이 부르는 노래'로 정했습니다. '여행이 부르는 노래'에는 각각의 여행마다 어울리는 노래가 있습니다. 노래를 들으면서 글을 읽다 보면 여행, 그 순간의 분위기를 온전하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여행이 부르는 노래'에는 여행의 정보나 지식보다는 이야기가 있고, 음악이 있고, 순간순간 느꼈던 생각들, 그리고 로맨스가 있습니다. Let`s play the journey!
평소 해왔던 이야기들이 하얀 모니터에 검은 활자를 채워가며 하나의 글로 완성되어 가는 과정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또한 가끔씩 누군가 글을 읽고 딱 내가 의도했던 대로 공감하는 반응을 볼 때는 전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아 이 맛에 작가 하는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나의 이야기들을 공개된 플랫폼에 정리된 형태로 남기다 보니까 어떤 글은 포털 메인 페이지에 떠서 조회수가 몇 만을 넘기기도 했고, 또 어떤 글은 콘텐츠 제작 의뢰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22년 9월 '여행이 부르는 노래는' 출판이 되었고, 초심자의 행운인지 몇 주간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다양한 글쓰기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독서논술 월간지에서 전국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도시를 걷는 시간’을 연재하였고, ‘낭만 여행기’라는 제목의 주간지도 연재하였습니다. 출판과 칼럼 연재 덕분에 다양한 특강을 하기도 했고, 저의 글을 좋게 봐주신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서 현재 새로운 책의 출판을 계약한 상태입니다. 어떻게 보면 저의 스토리가 수업 시간에 썰이 되었고, 그 썰들이 글이 되어 책으로 탄생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5. 나만의 Brand로 Blending
이렇게 나의 이야기가 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생각보다 많은 관심을 받으며 글을 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이후에는 이것을 조금 더 발전시켜 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글로는 정리를 해봤으니 나의 이야기를 글이 아닌 다른 형태로 나만의 Brand를 달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흥미롭게 전달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부캐 '지리는 강선생'입니다.
지리교육의 금손 이나리 선생님의 작품 지리는 강선생!
우선 '지리는 강선생' 브랜드를 활용하여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를 새롭게 개편했습니다. 기존의 여행기뿐만 아니라 다양한 주제로 글을 써봤습니다. 장소성에 대한 주제로 'Memories on the map' 매거진을 만들어봤고, 일상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음악, 여행, 지리에 대한 이야기도 '일상의 지리학'이라는 주제로 엮어봤습니다. 서두에 언급한 프로젝트 앨범 '39'도 일정의 지리는 강선생 캐릭터의 Spin-off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건 음악이니까 GKT(Geography is Kang Teacher)입니다.
지금은 영상의 시대. 이제 궁금하면 네이버가 아니라 유튜브에서 검색하는 것이 점점 익숙해져가고 있고, 동네 조그만 비디오 가게에서 시작한 '넷플릭스'를 비롯해서 수많은 ott기업의 콘텐츠를 여러분들의 휴대폰과 태블릿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에서 시작되어 글로 정리된 나의 콘텐츠도 이제 유튜브에 업로드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지리는 강선생'이라는 브랜드는 유튜브 채널 이름입니다.
본격적으로 업로드한 콘텐츠는 그동안 말과 글 속에서만 존재하고 있던 도보여행 영상입니다. 2012년 여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무작정 떠났던 '춘천→여수 도보여행'의 다이내믹한 스토리가 영상으로 남아있지 않은 것이 썰을 풀 때마다 매번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도보여행을 마친 후에 고성에서 부산까지 가기로 했던 약속도 9년째 못 지키기도 있다는 사실도 항상 아쉬웠습니다. 약속도 지키고 콘텐츠도 촬영할 겸, 2021년 여름방학 당일 고성으로 떠났습니다. 이번에는 기필코 이 모든 과정을 영상으로 남겨야겠다는 굳은 의지의 표현인 고프로를 들고!
그렇게 폭염을 뚫고 17일 동안 걸어서 고성에서 부산까지 700km를 완주했습니다. 너무도 행복했던 뜨거운 여름날의 순간들을 조금이나마 효과적이면서도 재미있게 보여주고 싶어서 며칠밤을 새워가며 영상을 편집했다. 걸으면서 새로운 콘텐츠가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그나마 잘하고 좋아하는 '걷기'와 직업적 정체성인 '교사', 그리고 대학 캠퍼스뿐만 아니라 대학교가 있는 도시와 주변에 대해 궁금해할 것 같은 예비 대학생들을 위한 콘텐츠 '걸어서 대학가자'를 기획과 동시에 촬영했습니다. 그 외에도 전기차 콘텐츠 'TESLIFE'에는 테슬라와 아이오닉 5를 몰면서 경험했던 전기차에 대한 소소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들이는 노력에 비해서 성과가 그렇게 좋지 못했던 도보여행 영상에만 집중하기보다는 좀 더 조회수가 많이 나오는 주제를 겸하기 시작했습니다. 학교와 학생을 주제로 하되, 그렇다고 일반적인 선생님의 Vlog가 아닌 좀 더 색다른 주제를 고민해 봤고, 그렇게 탄생한 영상이 '선생님이 교복 입고 출근하면 생기는 일'입니다. 이 영상은 인스타그램 릴스 기준 조회수 약 150만 회가 나왔습니다. 이 영상 덕분에 신문사와 인터뷰를 하기도 했고, 세종에 있는 중학생과 줌으로 인터뷰를 하기도 했습니다.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서 콘텐츠를 기획하고,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해서 업로드하는 과정은 이야기를 하고 글 쓰는 것과는 또 다른 창조의 느낌이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일련의 과정 자체가 새로운 이야기가 되었고, 영상에 대해서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를 펼치는 새로운 장이 형성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지리는 강선생'이라는 브랜드(Brand) 통해 지금까지의 이야기와 글들을 브랜딩(Blending)해서 새롭게 탄생시켰고, 이를 통해 또 다른 창작물들을 기획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영상 편집, 캘리그래피, 드로임과 같은 새로운 영역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집요하게 몰입하면서 결국은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처음 코로나 시작한 지리는 강선생이라는 브랜드는 도보여행 영상, 교복 영상, 매점 영상을 거치며 현재 7만 2천 명이라는 꽤나 많은 구독자를 보여한 유튜브 채널로 성장했습니다. 이는 당연히 많은 분들의 응원과 격려, 시대를 잘 탄 운,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적극적인 참여, 그리고 저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어쨌든 저는 저의 과거 이야기를 책으로 풀었다면, 현재의 이야기를 유튜브라는 창구로 분출하고 있습니다.
6. 다시, 이야기
이야기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작고 소소한 이야기들은 누군가의 일상을 보여주고, 발랄하고 이색적인 이야기는 또 누군가의 평범한 일상에 활력소를 불어넣어 줍니다. 가벼운 농담 같은 아이스 브레이킹은 낯선 분위기 가운데 등장하여 그 무게감을 해소시켜주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이야기는 사람의 생각을 변화시키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뇌리 속에 파고든 하나의 새로운 이야기는 마치 잔잔한 유튜브 알고리즘에 영향을 주는 하나의 검색어처럼 한 사람의 생각을 산뜻하게 바꿀 수 있고, 이 작은 변화는 또 다른 획기적인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1998년 초, IMF 위기 극복을 우선 과제로 부여받은 김대중 대통령이 세계 각국의 경제 전문가들을 청와대로 초청했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서 대통령은 소프트뱅크 창업자 손정의에게 지금 시점에서 대한민국에 가장 필요한 세 가지가 무엇인지 물었고, 재일교포 손정의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Broadband! Broadband! Broadband!"
20세기가 저물고 21세기가 시작되는 거대한 하드웨어의 시대에서 말랑말랑한 소프트웨어의 시대로의 전환되는 시점에 Broadband(초고속 인터넷)의 중요성을 세 번이나 반복해서 말한 그의 혜안이 놀랍기도 하고, 이를 그대로 정책에 옮겨 현재 IT강국 대한민국의 초석을 마련했던 대통령의 추진력이 감탄스럽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다포스 포럼, 4차 산업혁명, AI, 빅데이터와 같은 낯설지만 익숙한 단어들이 마구 쏟아지는 지금 바로 이 시점에 우리 사회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이러한 대변혁 속 학교 현장에서 수업을 하는 교사에게 가장 필요한 역량은 무엇일까요? 새롭지만 무섭고 그래서 약간은 에일리언 같기도 한 저것들에게 인간이 대체되지 않으려면 과연 어떠한 것들을 갖추어야 할까요?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Story! Story! Story!"
(인터미션) 15분
Ⅱ. 음악과 함께하는 북 콘서트
1. 외국인 노동자의 첫 번째 여행
첫 번째 이야기는 제가 19살, 고3일 때 시작됩니다. 수능을 정말 망쳤습니다. 평소 모의고사보다 70점 가까이 떨어졌거든요.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수능으로만 대학을 가던 시기라서 정말 절망적이었어요. 누구가 사연은 있고, 핑계가 있겠지만 저는 당시 정말 억울했습니다. 그 이유는 조금 있다가 자세하게 해 드릴게요. 아무튼 그렇게 수능을 망치고 초점 없는 눈으로 맥없이 지하철 4호선 혜화역 플랫폼에 서 있는데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아버지의 첫마디는 저를 더욱더 절망의 늪으로 빠지게 했습니다. “엄마가 암에 걸렸다”
당시 고3이었던 저는 4기, 전이율, 생존율 등 어려운 말보다 엄마가 암에 걸렸단 그 자체가 너무 충격적으로 다가왔어요. 수능을 망치고 인생이 끝난 것 같은 기분에 휩싸여있는 19살 아이에게는 너무 가혹한 시간이었어요. 전화를 끊고 주변 사람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펑펑 울었어요. 그때 귓가에 들렸던 노래가 이 노래입니다.
‘울지 말고 하늘을 봐 리틀 베이비’ 지금도 가끔씩 이 노래를 들으면 당시의 감정이 전달됩니다. 가사 한마디 한마디에서 정말 많은 위로가 되었어요.
가진 게 전혀 없었지만 자존심을 쓸데없이 하늘을 찔렀고 자존감을 바닥을 치던 시기라 원치 않은 대학은 다니고 싶지 않아서 도피 유학을 택했습니다. 그렇다고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저희 집 경제 상황이 좋아서 유학을 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학비의 일부와 생활비 전부는 제가 스스로 감당해야 했거든요. 캐나다의 깡촌 중부 매니토바주의 위니펙에서 제가 처음으로 한 아르바이트가 일식집에서 접시 닦는 일이었어요. 처음에는 주방장 찰리에게 갖은 구박을 받으며 몰래 주방에서 울며 캘리포니아롤을 삼켜야 했지만, 점차 영어 실력도 늘고 일도 능숙해지면서 안정기에 접어듭니다.
열심히 접시를 닦던 일식집 Mooshiro
어느 정도 돈이 모이고, 운 좋게 합격한 대학에서 친구들도 많이 생겼습니다. 방학이 되자 친구들은 저마다 여행을 떠난다고 합니다. 아직까지 혼자 여행을 떠난 적은 없지만 복작거리며 여행을 준비하는 친구들의 모습이 부러웠습니다. 지금 나의 상황이 여행을 떠날 만큼 여유롭지는 않았지만 지금 떠나면 안 될 것 같은 직감이 들었어요. 그렇게 큰 마음을 먹고 캐나다 깡촌 일식집에서 접시를 닦던 외국인 노동자는 캐나다 동부로 첫 번째 여행을 떠납니다.
친한 중국인 친구 유웨이에게 빌린 카메라와 몇 달 동안 차곡차곡 모은 500달러 들고 떠난 여행은 한국과의 회포를 풀기 위해 코리안 타운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감자탕에 소주 한잔하고 혼자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면 한국을 추억했습니다. 재즈펍에서 처음으로 재즈의 매력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여행 경비의 1/5을 넘는 돈으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뮤지컬을 봤습니다. 덕분에 숙소는 무너질 것 같은 차이나타운의 게스트하우스로 했죠. 그렇게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롤러코스터가 있다는 원더랜드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양의 물이 한꺼번에 쏟아진다는 나이아가라를 담은 사진과 영상들은 여행 마지막 날 카메라 버튼을 잘못 눌러버려서 전부 사라져 버렸답니다.
토론토 차이나타운에서 사라져버린 나이아가라의 추억
2. Love story in Italy
캐나다에서 돌아와서 군대를 갔습니다. 제대를 앞두고 있던 겨울, 유럽 여행을 준비했습니다. 배낭을 메고 유럽으로 떠나는 로망은 누구나 갖고 있잖아요. 처음 떠나는 유럽 여행이었지만 패키지여행으로 떠나고 싶지는 않았어요. 혼자 한 달 넘는 유럽 여행을 준비하다 보니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유럽 여행 카페에 온오프라인으로 출석하며 정보를 얻으며 차근차근 유럽 여행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다가 출발을 며칠 남지 않은 시점에 유럽 여행의 동반자, 유럽 여행 카페 ‘유랑’에서 한 글을 봅니다. ‘혹시 크리스마스에 프라하에 계신 분?’ 저의 일정이 마침 크리스마스이브에 체코 프라하로 들어가는 일정입니다. 그렇게 저는 야경이 그렇게 아름답다는 프라하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게 됩니다.
2006년 12월 24일, 체코 프라하 바츨라프 광장 기마상 앞에 약 30명의 사람들이 모여있습니다. 설레는 표정으로 근처 펍으로 들어가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벌였습니다. 그때 같은 테이블에 앉았던 6명과 친해졌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남자 셋, 여자 셋이었던 우리는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금세 친해졌고, 서로의 일정을 변경해 가면서 나머지 여행을 함께 하기로 합니다. 저는 잘츠부르크로 가는 일정을 취소하고 빈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계획에도 없던 알프스에서 스키를 타기로 했습니다. 물론 제가 그렇게 무리하게 일정을 바꾼 이유는 그 멤버 중 한 명, H를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크리스마스 파티 in 프라하
우리가 함께 하는 여행은 프라하에서부터 음악의 도시 빈, 스키장이 있던 바드가스타인, 그리고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이어졌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들은 서로 더욱더 가까워졌고, 그만큼 제가 H를 좋아하는 마음은 커졌어요. 하지만 저는 이제 더 이상 이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없게 되었어요. 저는 이탈리아 수도 로마로 가야 하고 나머지 멤버들은 밀라노를 거쳐 스위스로 가는 일정이거든요. 아무리 사람이 좋아도 유럽에 왔는데 이탈리아 로마를 포기할 수는 없죠. 저는 왕복 여섯 시간이나 걸려가며 베네치아에서 밀라노까지 그들을, H를 마중했습니다. 조금이라도 함께 있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3일 후에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보름 가까이 북적이며 함께 지내다가 혼자 베네치아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저는 울적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로마로 가는 야간열차 안에서는 그토록 기다리던 로마이었건만 기쁘기는커녕 슬픈 기분이 가득했어요.
그래도 3일 후에는 피렌체에서 그녀를 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로마에서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3일 후 새벽, 첫 번째 기차를 타고 피렌체로 향했어요. 약속 시간은 12시였지만 조금이라도 일찍 피렌체에 가고 싶었거든요. 피렌체 골목길을 걷다가 아침 햇살을 반사하며 반짝거리는 유리 공예품도 H를 만나면 주려고 하나 샀어요. 그렇게 12시가 됐고 약속 장소인 우피치 미술관에 도착했는데, 아뿔싸! 사람이 너무 많은 거예요. 거기다가 우피치 미술관의 입구는 무려 네 곳이나 있어서 연락처도 서로 없던 우리가 만날 수 없겠다는 불안한 기분이 들기 시작합니다. 하루 종일 우피치 미술관을 몇 바퀴나 돌며, 아르노강을 서성이며, 다리를 몇 번이나 건너면서 미켈란젤로 언덕도 가봤지만 우리는 만날 수 없었어요. 해가 지고 나서야 우리가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로마로 가는 마지막 기차를 타고 돌아왔어요.
해닐녘까지 서성였던 피렌체의 아르노강과 베키오 다리
다음 날, 바티칸 투어가 예약되어 있었지만 전혀 감흥이 없었어요. 그냥 대충 둘러보다가 얼른 로마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베드로 대성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줄을 서있는데, 그 순간 뒤에서 누가 저를 부를 거예요! “어? 오빠 여기서 뭐 해?” H였어요! 어제 피렌체에서 약속을 정하고도 못 만났는데, 훨씬 더 큰 로마에서 우연한 장소에서 우연히 만난 거죠! 저는 티는 안 냈지만 너무도 기뻐서 만약 제가 강아지였다면 꼬리를 마구 흔들었을 거예요. 그렇게 저는 그날 저녁 스위스 베른으로 떠다는 기차표를 다시 한번 취소하고 로마에 하루 더 있기로 합니다. 그래도 내가 3일 동안 먼저 로마에 있었으니까 로마를 가이드해 주기로 했거든요. 로마의 명소를 돌아다니면서 사진도 찍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추억을 쌓았어요. 그리고 해가 질 무렵, 과거 로마의 흔적인 포로 로마노가 한눈에 보이는 로마 시청 건물 옥상 카페에서 그녀에게 어제 피렌체에서 산 선물을 전해줬습니다.
로마를 떠나 저는 스위스, 프랑스, 영국 런던으로 왔습니다. 저도 이제 여행이 막바지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유럽 여행에 대한 내공이 쌓인 상황이었어요.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에게 마치 제가 유럽 여행을 준비하던 당시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이제 막 유럽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줬어요. 그들에게 제가 한 달 동안 찍었던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도시별로 갈만한 곳을 추천해 줬어요. 그때 게스트 하우스에는 저와 비슷한 일정을 다녔던 일본 사람이 있는데 그도 자신의 사진을 공유하면서 함께 여행을 이야기했어요. 그때 주변 사람들이 그가 로마에서 사진 한 장을 보면서 저에게 이야기했어요. “야 이거 혹시 너 아니야?” 그 사진은 바로 제가 로마 시청 옥상 카페에서 H에게 선물을 주고 수줍게 웃고 있는 순간을 담고 있었어요.
저 또래 남자분들은 많이 공감하실 거예요. 아들은 아버지와 친해지기 참 힘들다는 거요. 처음부터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지는 않았어요. 어릴 적 제가 가장 좋아하고 또 닮고 싶은 사람은 아버지였으니까요. 그림도 잘 그리고 무엇이든 잘 만드시는 아버지는 어린 저에게 우상이었어요. 8살 생일 선물로 받은 아카데미 m16 비비탄 총을 밤새 조립하시던 아버지의 모습, 그 순간이 제가 아버지를 가장 좋아하던 때였던 것 같아요. 하지만 딱 그때까지였어요. 저에 대한 기대가 컸던 아버지는 저에게 여간해서 칭찬을 해주시는 일이 없었어요. 훈계와 명령, 꾸짖음만 있었어요. 중학교에 올라가자 저도 반항을 하기 시작했고, 고등학교 이후로는 아버지와는 대화를 나누는 일이 사라졌어요.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 고3 수능 하루 전날,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긴장해서 잠 못 이루는 저에게 분노의 사자후를 외치셨고, 저도 참지 않고 그동안 아버지에게 쌓였던 분노를 터뜨렸습니다. 어머니는 울면서 두 부자를 말리셨고, 저는 해가 뜰 때까지 화를 삭이지 못했고 눈물을 흘리며 밤을 새웠습니다. 이게 저의 고3 수능 전날 벌어졌던 상황이에요. 그리고 결과는 처음에 말씀드렸죠.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저의 인생에 참 태클을 많이 걸었던 것 같아요. 무관심한 아버지의 자녀 교육 방식을 그냥 쭉 유지하셨으면 오히려 좋았을 것 같은데, 아버지는 저의 중요한 순간에 계속 자신의 관점을 강요하셨어요. 수능 전날 이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제가 캐나다 유학을 한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서 새로운 꿈,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했던 때에요. 군대 휴가를 나와서 횟집에서 술 한잔 하며 아버지에게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저의 꿈을 이야기했고, 그 순간 함께 상과 함께 광어는 뒤집어졌고, 저의 꿈 또한 무너졌죠. 저는 그래도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해서 디자인 입시를 준비해서 원하는 학과에 실패했지만 아버지의 반대와 저의 용기부족으로 결국 디자인과에 진학하지 못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아버지에게 완전히 마음의 문을 닫았습니다.
전혀 원하지 않았고 생각지도 못했던 사범대 지리교육과에 다니면서 처음에는 방황도 많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대학 생활에 적응을 했어요. 특히 여행을 다니면서 마음의 치유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아버지와의 관계도 점차 괜찮아졌어요. 저와 아버지 둘 다 나이를 먹어서였을까요, 아니면 아버지와 물리적 심리적 거리가 멀어져서였을까요. 아버지는 제가 다시 대학을 다닐 무렵 30년 넘게 다니시던 회사를 나와 베트남으로 사업을 하러 가셨어요. 출국하던 날 공항에서 본 아버지의 모습에서 가장의 쓸쓸함과 늦은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에 대한 불암감을 봤어요. 항상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치던 모습이 아니라서 아들로서 조금 슬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음 해, 베트남 여행을 계획했어요. 평소 가보고 싶기도 했고, 그래도 아버지가 계시니까 얼굴은 한번 봐야지라는 마음으로요. 호찌민 공항에서 어색한 부자간의 상봉을 한 후, 숙소에 들어가서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불쑥 “내일 메콩 델타로 같이 여행 안 갈래?”하고 말씀하십니다. 아직 대화를 하기도 어색한 사이인데 아버지와 단둘이 여행이라니!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제안에 저는 거절하지는 못 하고 ”내일은 일정이 있으니 모레 가죠 “ 다소 퉁명스럽게 대답했어요. 그렇게 25년 만에 처음으로 부자간 처음으로 여행을 가게 됐습니다. 메콩 델타 정글 숲을 카약을 타며 여행했고, 베트남 전통 모자 논을 쓰고 함께 기념사진도 찍었어요. 하루 종일 여행을 한 후 호찌민으로 돌아와서 평소 아버지가 자주 가신다는 식당에서 소주를 마셨습니다.
호찌민으로 돌아와서 아버지와 소주 한잔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을 거예요. 아버지는 자신의 아버지인 할아버지에 대해서 이야기하셨어요. 할아버지도 아버지에게 기대가 많았고 칭찬보다는 훈계와 강요가 많았었다고. 그래서 그게 참 힘들고 싫었는데, 본인도 아들인 나에게 그렇게 한 것 같다고. 그 순간,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아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버지는 나와 참 많이 닮은 것 같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죠. 제가 아버지 아들이니까요. 둘 다 소주를 좋아하고, 기타 치면서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고, 시와 윤동주를 좋아하고, 역사와 철학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닮으셨듯이, 저도 아버지를 꼭 닮아있었습니다.
그로부터 3년 후, 28살이 되었고 졸업을 앞두었지만 사회로 나갈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저는 무척이나 불안했습니다. 사범대를 다녔지만 임용 시험을 전혀 준비하지 않았고, 2년 넘게 대학원 유학을 준비했지만 능력과 노력이 부족했고, 그렇다고 경제적 상황 여의치 않아서 지금 이 상황이 너무도 공포스러웠습니다. 그 순간, 아버지가 떠올랐습니다. 아버지도 28살 때 다니시던 회사를 그만두시고 아내와 자식이 있는 상황에서 고시공부를 시작하셨거든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서 그때 28살의 아버지는 무섭지 않았는지, 그 상황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진심으로 물어봤습니다.
한참 묵묵히 들으시던 아버지는 저에게 “너는 뭘 하든지 잘하고 어디 가서 든 기죽지 않잖아. 뭘 그렇게 무서워하냐. 별 것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세상에서 나랑 가장 닮은 남자가 하는 별 것 아닌 그 한 마디가 세상에서 가장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에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한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아버지에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대학원 유학이라는 꿈은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싸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어요. 물론 유학에 필요한 학점을 맞추고, 필요한 영어 점수를 획득하고, 각종 논문 공모전에 참가하는 등 준비를 게을리하지는 않았지만,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다른 꿈을 준비한다는 것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확실히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졸업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거의 모든 대학원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았고, 한 군데 연락이 온 곳에서는 장학금을 하나도 받지 못하는 불완전한 합격이었습니다. 유학에 대한 두려움을 알고 있었고, 경제적 부담도 컸던 상황이라 저는 2년 간 열심히 준비했던 유학이라는 꿈을 그 순간 포기했습니다.
졸업 후에는 평범한 사범대생들처럼 임용 준비를 하지 않았으니까 마땅히 할 일이 없었어요. 아는 선배의 추천을 받아서 교육 관련 스타트업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마침 그곳에서 당시 떠오르고 있던 '자기주도학습'을 활용한 학습법 코칭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운 좋게 저는 준비 작업부터 거의 모든 것을 하게 되었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은 저의 성격에 잘 맞았어요. 법원에 가서 법인을 설립하고, 변리사와 연락해서 상표를 등록하고, 구직 사이트에 들어가서 채용글을 올리고 지원자 면접을 보는 등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제가 그곳에서 1년 간 온몸을 부딪치며 배우며 일했던 과정은 힘들었지만 정말이지 짜릿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렇게 스타트업이 자리를 잡고, 거액의 투자를 받아서 번듯한 강남에 사무실로 열고, 유명 언론사와 협업을 하면서 우리 회사는 이쪽 시장에서 꽤나 유명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저는 초반의 열정을 잃어버렸습니다. 사실 그것보다는 사교육 특성상 학부모와 학생들의 불안감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고, 강남 센터장이면서 프로그램 상담 역할을 맡은 저는 반드시 성적이 오른다는 일종의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초반에 받던 월급의 배 이상을 받고 있었지만, 저는 점차 일에 대한 흥미와 열정을 잃어버렸고 여름이 막 시작되던 어느 날 고민 끝에 스스로 모든 것을 준비하고 만들었던 회사를 자진해서 그만두었습니다.
회사를 그만둔 날 인터넷에서 어떤 기사를 봤어요.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 노래가 참 좋다는 내용이었는데 그 기사를 보자마자 불현듯 저 노래를 직접 여수 밤바다를 보면서 들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제 직업도 없으니까 시간도 많겠다 여수까지 걸어가면 좋겠다! 출발 지점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도시 춘천으로 정해야지! 이렇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결국 바로 그날 저녁 친한 친구가 있는 춘천으로 향했고, 다음날 새벽 배낭을 메고 여수로 출발했습니다. 총 800km를 걷는 이 도보여행의 이름은 '내 생애 단 한번'이라고 정했어요. 지금 이 순간은 단 한 번뿐이니까요.
춘천 여수 도보여행, 내 생애 단 한번
한여름에 무거운 배낭을 메고 하루 종일 걷는 것은 누구에게는 정말 고되고 의미 없는 일이겠지만, 저는 걷는 모든 순간순간이 행복하고 의미가 가득했어요. 특히 춘천에서 여수까지 걸어서 여수 밤바다 노래를 듣는다는 너무도 확고한 목표가 있고, 하루를 걸으면 그 하루만큼 목표가 달성된다는 가시적인 성과가 있으니까, 다리가 정말 아프고 물집이 잡혀서 터지는 고통이 있더라도 도보여행의 순간들은 정말 행복했습니다. 21일 만에 소박한 여수 구항이 보이는 돌산에 올랐고, 거기서 처음으로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 노래를 들었습니다. 행복한 눈물이 흘렀고, 지금 느끼는 모든 감정들이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찰나의 순간이 지나자 갑자기 너무도 허무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마 너무도 확고한 목표를 갖고 있다가 목표를 이루는 순간 그것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기 때문일 거예요. 그때 느꼈습니다. 물론 꿈을 달성하면 너무 행복한 동시에 허무함이 밀려오지만, 행복하기 위해서는 항상 마음속에 꿈을 지니고 있으면서 그것을 위해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요! 21일 동안 걸려서 걸어온 길은 돌아갈 때는 KTX를 타고 2시간 만에 갔어요. 모두 다 빠름과 효율을 추구하면서 남들 시선을 의식하는 시대에 그렇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제 모습이 순간 뿌듯하다고 느꼈고, 불현듯 베리스모 오페라의 시초 격인 까르멘의 작곡가 비제가 떠올랐어요. 비제는 비록 시기를 잘 못 타고나서 생전 빛을 못 봤지만, 저는 제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면서 빛을 보고 싶다는 욕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돌산대교와 소박한 여수 밤바다
Epilogue. 평범한 하루가 여행이 될 수 있다면
고등학교 시절 일본은 저에게 동경의 대상이었어요. 노벨 문학상 작가 가와타바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을 좋아해서 꿈의 여행지가 니카타이기도 했고, 산길에서 레이싱을 펼치는 애니메이션 이니셜 D의 배경 군마현을 꼭 가고 싶다고 했죠. 오죽하면 당시 가장 좋아하던 가수가 일본 락 밴드 Spitz였고, 행복의 3요소를 'Spitz+샤워+바람'이라고 노래를 부르고 다녔으니까요. 아무튼 저도 이런 덕후였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던 제가 회사에 취업을 하고 가는 첫 워크숍으로 일본 도쿄로 가게 되었습니다. 나리타 공항에 도착해서 도쿄 시내까지 달리는 기차 안에서 수백 번도 넘게 들은 가장 사랑하는 Spitz의 Robinson을 들었습니다.
공식적인 회사 일정을 마치고 마지막 날은 온전히 혼자 보내는 자유시간이었어요. 아침 일찍 숙소를 나와 근처 카페로 갔습니다. 카페에 앉아서 여행을 정리하며 글을 쓰고 있는 순간 불현듯 이상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분명히 여기 도쿄 이이다바시 역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며 여행하고 있는데, 제 옆 테이블에 앉아있는 일본 사람은, 그리고 유리창 밖으로 바쁘게 출근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분명 나와 같은 공간에 있지만 여행이 아닌 일상을 살고 있습니다. 분명 똑같은 공간에서 똑같은 행위를 하고 있는데 누구는 여행을 하고 다른 누구는 일상을 살고 있다는 것이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도쿄의 평범한 일상과 노을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하루하루 똑같이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을 살면서도 그 하루를 여행처럼 살 수는 없지 않을까? 매일매일을 여행처럼 산다면, 평범하게 일어나는 아침을 여행자의 마음가짐으로 한다면 다가올 하루가 잔뜩 기대되어서 기분 좋게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에요. 그래서 매일매일 신나게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하루라는 여행을 준비하지 않을까요?
사실 같은 장소여도 그 장소를 받아들이는 느낌, 그리고 추억은 각자 다르게 적힙니다. 정동진은 누군가에게는 가족들과 새해 일출을 보러 갔던 추억이 있는 장소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연인과의 첫 키스의 추억이 있는 장소일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쓰디쓴 이별의 장소일 수도 있으니까요. 평범한 일상의 장소, 학교 앞에 있는 벤치, 너무나도 익숙한 동네도 누군가에게는 아기자기한 추억이 있는 장소일 수 있는 것이죠. 결국 장소를 바라보는 마음가짐(attitude)이 그 장소를 의미 있게 만든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평범한 매일의 일상도 그저 그런 하루가 될 수도 있지만, 어떻게 생각하냐에 따라서 의미 있고 설레는 여행의 한 순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저와 여러분의 내일 아침도 두근거리면서 하루를 계획하는 설레는 여행의 아침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