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부지 엄마, 모유수유하며 하늘을 날다 2

by MANA

영아가 있으니 여러모로 좋다.

비행기도 일찍 탈 수 있고, 좋은 자리도 챙겨서 주신다.

결혼하고 아이가 없을 때 긴 줄을 기다리며 따분했었는데, 줄 서지 않고 먼저 들어갈 수 있으니 요즘같이 젊은 사람들의 아이를 동반한 해외여행이 잦은 시국엔 이 또한 출산장려정책이 아닌가? ^^;;;


우리 가족의 목적지는 필리핀 보홀.

보홀행 비행기 안에서 최연소자는 단연컨대 우리 딸이었다.

먼저 앉아있는 비행기 안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딸을 보고 한 마디씩 말을 건넨다.

‘아이고’ ‘너무 어리다’ ‘귀엽다’ ‘태어나자마자 해외를 나가네’ 등등

주시는 관심이 부담스럽지 않고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다.

여행을 다닐 때마다 느끼지만 한국인들은 왠지 말 한마디가 트이면 마치 원래 알던 사이처럼 정겨운 느낌이랄까?

10개월인 조그만 우리 딸은 좁은 비행기 좌석에도 불편함 없이 나와한 몸이다.

내 무릎에 앉은 딸의 고슴도치 가시 같이 솟은 머리카락이 내 턱 밑을 간지럽힌다.

단풍잎 같은 손바닥으로 나를 톡톡 건드리고 내 손가락을 장난감 삼아 쪼물락거린다.


비행기가 이륙 준비를 요란하게 한다.

벌써 여기저기서 아이들은 신이 나거나, 겁이 나거나 제각기 다른 이유로 비행기 안이 더 소란스러워진다.

승무원의 이륙 안내 방송이 나오고 고막 안으로 공기가 꽉 차올라 기분이 뚱해진다.


아이들은 지금 이때 음료를 마시거나 사탕을 먹여야 힘들지 않은데, 10개월 쪼꼬미 딸은 그럴 수 없으니 옷을 내려 수유를 했다.

옆에 있던 남편은 행여 누가 나의 가슴을 볼까 본인이 종이가방에 들고 다녔던 ‘목 커튼’을 꺼내 얼른 내 목에 둘러준다.

밤 비행기라 깜깜한데, 거기에 목 커튼까지 두르니 아이는 치우라 손을 내두르며 천을 잡아당겼다. 내 목에 두른 천을 잡아당기니 나 또한 목디스크가 올 것 같았다.

낯선 공간, 익숙지 않는 소리, 거기에다가 천까지 쓰여있으니 딸은 얼마나 답답할 것인가.

참을 만큼 참은 딸은 목청껏 소리를 쳤고 어두웠지만 보이지 않는 눈들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음을 확신했다.

당황한 남편이 나의 목 커튼을 풀러 준 뒤에야 잦아든 딸의 울음소리.

한 손은 모유 먹는 내 가슴 위에 야무지게 올려놓고, 코로 먹는 건지 입으로 먹는 건지 얼굴은 내 가슴에 파묻혀있다. 콧소리가 제법 씩씩거리더니 언제 울었냐는 듯 잠이 들었다.

걱정했던 밤 비행기는 생각보다 아주 양호했고, 예상했던 대로 목 커튼은 아주 요란했다.

보이지 않는 따가운 시선에 어두운 비행기 안에서 목 커튼 고리를 찾아 빼줬던 남편의 마음이 어땠을지 생각하면 안쓰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하다.


보홀에 도착해서도 여행은 참 수월했다.

나 말고도 금발의 외국 엄마들이 영아인 아가들과 함께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고, 그들의 모유수유는 아주 개방적이어서 같은 여자로서도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조선인(?)으로서 시선이 힘들 때도 있었다.

또한 자유로운 양육태도를 보며, 한국에서 느낄 수 없는 ‘허용의 육아 세계’를 간접적으로 맛보았다.

그리고 나도 용기 내서 도전했던 두 가지가 있었다.


한 가지는 ‘식빵 먹이기’였다.

한국에서 가져온 실온 이유식만 먹었던 딸이었는데, 아침에 조식을 먹으러 내려가니 두 세명의 딸 또래 아기들이 식빵을 손에 쥐고 잘 먹는 모습에 우리 딸도 도전해 보았다.

덩어리째 빵이 찢겨서 목에 걸리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식빵의 뽀얀 속살이 침이 닿으면 금세 녹고, 입안에서도 오물오물 가지고 놀다 보면 힘없이 사라져 버려 위험하지 않고 괜찮았다.

식빵 반쪽 덕분에 시부모님과 눈 마주치며 대화도 할 수 있었고, 내 밥도 잘 챙겨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도전은 바로 망고!

보홀에 가서 가족들끼리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베이비시터를 고용했었는데 그분의 추천으로 보트 투어를 하게 됐다.

거기서 이동시간에 망고와 열대과일을 서비스로 주셨는데, 아침의 식빵에 용기를 얻어 딸아이에게 부드러운 망고를 조금 떠서 먹여 보았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맛에 잠시 멈칫하더니 스푼을 잡아당기고, 남아있는 망고 국물을 남김없이 빨아먹었다. 그리고는 부족한지 테이블 위에 망고를 손짓했다.

‘그동안 내가 너무 조심스럽게 아이를 키웠구나.’ 아이에게 괜한 미안함이 들어 망고를 더 떠주려고 할 때 갑자기 시터가 손에 있는 스푼을 빼앗으며 이야기했다.

“필리핀에서는 돌이 지나지 않은 아이에게 망고를 주지 않아요. 털이 있는 과일은 나중에 아이가 성장하고 줘요.” 라며 당부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내가 필리핀 사람은 아니지만 뭔가 필리핀 식을 따라야 될 것 같은 느낌에 아이에게 망고가 묻어있는 수저 대신 쌀떡뻥을 쥐어줬다.

누가 봐도 실망하고 화가 난 딸의 얼굴.

그러더니 떡뻥을 “악!(이거 아니야!)” 소리치며 바닥에 내 패듯 던져버렸다.

그 모습에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의 피부색 언어 국적을 불문하고 모두가 웃음이 터졌다.

배안에 왠지 모를 서먹한 공기는 아이 한 명으로 익숙하고 부드러워진다.

역시 아이는 국적과 문화를 불문하고 사랑을 이어주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은 순조로웠고, 쉬웠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조차도 나의 모유만 있다면 우리 딸은 탄 듯 안 탄 듯 존재감이 없을 정도였다.

셋째 계획은 없지만, 셋째가 있다면 또 돌이 되기 전에 ‘모유수유’와 함께 분명히 또 하늘을 날 의사가 있다.

모유수유. 정말 너무 무지 매우 고되고 힘들고 피곤하고 등등 수많은 수식어구가 붙어야 하는 힘듦이지만, 3개월만 버티면 편해진다.

그리고 엄마의 가슴 건강에도 좋고, 지나고 보니 아이도 잔병치레 없이 잘 자란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해외여행이 쉬어진다.


3개월을 버텨낸 모유수유 중인 엄마라면, 하늘의 수유 선배(?)로서 감히 자신하고 해외여행을 강강강강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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