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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도쿠 Jun 30. 2019

외로울수록 타인에게 다가가자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PC 메신저창에서 낯선 이름의 메시지가 떴다. 자주 보기는 했으나 교류가 많다고는 할 수 없는 후배였다. 후배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분명했다. 선배님께 업무 좀 배우고 싶은데 언제 커피 한 잔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 친구는 이제 회사에서 일한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았는데 나와 같은 직무에 배정되어 있었다. 뭔가 당돌하기도 한 모습이 기특해서 당장 오늘 저녁으로 날을 잡았다. 저녁 6시 30분에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일을 하다보니 어느 새 약속 시간이 되어 있었다. 급히 카톡을 확인했더니 후배는 이미 30분 전 내 사무실 앞까지 와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미안한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미안해. 업무에 집중하느라 카톡을 못 봤어. 근데 이미 도착했으면 나한테 전화하지 그랬어?"


"선배님, 업무하시는데 방해될까봐 전화를 못했습니다. 그리고 약속시간 전이어서 그냥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평소 오다가다 만나면서 느꼈던 그대로 바른 태도의 친구였다. 그 때문에 약간 소극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정감이 가는 친구였다. 나는 하고 있던 작업을 급히 마무리 짓고 후배를 만나러 갔다. 그를 만나기 전, 업무에 대해 어떤 얘기를 해주어야 할까 고민했다. 업무 노하우, 초심 잃지 않기, 처세술, 상사 관리(?) 등 다양한 생각을 했지만 그냥 어딘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른 채 내 할 말만 잔뜩 하는 꼰대 같은 선배가 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 후배를 만나서 얘기를 하다보니 본인이 배우고 싶다는 업무 얘기는 하나도 하지 않는 게 아닌가? 오히려 본인이 관심 있는 예술, 음악, 일본 여행 등에 대한 얘기만 잔뜩 했다. 특히 예술에 관해서는 나도 큰 관심이 있는 분야라 그 친구의 이야기에 맞장구치면서도 새롭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내가 현재 다니는 회사는 굉장히 보수적인 금융업에 속해 있다. 이건 아무래도 내 편견이겠지만 우리 회사 사람들 중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예술 같이 말랑말랑한 주제가 딱딱한 금융업과는 잘 어울리지 않아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그 친구가 예술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참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회사 사람들이 내게 얘기하기를, 회사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다. 내가 좋아하는 주제들이 회사 동료들이 좋아하는 주제와는 첨예하게 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그 친구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니 보통 후배들은 술을 사달라고 얘기를 하는데 커피 한 잔 하자고 말하는 것부터가 이미 달랐다. 남자 둘이서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술 한 잔 없이 재밌게 수다를 떨었다.


듣다보니 좋아하는 것이 뚜렷한 친구였다. 그리고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의견을 공유하고 싶어 했다. 누구나 두루두루 친해질 수 있는 성격처럼 보였지만 생각보다 예민하고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본인의 표현으로도 처음에는 쉽게 친해지지만, 그 이후로 더 친해지기는 어려운 사람이라고 했다. 그 친구는 본인 사무실 앞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음악을 좋아하여 퇴근 이후에는 새로 산 최신형 스피커로 음악을 들으며 여가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그러나 혼자여서 외로운 모양이었다. 주변에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고 부서 직속 선배들은 예술이 아닌 '술'만 좋아하는 사람들이어서 취향 공유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니 나를 찾아와 커피 한 잔과 함께 대화를 하고 싶었나보다.


다양한 취향을 기반으로 한 소소한 이야기가 오갔다. 애당초 만남의 목적이었던 업무 얘기는 조금도 없었다. 아는 이 아무도 없는 연고지에 와서 이야기를 터놓을 사람이 없다보니 많이 외로웠을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 친구는 정말 신나보였다. 내가 한 일은 열심히 경청하고 대화를 받아준 것밖에 없었는데 그 친구의 외로움은 일정 부분 해소가 되었는지 집으로 돌아가는 표정이 너무나 밝았다. 그리고 조만간 다시 한 번 꼭 오겠노라 얘기했다.


어찌 보면 흔히 스쳐가는 특별한 것 없는 일상이지만, 적극적으로 자신의 외로움을 해소하려는 후배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현재 사회에서 많은 이들이 외로움에 몸부림치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해소하려는 이는 많이 보지 못했다. 외로울수록 타인에게 다가가야 하지만, 외로움의 특성상 타인이 다가와주길 기다리기 때문이다. 외롭다면 지금 당장 휴대폰 목록에 있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렇게 목소리라도 주고 받으면 나와 상대가 조금은 연결된 듯한 기분이 들 것이다. 외로움의 고리는 그렇게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서서히 끊어진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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