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토리텔링] 서울특별시 여의도, 노들섬, 밤섬
여기 아주 특별한 섬이 있습니다. 바다가 아닌 거대한 강 한가운데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거대한 도시 서울의 심장부에 자리한 섬, 바로 여의도(汝矣島)입니다. 여의도는 우리가 평소 알고 있던 일반적인 섬의 모습과는 많이 다릅니다. 바다의 파도 소리 대신 도시의 자동차 소리가 들리고, 갈매기의 울음소리 대신 금융가의 분주한 발걸음 소리가 가득합니다. 이는 여의도가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 아니라 한강의 퇴적 작용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하중도(河中島)'이기 때문입니다.
여의도라는 이름의 유래를 찾아보니 흥미롭습니다. 조선 시대까지 여의도는 홍수가 나서 한강이 범람하면 물에 잠겨 형체도 없이 사라지는 섬이었습니다. 홍수가 끝나고 물이 빠진 후에도 농사가 잘되는 기름진 땅이 아니라 그저 드넓은 모래톱과 풀밭들로 가득한 그런 땅이었죠. 그래서 여의도라는 지명의 유래가 "이런 쓸모없는 땅, 너나 가져라"라는 뜻에서 '너의 섬', 즉 '여의(汝矣)'도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그렇게 여의도는 사실상 버려진 땅이었습니다. 물론 그 평평한 지형 덕분에 일제강점기 때는 비행장으로 쓰이기도 했고, 섬 전체가 물에 잠기는 장마철을 제외하고는 말을 키우는 목초지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서울이 지금처럼 거대해지기 전까지 여의도는 그저 거친 모래벌판이었을 뿐입니다. 이 쓸모없던 섬의 운명이 완전히 뒤바뀐 것은 '한강의 기적'이 한창 일어나고 있던 1960년대 말이었습니다.
당시 급격하게 팽창하고 있던 서울은 더 많은 땅이 필요했습니다. 정부는 여의도라는 거대한 모래톱에 주목했습니다. 먼저 홍수 때마다 물에 잠기는 것을 막기 위해 섬 둘레에 거대한 둑, '윤중제(輪中堤)'를 쌓아 올렸습니다. 그리고 섬 전체의 높이를 돋우는 대대적인 개발 공사를 벌였죠. 그렇게 이 거대한 모래톱은 새로운 땅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무것도 없던 섬 위에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핵심 기능들이 하나씩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섬의 서쪽 끝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상징적인 건물이 들어섰습니다. 바로 파란색 거대한 돔 지붕이 인상적인 국회의사당입니다. 여의도가 정치의 중심지로 자리 잡은 순간이죠. 동쪽에는 한국증권거래소가 문을 열었고 이어서 수많은 증권사와 금융사들이 근처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대한민국의 돈은 이제 여의도로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한때 대한민국 최고층 빌딩이었던 63 빌딩 역시 여의도 금융가의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의 '여론'을 만드는 방송국들도 여의도를 가득 채웠습니다. KBS, MBC, SBS 등 주요 방송사들이 모두 이곳에 거대한 사옥을 짓고 전파를 쏘아 올렸습니다. 그렇게 여의도는 '정치 1번지', '한국의 월스트리트', '방송의 메카'와 같은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버려졌던 모래톱이 불과 수십 년 만에 대한민국의 심장부로 탈바꿈한 것입니다.
평일 낮의 여의도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치열한 공간 중 하나입니다. 잘 닦인 아스팔트 위로 정치인들을 태운 최고급 세단들이 미끄러지듯 움직이고, 빼곡한 빌딩 숲 사이를 수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입니다. 하지만 퇴근 시간이 지나고 직장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밤이 되면 그리고 직장인들이 출근하지 않는 주말이 되면 여의도는 언제 그랬냐는 듯 여느 아파트 단지와 같은 일상의 풍경이 펼쳐집니다. 이처럼 여의도는 수많은 사람이 일하는 '일터'이면서 역시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삶터'의 두 가지 얼굴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매년 4월이면 윤중로를 따라 수천 그루의 벚나무가 일제히 하얀 꽃망울을 터뜨립니다. 여의도 벚꽃축제가 열리면 딱딱한 회색 빌딩 숲은 1년 중 가장 화려하고 낭만적인 모습으로 변합니다. 섬의 중심에는 여의도 공원이 있습니다. 원래 이곳은 1970~80년대 '5·16 광장'이라 불리던 거대한 아스팔트 광장이었습니다. 군사 퍼레이드나 대규모 관제 행사가 열리던 권위적인 공간을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나무를 심어 시민들의 쉼터로 돌려준 것입니다. 어쩌면 여의도는 섬이 가진 본래의 속성인 ‘고립’이나 ‘자연’과는 가장 거리가 멀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여의도는 가장 도시적이고 현대적인 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의도가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보여준다면 그와 멀지 않은 곳에 아주 대조적인 섬이 있습니다. 바로 여의도 옆의 작은 섬, 노들섬입니다. 한강대교가 그 허리를 정확히 관통하고 지나가는 노들섬은 여의도와 같은 한강 물줄기를 공유하지만 그 운명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노들은 순우리말로 '백로(鷺)가 놀던 뭍'이란 뜻입니다. 이름 그대로 이곳은 본래 물새들이 찾아와 쉬어가던 한가롭고 평화로운 모래톱이었습니다. 하지만 1917년 최초의 한강 인도교인 제1한강교(현재 한강대교)가 건설되면서 노들섬의 운명도 바뀌기 시작합니다. 섬이 다리의 중간 교각을 받쳐주는 튼튼한 발판 역할을 하게 된 것이죠.
일제강점기 동안 노들섬은 유원지로 개발되어 수영장과 스케이트장이 들어서기도 했습니다. 여의도가 눈부신 개발의 중심에 있던 1960~70년대에 노들섬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차 잊혀갔습니다. 한강 개발 과정에서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가 섬의 양쪽을 스쳐 지나가면서 노들섬은 자동차 없이는 접근조차 힘든 마치 '도시 속의 무인도'가 되어버렸습니다. 한강대교 위를 쌩쌩 달리는 버스 창밖으로 무심히 스쳐 지나가는 잡초만 무성한 섬. 그것이 오랫동안 우리가 기억하던 노들섬이었습니다.
이 버려진 섬을 다시 사람들이 찾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2000년대 들어 서울시는 이 금싸라기 땅을 어떻게 활용할지 여러 가지 계획을 내놓습니다. 오페라 하우스를 짓겠다는 거창한 계획이 발표되기도 했고, 한강 예술센터 같은 문화 시설이 논의되기도 했죠. 하지만 그 계획들은 번번이 무산되거나 표류했습니다. 그렇게 수십 년간 '개발'과 '방치' 사이를 오가던 노들섬은 마침내 2019년 아주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노들섬에는 높은 건물을 짓는 대신 섬의 원래 지형을 닮은 나지막한 건물들이 들어섰습니다. 그 안에는 대규모 공연장 대신 라이브 하우스와 음악 서점이 화려한 레스토랑 대신 아담한 카페와 식당들이 자리를 잡았죠. 그리고 섬의 많은 부분을 개발하지 않고 억새와 갈대가 자라는 너른 마당과 산책로로 남겨두었습니다. 여의도가 '채움'을 선택했다면 노들섬은 '비움'을 선택한 셈이죠. 주말이면 이곳은 아주 특별한 쉼터가 됩니다. 자동차 소음에서 벗어나 강물 소리를 들으며 잔디밭에 앉아 책을 읽고, 해 질 녘이면 63 빌딩과 여의도의 스카이라인을 배경으로 붉게 물드는 노을을 감상합니다. 노들섬은 비로소 한때 백로가 놀던 그 평화로운 '노들나루'의 기억을 되찾은 듯합니다.
물론 노들섬의 변신이 모두에게 환영받는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여전히 접근성이 불편하고, 그 쓰임새가 모호하다는 비판도 있죠. 하지만 저는 이 작은 섬이 우리에게 "섬은 꼭 무언가로 가득 채워져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의도가 심장처럼 뜨겁게 박동하는 곳이라면 노들섬은 잠시 숨을 고르는 '쉼표' 같은 곳입니다. 날씨가 좋은 날 잠시 여유가 생기면 한강대교를 걸어서 노들섬에 들러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한강의 하중도에 대해 글을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영화가 한 편 있습니다. 바로 2009년에 개봉한 ‘김씨 표류기’라는 흥미로운 작품이죠. 이 영화의 배경이 된 섬이 바로 여의도 바로 곁에 붙어있는 또 다른 하중도 '밤섬'입니다. 여의도의 서쪽에 위치한 밤섬은 노들섬과는 또 다른 운명을 맞이했습니다. 노들섬이 어떻게든 사람들을 다시 불러 모으기 위해 애썼다면, 밤섬은 철저하게 사람들의 접근을 막았으니까요.
밤섬은 아픈 역사가 있습니다. '율도(栗島)'라고 불리던 밤섬은 이름만큼 밤나무가 많았고, 꽤 많은 주민이 농사나 어업을 하며 살아가던 평화로운 마을이었습니다. 하지만 1968년 여의도를 개발하기 위한 대대적인 공사가 시작되면서 밤섬의 운명은 바뀌게 됩니다. 여의도에 윤중제를 쌓아 올릴 돌과 자갈이 필요했던 정부는 무려 이 밤섬을 '폭파'해버립니다. 폭파로 얻어진 골재는 대부분 여의도를 개발하는 데 쓰였고 섬 주민들은 강제 이주당했습니다. 그렇게 밤섬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폭파되고 남은 섬의 흔적 위로 한강의 물줄기가 실어 나른 흙과 모래가 수십 년에 걸쳐 다시 쌓이기 시작한 겁니다. 자연은 이처럼 인간이 낸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이 떠난 그 자리에는 온갖 새들이 날아들었고, 버드나무와 갈대가 숲을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밤섬은 스스로 '도시 한복판의 무인도'로 복원되었습니다. 1999년 정부는 이곳을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했고, 조류 연구 같은 특별한 목적 외에는 출입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영화 ‘김씨 표류기’는 바로 이 '도시 한복판의 무인도'라는 밤섬의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가져왔습니다. 영화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빚에 시달리던 주인공 남자 김씨(정재영 분)는 결국 마포대교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으려 합니다. 하지만 그는 죽지 않았고 어딘지 모를 강변 모래톱에 떠내려와 깨어나죠. 저 멀리 63 빌딩을 비롯한 여의도의 마천루가 보입니다. 아무리 소리쳐도 다리 위 자동차 소음에 묻혀버리고, 강 건너 뭍으로 헤엄쳐 가기엔 물살이 너무 거셉니다. 휴대전화는 물에 빠져 먹통이 되었고요. 그렇게 그는 서울 한복판에서 완벽하게 표류하게 됩니다.
이 말도 안 되는 고립 속에서 주인공 김씨는 역설적이게도 살아갈 이유를 찾기 시작합니다. 버려진 오리배를 개조해서 집을 마련하고, 새똥을 거름 삼아 텃밭을 일굽니다. 그리고 한강의 물고기를 낚시하며 점점 도시 속 무인도에서의 자급자족 생활에 적응해 나가죠. 그리고 그에게 결정적으로 삶의 목표가 하나 생기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짜장면을 스스로 만들어 먹는 것입니다. 그 발단은 우연히 발견한 짜장라면 봉지에 있던 분말스프였습니다. 그는 직접 키운 옥수수와 밀로 면을 만들어서 결국 짜장면을 만드는 데 성공하고 맙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한편으로 김씨의 이런 다이나믹한 상황을 망원렌즈로 지키보고 있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한강 건너편 아파트의 좁은 방 안에 스스로를 사회로부터 표류시킨 또 다른 김씨(정려원 분)입니다. 몇 년째 방 밖으로 나가지 않은 그녀에게 밤섬의 남자 김씨는 과거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온 원시인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이처럼 김씨표류기는 실재 한강에 존재하는 밤섬이라는 장소를 배경으로 현대인의 고립이라는 주제를 기발하게 풀어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도시에서의 치열한 경쟁에서 밀려나 저 조그만 섬에 갇히게 된 남자 김씨가 방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살아가는 여자 김씨보다 불행한 것일까? 혹은 짜장면이라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목표를 갖고 순간을 살아가는 김씨보다 매일 좁은 빌딩 안에서 치열하지만 목표 없이 살아가는 현대인이 더 행복한 것일까?
여의도가 서울이라는 대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그 자체라면 노들섬은 그들에게 "잠시 쉬어가세요"라고 손짓하는 쉼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서울 한복판에 유일하게 남은 자연 그대로의 밤섬은 "완전히 멈추어 스스로를 돌아보세요"라고 말하는 느낌표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