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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도쿠 Oct 03. 2019

행복의 속성 중 하나는 상대성 아닐까

개인적으로 행복의 속성 중 하나는 '상대성'이라고 생각한다. 행복은 상대적인 가치인 것이다. 똑같은 조건과 환경 속에서 누구는 행복하고 누구는 불행할 수도 있다. 그런 환경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문제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어떤 경험을 해왔는가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우리가 기쁘다는 감정을 알기 위해서는 반대로 슬프다는 감정을 알아야 한다. 평생 기쁜 일만 가득하다면 우리는 것을 기쁨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또한, 신난다는 느낌을 받기 위해서는 심심할 때가 있어야 한다. 감정뿐만 아니라 물질도 마찬가지이다. 배고파봐야 배부름에서 오는 만족감을 알 수 있을 것이고, 돈이 없어봐야 돈이 있다는 것의 소중함도 알 것이다.


최근 뉴스를 보면 돈 많은 집안의 자제들이 마약 또는 음주 등과 관련하여 일련의 소동들이 있었다. 꼭 돈 많은 집안의 자제들이 아니더라도 이른 나이에 자수성가를 이루거나 쉽게 스타가 된 사람들 중에서는 안 좋은 방향으로 빠지는 경우들이 있다. 왜 그런 것일까. 내가 생각할 때는 한 편으로 치우치다 보니 다른 한 편을 보완할 수 있는 경험이나 감정이 부족한 것이 아닐까. 무엇이든 균형을 이루려면 양쪽이 맞아야 하는 법이다. 가운데 있을 때 양쪽을 균형 있게 번갈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추구하려는 항목 중 결코 행복이 빠질 수는 없다. 그만큼 행복은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만약 내 생각대로 행복은 상대적 가치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기쁨을 상대하는 슬픔도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만족을 상대하는 결핍도 필요하다. 애당초 결핍이 없는 상태로 모든 것이 만족된 상태로 살아간다면, 더 큰 만족을 위해 움직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족의 상태가 어떤 이에게는 결핍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일반 사람에게 중간이라는 개념이 결핍과 만족의 가운데 선 것이라면, 모든 것이 만족된 상태로 살아온 사람에게 중간이란 만족과 더 큰 만족에 사이일 수도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더 큰 만족이라는 게 있을 수 있을까. 만족이라는 것은 우리의 자제력 없이는 생길 수 없는 법. 사람의 욕망에는 끝이 없다 보니 더 큰 만족을 찾아 떠돌다가 어느 순간 쾌락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이 아닐까. 만족을 찾지 못하는 이에게는 그것이 또 다른 불행일 수도 있기에 말이다. 보장된 미래, 예측되는 이후의 날들, 그렇기 때문에 현재에 더 큰 만족을 하고자 쾌락이라는 감정을 끊임없이 탐닉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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