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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도쿠 Aug 10. 2019

특별한 것 없는 어느 날 편의점에서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어느 날, 갑자기 편의점 음식이 먹고 싶어졌다. 그날따라 유독 매콤한 컵라면이 땡기는 날이었다. 집 바로 앞에 있는 편의점에 들렀다. 그러나 편의점에서 처음 생각했던 컵라면만 딱 고르고 나오기는 쉽지 않다. 컵라면만 먹으면 든든하지 않은 것 같아 김밥도 함께 고르고, 김밥을 먹다보면 목이 막힐 수 있으므로 함께 먹을 우유도 골랐다. 이뿐인가. 다 먹고 나서 입이 심심할 수도 있으니 후식 겸으로 초콜릿도 하나 집었다. 그렇게 잔뜩 골라서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순간 옛 생각이 떠올랐다.


크게 부유하진 않아도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소비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돈을 벌고 있다. 치킨이 먹고 싶을 때는 언제든 시켜 먹으며, 여행을 가고 싶을 때는 큰 망설임 없이 날짜를 정해서 쉽게 예약한다. 더 이상 문제는 돈이 아니며, '치킨을 많이 먹으면 살이 찌지 않을까'와 '휴가 가는 주간에 업무가 몰리지 않을까' 정도의 고민만 하게 된다. 물론 내 소유의 집도 없고 차도 없지만, 그것만 제외하면 당장 사는 데 큰 불편이 따르지는 않는다.


직장생활 4년차, 그 말은 곧 이렇게 생활할 수 있게 된 것이 4년도 채 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대학생 때 나는 참 가난했었다. 공모전이나 대외활동, 봉사활동 등의 스펙을 쌓기 위해 시간을 쏟는 동안, 알바를 할 수 없었으니 부모님께 돈을 받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집안이 넉넉한 형편은 아니어서 부모님이 지원해줄 수 있는 돈은 한계가 있었고, 나는 그 돈을 아끼고 아껴 사용했다. 예를 들어, 1,200원의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최대한 걸어 다녔으며 5,000원의 식비를 아끼기 위해 점심과 저녁을 굶는 일은 다반사였다. 다행히 젊은 혈기의 건강한 몸이었고 배고픔을 잘 참아낼 수 있는 의지가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아낀 돈은 아이디어 회의를 위한 카페나 스터디룸에 대부분 사용했다. 물론, 그 정도의 용돈을 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어떤 지원 없이 본인의 힘으로만 이겨내야 했던 친구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만났던 여자친구들에게는 조금 미안한 감도 있다. 항상 데이트 코스는 단촐하기 그지 없었다. 돈이 없으니 밥을 먹더라도 항상 저렴한 메뉴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어디를 놀러가는 일은 쉽게 생각하지 못했다. 정말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데이트 비용이 부담돼서 일부러 데이트를 취소한 일도 있었다.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 상대방에게 돈 없는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다. 그래서 돈이 없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입 밖으로 내뱉  없었다. 내가 잘 속인 것인 것일까. 그래도 내가 만난 사람 중에 나를 돈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아니, 상대방이 눈치 있게 모른 척 해준 것일 수도. 한 번의 데이트 비용을 위해 내가 한 주의 점심을 몇 끼를 굶으면 되는지를 계산했다. 추가적인 비용이 나오면 다음 주 점심까지도 가불했다. 가난한 것이 죄는 아니지만 나의 생활을 열악하게 만들기는 했다. 그러나 삶의 역설은 여기서 발생하는데 연애가 끝난 이유는 결코 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나간 인연을 하염없이 붙잡고 있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언젠가 다시 마주친다면 멋진 밥 정도는 사주고 싶다. 당시 가난하고 자존감이 낮았던 내가 그 사람들이 존재함으로써 빛이 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삶에서 돈이 다가 아님을, 지극히 당연하고 명확한 명제를 깨닫게 해주었다. 지금 당장의 돈보다 꿈을 좇게 해주었다.


그래서 당시 알바를 해서 당장 여윳돈을 마련할 수도 있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내 삶에 좀 더 도움이 되는 쪽을 선택하기로 했다. 알바보다는 공모전 상금을 통해 돈을 벌었다. 광고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열심히 기획 및 제작했고, 프리젠테이션 대회에 나가서 수상하기도 했다. 알바에 쏟는 시간을 공부에 쏟을 때 훨씬 더 시간 대비 가치가 높다고 판단했다. 시간당 수입으로 계산했을 때 장학금이 알바 수입보다 더 많았기 때문이다. 장학금을 위해 철저히 학점을 관리한 결과 8학기 모두 장학금을 받으면서 다닐 수 있었다.


운이 좋았다. 졸업 유예 없이 4학년 2학기 중에 연봉이 제법 높은 금융업에 바로 취업을 할 수 있었다. 원래부터 큰 소비를 하지 않는 성향 덕택에 돈을 제법 모을 수 있었고, 지금은 신용카드로 먹고 싶은 것 정도는 얼마든지 계산할 수 있게 되었다. 문득 편의점에서 계산하던 날, 당시 대학생 때의 내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예전과 비교되는 지금의 모습에 큰 환희나 감동 같은 것을 느낀 것은 아니다. 그냥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한 기분을 느꼈을 뿐이다.


열심히 살라는 교훈 같은 이야기를 하고자 한 것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은 아니므로 그런 말할 자격은 없다. 지금은 힘들어도 나중에 괜찮아질 것이라는 의미로 말한 것도 아니다. 나도 이제 어려운 한 고비를 넘겼을 뿐이다. 나보다 더 열악한 사람들도 많으므로 함부로 그 사람들의 삶을 재단하여 위로의 말을 건낼 수도 없다. 인생의 정답이 어딨겠는가. 다만 '누군가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구나' 정도로만 판단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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