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범준 May 05. 2016

뭐라할까 인생 하소연하는 이야기?

1. 전에 주워들은 거중에 "아티스트를 잘 이해하려면 곡 단위로 듣지 말고 앨범 단위로 들어야 한다."라는 말이 있었다. 아마 앨범에 수록된 곡들이 하나의 주제를 갖고 있고 그에 대한 아티스트의 메시지를 이해하라는 의미인 것 같다.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아무리 유명한 아티스트라도 모든 작품이 유명한 것은 아니다. 상업적으로, 대중적으로 성공한 곡은 일부이고, 그 외의 곡들은 그렇게 유명하지는 않은 것도 많아서, 직접 찾아보는 일부 마이너한 사람들 외에게는 숨겨져 있다. 그런데 앨범 단위로 듣다 보면 그것들이 적절히 섞여있어서, 전자의 곡을 들으면 "그렇지 좋아 좋아 이런 노래지"라고 생각하게 되는 반면, 한편 후자의 곡을 듣다 보면 "에,, 이 밴드는 의외로 이런 장르도 했었구나.."라는 게 많은 듯.

사진 속 인물은 제가 아닙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모든 아티스트가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일부 아티스트의 경우, 진정으로 그들이 하고 싶은 곡은 후자의 곡인데, 그런 곡들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알아봐주기에는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전자의 대중적인, 팔리기 좋은 곡들을 섞어주는 게 아닐까. "해야 되는 곡"이라는 느낌으로, 아니면 어찌됫든 "만들면 일단 대중적으로 잘되는 곡"이라는 느낌으로. 그럼에도 누군가는 후자의 곡을 들어주면서 그들의 진정한 음악성을 이해해주리라 믿는 거지. 말하자면 전자의 곡은 그들의 "현실"에 맞춘 곡, 후자의 곡은 그들의 "이상"에 맞춘 곡이랄까. 그런 의미에서 원사운드 만화 중에 게임 개발자 이거 보면 꽤 인사이트 있습니다.


2. 내가 프로그래밍을 처음 접한 건 중2 때 Visual Basic(이하 비베)을 통해서이다. 다음 기회에 한큐카 이야기를 좀 하겠지만, 암튼 여기서 매니저 할 때 큐브 용어사전이라는 걸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어려운 큐브 전문 용어를 쉽게 풀이한 사전을 만들어서 검색 가능한 프로그램으로 만드는 기획이었다. 그때 "음.. 이런 건 어떻게 만드는 거지?"하면서 찾다가, 프로그래밍을 배워야 된다는 걸 알게 되었고, 또 이런 거 만들 때 간편하게 비베를 많이 쓴다는 걸 알게 되었다. GUI로 만들 수 있었고 워낙 직관적인 코딩이 쉬워서 이 분야에 꽤 흥미를 느꼈다. 그래서인지 큐브 용어사전 이후로도 비베로 꽤 이것저것 많이 만들기도 했다. 고등학생 때는 한창 즐겨하던 "드래곤 빌리지"라는 안드로이드 게임이 있었는데, 유저들의 편의를 위해 "드빌 등급 계산기"라는 프로그램 만들었고 그게 꽤 인기였는지 입소문도 나고 2차 배포도 사람들이 많이 하고 어느 순간 블로그 방문자도 늘어날 정도였다. 그 분야에 재미도 느끼고 나름 뿌듯하고 흥미도 있으니 "이런 걸 적성에 맞는 일이라고 하는 거겠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제 블로그 홍보합니다 하하 http://zmdkwlwhs22.blog.me/10158897347

 여기서 보통은 자연스럽게 컴공과로 갈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거기까지는 자신이 없었다. 주변 사람들도 말릴 정도로, 워낙 이 바닥 현실이 냉혹하다 보니까, 앞으로 내가 과연 코딩만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라는 고민도 생기고. 물론 코딩이나, 컴공과에서 자신의 이상을 발휘하는 사람도 충분히 있지만, 나에게는 자신이 없었다. 그러다 마침 고등학생 때 내가 좀 물리를 열심히 했고 잘한 것도 있어서, 물리랑 프로그래밍이 둘 다 관련이 있어 보여서 막연한 생각에 전자과를 선택하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코딩도 적절히 할 수 있고 한편으로는 팔리기 좋다고 할까, 먹고사는데 쓸모 있는 것에 대해 적당히 타협해서 고른 것이 전자과였다. 이렇게 이상과 현실을 밸런스시킨, 앨범 같은 상황이다. 아참, 컴공과나 전자과 어느 쪽이 좋거나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고, 둘 다 꽤 괜찮은 곳이다..


3. 이와 같이 이상이라는 것은 현실과의 충돌이 일어나기 때문에, 정말로 그 이상을 추구하려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적어도, 자신이 추구하려는 이상이라는 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편으로는 최근에 깨달은 것은, 이러한 이상을 중고등학생이 막연하게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왜냐하면, 중고등학생이 갖는 꿈이란 대체로 비합리적인 환상에 있고,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우물에 빠지기 쉽고, 엉터리이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사례가 다소 편협하지만, 우선 "코딩을 좋아해서 -> 컴공과에 간다"는 논리가 엉터리였다. 난 중고등학생 때 "컴공과 가면 코딩 열심히 배우는 거 아니에요?"인 줄 알았는데, 사실 그렇지 않았다. 이번 학기 때 컴공과 과목인 DATA STRUCTURE 들었는데(그냥 학점 채우려고..), 이 과목 들으면서 2달 동안 키보드로 두드리는 코딩 과제는 전혀 없었고, 주로 배운 게 이론적으로 혹은 알고리즘적으로 어떠한가를 해석하는 것에 중점이 있는 과목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컴퓨터 과학이겠지만, 사실 간판이 컴퓨터 과학이든 컴퓨터 공학이든 심지어 소프트웨어 학과든, 대학은 학문하는 곳이지 코딩 실무 가르치는 곳이 아니기 때문. 그런 의미에서 고어쿤님의 "코딩은 전산학과에서 배우는 것인가?" 글이 상당히 인사이트 있다.


 그래도 미련이 남아서인지, IT 스타트업 쪽에서 인턴 2번 정도 해보면서 개발 업무도 이것저것 해봤었고, 생활코딩 그룹에도 가입해놓고 개발자들의 일상을 엿보기도 하고 있고.. 그러다 알게 된 것이, 결정적으로는 코딩이라는 게 나만 좋아하는 분야일 줄 알았는데, 사실 이 분야는 누구나 보편적으로 좋아하는 분야였다. 마치 누구든지 노래나 웹툰 같은 거 좋아하는 것처럼? 버그 잡고 머리 굴리기가 좀 어렵고 짜증 난다는 것이지, 그래도 작동이 되는 프로그램을 자신의 손으로 만들면 누구든 뿌듯하고 재미를 느낀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나만이 이 분야를 좋아한다고, 나만이 이 분야에 적성이 있다고, 착각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과연 다양한 경험을 통해 코딩이나 컴공과에 대한 이상을 가졌는가, 그렇지 않았다. 거기에 이상을 갖게 된 것은, 진로를 선택하려고 할 때 단지 그것이 내가 해본 경험이 있는 몇 안 되는 것들 중 하나였고, 즉 그것이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우물에 빠져있는 중고등학생이 진로를 결정하게 된다면 눈앞에 있는 것에서 결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선생님, 아이돌, 부모님 직업 같은걸 고르게 된다. 이럴 거면 차라리 중고등학생은 아직 꿈 없어도 괜찮다고 조언하는 게 낫다.

 사례가 편협할 수 있으니 예시를 하나 더 추가하자. "애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게 좋아서 -> 학교 선생이 된다"도 엉터리다. 개인적으로, 학교 선생의 본질은 학교를 운영하는 매니지먼트 쪽이고, 그 역할 중 하나가 공부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상적으로는 뒤집혀있어야겠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 진정으로 공부를 가르치는걸 좋아한다면, 차라리 학원 강사나 과외 같은걸 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또 하나, 지식을 전달하는 일 혹은 아이들을 교육하여 보람을 느끼는 일이란, 나만 좋아하는 일이라기보다는 누구나 보편적으로 좋아하는 것이다.


4. 이제 다소 어그로적인 내용으로 마무리.. 이쯤 되면 알겠지만 난 꿈팔이들을 싫어한다. 꿈(여기서는 장래희망적인 이야기)을 갖고 눠력하면 이룰 수 있다 이런 이야기.. 난 그런 꿈팔이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도 교육자라면, 진정한 교육자로서, 중고등학생들에게 꿈을 갖게 유도하는 것은 과연 바람직한가?" 그것이 비합리적인 환상에 있고,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우물에 빠지기 쉽고, 엉터리라고 할지라도, 가질 수 있게 지도해야 하는가?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지도교수님, 그리고 적성에 대한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