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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니크 Jun 04. 2021

기술이 왕이라면

테크노폴리(technopoly)


#1

아주 먼 옛날, 탁월한 왕 아레테(arete)에게는 5명의 자식이 있었다. 첫째는 소피아(sophia), 둘째는 에피스테메(episteme), 셋째는 테크네(techne), 넷째는 프로네시스(phronesis), 다섯째는 누스(nous)라고 한다. 소피아는 멍 때리는 것을 좋아하고, 에피스테메는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고, 테크네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프로네시스는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잘 알았고, 막내인 누스는 소피아와 에피스테메를 잘 따랐다.


#2

이윽고 왕이 늙고 병들어서 자식들 중 한 명에게 왕위를 물려주기로 했다. 하지만, 둘째인 에피스테메는 학자가 되기로 했고, 넷째인 프로네시스는 셋째인 테크네를 지지하였고, 막내인 누스는 첫째인 소피아를 지지하였다. 왕위를 놓고 소피아와 테크네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3

왕은 소피아와 테크네를 불러 한 가지 문제를 내었다.


“너희들은 밖으로 나가 백성들의 마음 사로잡아라. 너희 둘 중에 더 많은 백성의 마음을 사로잡은 자를 왕으로 삼겠다.”


#4

소피아는 한 동한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소피아는 문득 깨달은 바가 있어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만났다.


#5

소피아는 우주 만물의 궁극적 진리와 지혜를 이야기하였다. 하지만, 백성들은 대부분 이해하지 못하였다. 이내, 백성들은 소피아를 헛소리만 하는 사람으로 오해하게 되었다.


#6

반면, 테크네는 사람들이 편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편리한 물건들을 많이 만들어 내었다. 백성들은 테크네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때마다 그에게 열광하고 매료되었다.


#7

이를 본 소피아는 테크네에게 말했다.


“네가 만드는 물건의 의미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니? 어떤 물건이든 좋은 면이 있으면, 나쁜 면도 있는 거야.”


테크네가 대답했다.


“그게 무슨 소용이람. 사람들은 새롭고 편리한 것이면 무엇이든 좋아한다고. 괜히 나한테 이길 수 없으니까 그런 소리 하는 거지?”


소피아가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테크네는 듣지 않았다.


#8

얼마가 지났을까. 나라의 백성 중에서 소피아를 따르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고, 대부분은 테크네를 열렬히 사모하게 되었다.


#9

왕은 약속대로 왕위를 테크네에게 물려주었고, 소피아는 그를 따르는 무리와 함께 나라를 떠났다. 그 후로 테크네는 새롭고 편리한 물건들을 많이 만들어 더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다.


#10

백성들은 풍족하게 살았지만, 이내 마음속에 무언가 허전함을 느꼈다. 편리함을 위해 아무 생각 없이 만든 물건들이 그들을 힘들게 만들었다. 백성들은 그제야 소피아가 한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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