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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도쿠 Jul 29. 2019

작은 선의

함께 일하는 동료가 있다. 동기이지만 마냥 친해지기 어려운, 조금은 껄끄러운 동료이다.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지만 깊게 관계를 맺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단순히 회사에서 만난 사이라 그럴 수도 있지만 일단 내가 좋아하는 유형의 사람이 아니다.


일단, 지나치게 술을 좋아한다. 나는 빨리 퇴근하고 나의 취미를 즐기거나 내 주변 사람들과의 어울림을 좋아하는 반면, 그 동료는 어떻게든 부서의 회식을 만들려고 하는 편이다. 딱 봐도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어서 항상 주변에 누군가 있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우리 부서의 사람들이 대체로 술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 동료의 계속되는 채근에 마지못해 회식을 갖는 편이다. 그렇다고 술자리가 재미없지는 않다. 법인카드로 먹기 때문에 비용에 대한 큰 부담도 없다. 다만, 나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맞지 않는 것뿐이다.


둘째, 굉장히 감정적인 사람이다. 쉽게 흥분을 잘하고 성격이 조급하다. 좋은 말로 표현하면 정치질을 못하는 사람이어서 순박하게 그 사람의 행동이 뻔히 눈에 보인다. 남을 속일만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소한 일에 쉽게 흥분하고 감정을 드러내어 주변 사람을 괜히 불편하게 만들 때가 있다. 게다가 불합리한 일이라고 생각이 들면 바로 상사에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 우리 회사처럼 보수적인 문화에서는 쉽사리 볼 수 없는 태도이다. 대단하면서도 가끔 보면 불안할 때가 있다.


셋째, 오지랖이 매우 넓다. 옆 사람이 누구와 무슨 통화를 하는지조차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언제나 귀를 쫑긋하고 있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가끔 내 통화를 듣고 어떤 문제에 대해서 본인의 의견을 이야기할 때가 있는데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애매할 때가 많다. 선의를 바탕으로 한 행동임이 분명하지만 남의 통화를 듣고 있다는 점이 께름칙하기 때문이다. 또한, 오지랖이 넓은 만큼 남의 이야기를 정말 많이 한다. 꼭 악담을 하는 것이 아닌 이런저런 사생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그런 것이 저 사람에게는 가장 재밌는 일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술을 좋아하여 많은 사람들과 술자리를 가지는 만큼, 아는 정보가 참 많긴 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와는 참 맞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나는 술을 좋아하지 않으며 감정적이기보다는 내면을 잘 감추는 차분한 사람이고 타인의 일에 깊게 관여하는 유형은 아니다. 그 동료와 나는 참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정확히 표현하면, 내가 일방적으로 그를 굉장히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얼마 전 굉장히 호감으로 느껴졌던 일이 있었다. 좀 한가한 여느 날이었다. 갑자기 메신저가 왔다.


"지금 한가하면 내가 좋은 거 보여줄까?"


일이 바쁘지 않았기에 잠시 자리를 비우고 그 동료가 안내하는 곳으로 따라갔다. 그 장소는 회사 뒷편 주차장이었다.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니 너덜너덜한 박스가 그 자리에 있었다. 다가가서 살펴보았다.


"야옹야옹"


귀여운 고양이가 있었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아기고양이였다. 그렇지만 어미에게 버림 받은 듯했다. 고양이 세계에서는 어미 고양이가 여러 새끼들 중 문제가 있는 새끼는 혹시 다른 새끼들에게도 피해를 줄까 싶어 버리고 가는 일은 허다하다고 한다. 나는 동물에 큰 관심이 없는 편이어서 그 동료에게 이런 설명을 들었다. 그는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면서 혼자 동떨어진 새끼고양이를 발견했고 차마 그냥 갈 수가 없어서 박스에다가 넣어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힘이 없어보이는 새끼고양이를 위해 직장인의 황금 같은 시간대인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동물병원에 갔다왔다. 새끼고양이는 눈에 결막염을 앓고 있었고, 동료는 본인이 직접 비용을 부담하면서까지 새끼고양이에 대한 치료를 아끼지 않았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넉넉한 집안이 아닌 것을 아는 터라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솔직히 놀라웠다. 고집 세고 감정이 앞서는 이 동료에게 의외의 면을 본 것이다. 내가 사람을 좋아하는 기준은 분명하다. 이 사람의 존재가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까이다. 나의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기준은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까다롭지는 않다. 누군가를 사랑할 줄 알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일만 하면 된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괜찮다. 나이 드신 분이 나줘주는 전단지를 받고 '이 분이 빨리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빨리 퇴근했으면 좋겠다' 정도의 생각만 떠올려도 된다.


그 동료와 함께 일한 지 3년, 싫다부터 좋다까지의 선이 수평으로 있다면 그 일 덕분에 왼쪽으로 치우치던 점이 오른쪽으로 대폭 이동했다. 추가로 더 이야기하자면 해당 동료는 차마 고양이를 유기소에 갖다줄 수가 없어 본인이 키우고 있다. 내 맘에 드는 사람은 아니지만 순박하고 여린 면이 있는 사람이다.


솔직히 나는 동물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길고양이에게 함부로 온정을 베푸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러나 무엇이 됐든 그런 작은 선의가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각박하게 돌아가는 세상이다. 내 한 몸 돌보기도 어려운 세상에 나 아닌 무언가를 신경쓰기란 정말 어렵다. 그래서 그런 이타적인 행동이 내 눈에 깊게 각인된 것 같다. 내 이익과 전혀 상관 없는 그런 선의가 사회를 더 아름답게 만들 것이라고 강하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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