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김석용
삶의 테두리를 넘어서 / 에세이 김석용
창가에 내린 빗방울이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리며 만드는 길은 제각각이다. 빗방울은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내려간다. 누가 정해준 길도 아니고, 그렇다고 미리 그려진 지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중력과 표면의 미세한 굴곡에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갈 뿐이다. 우리의 삶도 그러하지 않을까.
우리는 종종 보이지 않는 테두리 안에서 살아간다. 그 테두리는 누군가 그어준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낸 경계다. 안전함, 익숙함, 편안함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자신을 가두는 선이다. 그 선 안에서는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하고 통제된다. 하지만 그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자리에 앉아 출근길에 오른다. 점심시간이면 항상 가는 식당에서 익숙한 메뉴를 고르고, 퇴근 후에는 정해진 길로 집에 돌아와 비슷한 저녁을 맞이한다. 이렇게 일상은 반복되고, 우리는 그 안에서 안정을 찾는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다른 길로 들어섰다. 평소라면 무심코 지나쳤을 골목길이 갑자기 눈에 들어왔다. 호기심이 발동해 그 길로 들어섰다. 좁은 골목 끝에서 발견한 작은 서점, 창가에 놓인 오래된 책들, 그리고 따뜻한 차 한 잔을 내어주는 노부부의 미소까지. 이전에는 몰랐던 작은 세계가 내 일상과 불과 몇 걸음 차이로 존재하고 있었다.
테두리 밖으로 한 발짝 내디딘 순간이었다.
우리는 왜 테두리를 그리고 그 안에 머무르는 걸까? 아마도 불확실성이 주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실패에 대한 공포, 변화가 가져올 불편함에 대한 거부감, 혹은 단순히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대한 집착. 그러나 테두리 안에만 머무른다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놓치게 될까?
봄에 피는 꽃들은 자신이 얼마나 높이 자랄 수 있을지, 얼마나 화려하게 피어날 수 있을지 미리 정해두지 않는다. 그저 햇빛과 비와 바람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모든 가능성을 펼쳐 나간다. 겨울의 추위를 견디고 봄을 맞이하는 나무들도, 자신이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지 한계를 정해두지 않는다.
자연은 테두리 없이 살아간다.
몇 해 전, 오랫동안 다니던 직장을 떠났다. 안정된 월급과 익숙한 업무 환경, 그리고 편안한 인간관계.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두려웠다. 익숙했던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그것이 가져올 변화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없었다.
첫 몇 달은 혼란스러웠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일상. 모든 것이 낯설고 때로는 버거웠다. 실패도 많았고, 좌절도 많았다. 그러나 그런 과정 속에서 발견한 것들이 있다. 내 안에 숨어 있던 가능성, 전에는 몰랐던 재능, 그리고 무엇보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용기.
테두리 밖으로 나왔을 때 비로소 보이는 풍경이 있다. 그것은 때로 두렵고 혼란스럽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자신을 발견한다.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난 이런 사람이야", "난 저런 일은 못해", "난 원래 그런 성격이 아니야". 이런 말들은 모두 자신에게 그은 테두리다. 그러나 우리는 정말 그런 테두리 안에만 존재하는 사람일까? 아니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넓고 깊은 존재일까?
산책길에 만난 들꽃은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지만, 그저 피어나는 대로 피어나고 흔들리는 대로 흔들린다. 그 자연스러움 속에서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찾는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가 그어둔 테두리를 넘어설 때, 진정한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테두리를 넘어선다는 것은 반드시 거창한 변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매일 다른 길로 출근해보는 작은 시도일 수도 있고,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음식을 주문하는 용기일 수도 있다. 새로운 취미에 도전하거나, 오랫동안 미뤄왔던 여행을 떠나는 것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작은 시도들이 우리 안에 만들어내는 변화다.
창문 너머로 바라본 하늘은 늘 같은 하늘이지만, 매 순간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아침의 하늘, 정오의 하늘, 황혼의 하늘, 그리고 밤하늘까지. 모두 같은 하늘이지만 시시각각 변화하는 모습 속에서 각기 다른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매 순간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제 나는 안다. 테두리는 우리를 보호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우리를 가두는 감옥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테두리는 우리가 직접 그은 것이기에, 언제든 우리가 원한다면 다시 그리거나 지울 수 있다는 것도.
빗방울이 유리창을 타고 내려가며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가듯이, 우리도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면 된다. 테두리 안에 갇혀 있지 않고, 때로는 그 경계를 넘어 더 넓은 세상을 마주할 용기를 가진다면, 우리는 더 깊고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창가에 맺힌 물방울 하나가 천천히 아래로 흘러내린다. 그 작은 움직임 속에서 나는 삶의 진실을 본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길을 가고 있고, 그 길은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진실을.
테두리 너머의 세계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오늘, 나는 내일의 나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