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하는 용기

나를 지키는 건강한 경계선

by 화려한명사김석용

거절하는 용기

나를 지키는 건강한 경계선

글 / 김석용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하고 나면, 왜 이렇게 마음이 무거울까요. 전화를 끊고 나서도,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도, 한참 동안 그 순간이 머릿속을 맴돕니다. "내가 너무 차갑게 대한 건 아닐까", "그 사람이 나를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진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거절은 단 몇 초면 끝나는 일이지만, 그 뒤에 남는 죄책감은 하루 종일, 때로는 며칠 동안 우리를 따라다닙니다.


저도 오랫동안 거절을 두려워했습니다. 상대방이 실망할까 봐, 관계가 틀어질까 봐, 나쁜 사람으로 보일까 봐 항상 "응, 괜찮아"라고 먼저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다른 사람의 부탁을 들어주다 보면 어느새 제 시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정작 제가 하고 싶었던 일들은 미뤄지기 일쑤였습니다. 퇴근 후 친구를 만나고 싶었지만 동료의 업무를 도와주느라 밤늦게까지 회사에 남아 있었고, 주말에 쉬고 싶었지만 지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결국 약속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약할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습니다. 거절하지 못하는 것은 약함이 아니라, 잘못된 친절이라는 것을요. 진짜 친절은 상대방의 요구에 무조건 응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존중하면서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균형을 찾는 일입니다. 모든 부탁에 "네"라고 대답하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게 됩니다. 상대방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 채, 그저 의무감으로 시간을 채우게 되는 것이죠.


거절은 관계를 끊는 행위가 아닙니다. 오히려 건강한 경계선을 그어주는 일입니다. "미안하지만 이번엔 어려울 것 같아"라는 한마디가, "너는 나에게 소중하지만, 나 역시 나 자신에게 소중해"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진정으로 우리를 아끼는 사람이라면, 그 거절을 이해해줄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한 번의 거절로 관계가 무너진다면, 그것은 애초에 건강한 관계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요즘 거절을 연습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죄책감이 밀려왔지만,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이번 주말은 개인적인 일정이 있어서 어려워"라고 말하고, "지금은 내 일에 집중해야 할 시기라서 도와줄 수 없을 것 같아"라고 솔직하게 전합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사람들은 제 솔직함을 받아들여줬습니다. 오히려 "그럴 수 있지, 나도 이해해"라며 먼저 공감해주기도 했습니다.


거절은 상대방을 밀어내는 행위가 아니라, 나를 지키는 행위입니다. 내가 무너지지 않아야 누군가를 진심으로 도울 수 있고, 내가 온전해야 따뜻한 관계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모든 부탁에 "네"라고 대답하는 사람보다, 할 수 있을 때 진심으로 "네"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거절할 때도, "미안해"가 아니라 "나를 이해해줘서 고마워"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오늘도 누군가의 부탁을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여전히 약간의 불편함은 남아 있지만, 예전처럼 하루 종일 괴로워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제 시간을 온전히 저를 위해 쓸 수 있다는 안도감이 찾아옵니다. 창밖으로 저녁 노을이 번지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나를 지키는 연습을 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괜찮은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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