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엄마가 되었다. 엄마가 사는 집, 나에게는 친정이 아닌 그저 엄마집에 첫 방문한 건 내가 결혼을 하루 앞두고였다. 처음 엄마집에 방문할 때 그 집에 걸려있던 가족사진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들의 가족 서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사진들이 협탁에 나란히 곱게 정리되어 있는 모습들을 보면서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내 아이의 사진이 여기 걸릴 수 있을까?
내 의문을 질문으로 엄마에게 했다. 아이를 가지고 만삭이 되어 엄마와의 일을 정리하고 싶었던 날, 물어보았다. 엄마의 딸이 낳은 아이의 사진이 그곳에 걸릴 수 있느냐고. 그러자 엄마는 대답대신 그들의 사진을 치우는 것을 선택했다. 답은 '아니다'였다.
아이를 낳고 몸조리를 해주겠다는 엄마의 제안을 처음에는 수긍했다. 나 이외의 다른 딸들의 산후조리도 도맡아 했다는 엄마의 자부심 섞인 그 말을 믿으면서 나도 여느 딸처럼 엄마의 산후조리를 받아보나 기대했다. 그러나 내가 자연주의 출산을 결심하고부터 엄마와 나는 어긋나기 시작했다. 엄마는 여태 한 달 이상 키워진 갓난아이를 산후조리한 경험만 있을 뿐, 갓난아이를 바로 산후조리해 본 경험이 없던 엄마는 손사래 치며 나의 산후조리를 두려워했다. 그 두려움을 두렵다고 차라리 말을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그저 더 늦게 퇴원하면 안 되겠느냐는 말로 나와 신랑을 당혹스럽게 했다. 신랑과 내가 선택한 곳은 자연주의출산과 조리를 동시에 할 수 있던 곳으로 일반병원보다 비용이 더 많이 드는 곳이라 더 이상 퇴원을 미룰 수 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엄마집에서 내가 편하게 산후조리를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 갔다. 평생 단 한 번 엄마집에 방문한 게 고작인데 내가 그곳에서 편히 산후조리를 할 수 있을까란 생각도 들었다. 친정이 아닌 그저 엄마가 사는 나와는 이질적인 그 공간에서......
아이를 낳고 내가 처음 엄마가 된 날 아이를 눕혀놓고 생각했다. 이 아이마저 누군가의 삶에서 숨겨지면 안 된다. 이렇게 소중하고 작은 생명도 숨겨진다는 사실이 너무 슬펐다. 아이의 첫 백일 사진을 찍고 이 사진을 엄마에게 보낼까 생각하다 마음을 접었다. 순간 화가 났다. 시어머니가 우리의 사진을, 내 아이의 사진을 소중히 거실에 걸어놓은 그 모습과 너무 대비되는 모습에 난 화가 났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이제 더 이상 숨겨지고 싶지 않다 말을 했다. 사랑하는 내 가족이 더 이상 숨겨지고 싶지 않다 말을 전했다. 엄마는 그저 화를 냈다. 본인이 어떻게 해야겠느냐고. 더 이상 본인이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난 그들에게 내 존재와 내 아이의 존재를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엄마는 다시 우리를 숨겼다. 그때 우리를 숨기지 말았어야 했다. 나 혼자 숨겨진 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내 아이까지 엄마는 숨겼다. 이제 나는 정서적 탯줄을 자르려 한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모든 일에서 엄마와 나의 정서적 탯줄을 자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