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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 날아온 메일 한 통 때문에 카메라 울렁증이!

유튜브 천태만상 제 3화 : 제니스에게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

2018년 여름, 포맷의 다변화를 위해 채널에 새롭게 추가한 카테고리가 있다.

[케이맨과의 대화]라는 코너인데, 전원생활이나 유튜브 활동에 대해 나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해보자 하고 시작하였다.

(사실 포맷의 다변화를 통해 나도 좀 편하게 찍어 올리자~ 하는 큰 그림이 있었다. 하루 죙일 찍어 올리고 하루 죙일 편집하는 기존의 영상보다 이렇게 만드는 영상이 효율성 면에서는 비교불가 짱이라는!)     

아~ 근데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고 말을 한다는 것이 어찌나 힘들던지.

아마 이 느낌 유튜브 좀 해봤다는 사람은 금방 알아차릴 것이다.     


이미 유튜브 경력 2년차에 구독자가 4만이 넘어가는데, 왜 그리 카메라 렌즈만 바라보면 식은땀이 나는지.


안경 낀 사람은 이런 상황이 되면 안경에 습기가 찬다. 하얀 습기가 눈에 보이는 순간, 뇌에도 뿌옇게 안개 끼는 느낌이 드는 것이 그때부터는 더이상 촬영도 어렵게 된다.(사실 매번 그런다.)


카메라 울렁증도 극복하면 될 줄 알았다.

아니, 극복했다고 믿었다.

연습, 연습만이 살길이다. 스크립트를 통째로 외우고, NG를 수없이 내고, 엄청난 시간을 들여 편집을 하고 나니 간신히 영상 한 편이 완성되었다.      

그렇게 반년 가까이 [케이맨과의 대화] 코너에 영상을 올리고 나니, 이젠 나름 자신감도 뿜뿜이다.


역시 카메라 마사지에 공들인 보람이 있어!
다~ 죽었어! 해냈어~! 하하하하!


하며 기쁘게 연말을 맞이하고 있을 때였다.

정확히 기억난다. 그날은 2018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오후 5시 경이었다.

술자리 시간을 기다리며 메일함을 열어보았는데,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해있었다.     

장문의 편지였다.


호주에 사는 20대 후반, 이름이 Zenith(제니스)라는 교민이었다.     

내용은 감동적이었다.

제니스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 우연히 나의 영상들을 보며 적지 않은 깨달음이 있었단다.

낯부끄러워 말은 못 하겠지만, 암튼 카메라를 바라보는 내 눈동자에서 진심을 느꼈다고 한다.(결국 다 말했네. 흐미. 이 염치없는...)

그 편지를 읽고 어찌나 가슴이 벅차던지!

아~ 메리크리스마스~ 할렐루야, 나무 관세음보살~     


은혜롭고 자비로운 제니스님 덕분에 그날의 크리스마스는 마냥 구름 위에 둥둥 떠 있는 기분으로 보냈다.     


그렇게 행복한 연말을 보내고, 다음 영상을 찍을 때였다.     

그날도 역시 스크립트를 달달 외우고, 발성도 하며, 스스로 암시도 잔뜩 주문했다.

‘한 방에 끝내자. 나는 프로야. 하던 대로 하자. 나는 할 수 있어!’     

그리고 카메라 녹화 버튼을 누르고 자리에 앉아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는 순간!

제니스의 편지 내용이 갑자기 떠올랐다.


제니스 : 카메라를 바라보는 케이맨님의 눈동자에서 진심을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아... 도데체 그 눈동자는 어떤 눈동자지?

지금 내가 눈에 너무 힘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금 나의 눈빛이 흐리멍텅 하지는 않을까?

제니스님이 지금 날 보고 변했다고 느끼면 어떡하지?


도데체 눈동자에서 진심을 느끼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그랬다.

한참을 그렇게 NG를 내며 한겨울 식은땀을 잔뜩 흘리고 괴로워하다가 결국 촬영을 포기했다.

안경에 뿌옇게 낀 습기 때문에라도 더이상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한순간 다~ 날아가 버린 느낌?

반년간 쌓은 모래성이 파도 한방에 무너지는 느낌?

카메라 마사지를 그렇게 받았는데, 카메라 렌즈를 쳐다보지 못하겠다. 이런 젠장.

카메라 울렁증이 심하게 온 것이다.     


오~래갔다.

이후에 영상이야 편집을 통해 잘라 붙이기 신공으로 간신히 만들었지만, 카메라 렌즈 공포증 때문에 컨텐츠 업로드 횟수는 팍! 줄었다.     

상황은 심각했고 증상은 수개월이 지나도록 나아지지 않았다.

예전처럼 선글라스를 껴서 눈빛을 가려볼까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결국 계절이 또 한번 바뀔 때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20만원이 넘는 소형 프롬프터(뉴스 아나운서들이 스크립트를 보며 읽는 도구)를 구매했다.

비록 꼼수지만, 나름 기가막힌 아이디어라고 자화자찬을 했건만, 그 역시 실패였다.     

우리의 유튜브 시청자님들은 나의 야심찬 꼼수를 바로 캐치하더라는.


이번 영상은 눈동자의 움직임이 심하네요?


하는 댓글들이 올라온 것이다.

저렴한(?) 프롬프터라 글을 따라 눈동자가 왔다갔다 하는 게 그대로 보였던 것이었다.

20만원대 프롬프터는 그렇게 딱 한번 사용해보고 지금은 책장 어딘가에서 먼지 받이가 되어 있다.     


솔직히 아직도 극복하지 못했다.

지금도 카메라 렌즈만 바라보면 긴장해서 안경에 습기가 찬다.

카메라 렌즈만 보면 내 눈빛에서 진심이 느껴질지 스스로 의문이 든다.

괴롭다.     


한편으로는 제니스님께 진심으로 고맙다.

당시 나는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촛불과 같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경험으로 다져진 든든한 자신감은 그저 쉽게 무너질 모래성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그리고 아직 한참을 더 경진해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언젠간 이 카메라 울렁증을 난 극복할 것이다.(아마도?)

그리고 그 이후 더욱 단단해져 다시는 이런 흔들림이 없을 것이다.

그래야겠지...


ps. 제니스님. 혹시 한국에 오시면 제가 1박2일 풀코스로 모시겠습니다.




평일엔 도시에서 일하고, 주말엔 시골에서 전원생활을 합니다.
유튜브 바닷가 전원주택 채널을 운영중입니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712zdYmemTs4XPa4fRan9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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