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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도쿠 Oct 02. 2019

거칠 것이 없었던 내 모습은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랜덤으로 듣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내 귀를 쫑긋하게 만드는 반가운 노래가  오랜만에 들렸다. 바로 체리필터의 'Happy day'였다. 그 노래를 듣다보면 이런 가사가 흘러나온다.


"거칠 것이 없었던 내모습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어느 별로."


그 가사를 들을 때마다 기억 언저리 한 켠에 숨겨놓은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내 인생의 여러 시절을 한 번씩 터치하면서 지나간 노래이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때 어디서나 한창 흥얼거렸던 기억이 있다. 거칠 것이 없다는 것이 좀 멋있게 보이는 나이여서 그랬을까. 나는 그 가사를 몇 번이나 곱씹었었다. 특히 고등학생 때 공부 때문에 지쳐서 그랬던건지 혹은 당시 남고여서 남녀공학 시절의 중학교가 그리웠는지는 몰라도 어린 나이임에도 노래 가사처럼 더 거침 없었던 시절을 그리워했다.


웃긴 것은 20대가 되어서도 어느 날 문득 이 노래를 들었을 때 고등학생 때 거침없었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대학생활을 하는 동안 학점과 연애, 인간 관계에 치일 때 이 노래를 들으면서 '고등학생 때는 참 거칠 것이 없었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나름 고등학생 때 치열하게 진로와 학업을 고민하고 그 나름의 역경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거칠 것이 없이 용감했다고 단정지었다. 고등학생 때는 중학생 때가 떠올랐고 대학생 때는 고등학생 때가 떠오른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20대 초에 생각했던 10대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리고 오늘, 30대가 되어서 이 노래를 들었다. 진짜 웃긴 것은 20대 때 거칠 것이 없었던 내 모습을 떠올렸다는 것이다. 30대가 되어 직장생활과 업무 스트레스, 상사와의 트러블 등 여러 가지 문제로 꼬이다보니 20대 때는 나름 거칠 것이 없었던 시절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 전에 있던 시절은 조금 더 쉽게 느껴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갈수록 꿈과 자신감을 잃어버려서일까. 자꾸 그 이전을 거침 없었던 시절이라고 표현하게 된다. 예전에는 어른이 되면 좀 더 편하고 쉽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어른으로 사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어른과 어린이의 경계가 모호할 만큼 어른이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주변 사람들을 보다보면 저게 정말 어른의 행동인가 싶을 때가 있다. 어른의 모습을 띠고 있지만 어린이의 내면을 가진 사람들. 나 또한 어린이 같은 마음으로 어른의 사회를 상대하려다 보니 거칠 것이 많아졌다. 거칠 것이 없었던 시절은 저 멀리 사라져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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