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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도쿠 Jul 30. 2019

서른에게 하는 달갑지 않은 말들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 특별히 떠오르는 감탄사도 없다. 보통 어느 새, 벌써, 야속하게 등등의 마치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한 표현으로 서른이 되었다고 하지만, 사실 별 느낌이 없다. 그렇다. 그냥 서른이다. 그런데 서른이 되니 자꾸 주변에서 시끄럽게 구는 것이 많아졌다. 시끄럽다고 느낀 것은 그리 달갑지 않은 말들이라는 것이다.


"언제 결혼할거니?"


"재테크는 어떻게 하고 있니?"


"니 나이 때 여행을 많이 가봐야 돼."


물론 모두 중요한 질문들이다. 살면서 우리가 수도 없이 고민하고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특히, 내 인생에서 결혼은 중요하다. 나는 비혼으로 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과 함께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러므로 언젠가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와이프와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오손도손 사는 모습을 꿈꾼다. 지금 당장 결혼할 수는 없다. 나이가 서른이 되니 상대방이나 나나 서로 보는 것들이 많아졌다. 속된 말로 잰다고 한다.


그런데 또 결혼은 한 순간의 판단으로 쉽게 결정될 만한 것도 아니다. 그 판단이 거의 평생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싱글 생활을 즐기면서 급하지 않게 차차 좋은 사람을 알아가고 싶다. 가만히 놔두면 어련히 하지 않을까. 사실 알고 있다. 그 사람들에게 그 말은 상대를 위한 진심어린 걱정이 아닌 조언, 충고 등을 하기 위한 선제적 장치라는 것을 말이다. 이를 통해 본인을 드높이거나 상대의 위에 서고 싶은 의도가 다분히 숨겨져 있다.


두 번째로 본인 재테크나 잘하지, 남이 돈 모으는 데 왜 관심이 많을까. 주변에서 충고를 하는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정작 본인은 재테크를 잘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잘하는 사람은 오히려 남이 돈 모으는 데에 크게 관심이 없다. 본인 돈 모으기 바쁘니까 굳이 타인에게 오지랖 넓게 행동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충고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렇게 시작한다.


"나도 그 나이 때 잘 몰랐었어."


그래서 내가 어떻게 재테크해야 하냐고 물어보면 보통 하나로 귀결한다. 서울 집. 누가 그걸 모르냐고요. 서울 집 사고 싶은데 돈이 없는 것을 어떻게 합니까. 속마음은 이렇지만 겉으로는 미소를 지으며 감사하다고 얘기한다. 어찌 됐건 사회생활은 해야 하니까. 그리고 나는 돈을 함부로 쓰는 편은 아니다. 딱히 돈 드는 취미도 없다. 그래서 나름 예적금, 보험, 연금, 펀드, 주식 등 생각한 비율에 맞춰서 자산을 분배하여 재테크를 하고 있다. 굳이 상대방에게 세세하게 말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세 번째로 여행을 너무 운운한다.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열심히 돈을 모아 주기적으로 해외여행도 가는 편이다. 엄청나게 많은 곳을 다녀온 것은 아니지만 남부럽지 않게 적당히 해외도 다녀왔다. 그 이상으로는 예산적으로 무리이다. 나는 가난한 청춘이니까 정확히 선을 지킨다. 지금의 형편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무리해서 해외를 가진 않는다. 그런데 주변에서는 자꾸 무리하게 해외 여행을 가도록 채근한다. 몇몇 국가를 갔다왔다고 이야기 해도 굳이 안 가본 국가를 콕 집으며 꼭 가야한다고 말한다. 아니, 그냥 기존에 갔던 여행은 재밌었는지, 무엇이 제일 좋았는지, 어떤 사람을 만났는지 물어봐주면 안 될까. 또 국내 여행을 가고 싶다는 내게 누군가는 말한다. 국내 여행은 언제든 갔다올 수 있지만 해외 여행은 언제나 갈 수 없어. 이게 무슨 말이야. 내일 죽으면 국내 여행도 못 가는 법이다. 그리고 내가 지금 가고 싶다는데 그게 제일 중요한 것 아닌가. 당최 왜 그렇게 참견을 할까. 적당한 수준의 조언은 좋다. 그러나 정도를 넘어서면 더 이상 조언이 아니다. 그것은 또 하나의 폭력이므로 폭언이다. 꼭 비속어만 폭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외에도 참 많다. 그러나 나는 짜증으로 응대하지 않는다. 사회 생활을 잘하고 싶은 욕심도 있고, 그 상황을 부드럽고 수월하게 넘기고 싶기도 하다. 그래서 웬만하면 미소로 응대하며 적절한 리액션을 한다. 대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아예 들은 적도 없었던 것처럼 흔적조차 남겨놓지 않는다. 일단은 내가 우선이다. 내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면 내 삶의 태도는 참 괜찮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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