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찮게 조커를 봤다. 보기 전에 사실 큰 기대는 없었다. 최근 영화에 대한 관심이 줄다 보니 그런 영화가 개봉한지도 몰랐다. 동네 친구와 치킨을 먹고 나서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영화 관람을 선택했고, 그중 우연찮게 막 개봉한 조커를 지목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조커에 대한 사전 정보가 하나도 없었다. 그저 그런 DC 코믹스의 영화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마블이나 DC 코믹스의 캐릭터가 중심이 된 영화는 대체로 재밌게 보는 편이다. 워낙 액션물을 좋아하다 보니 액션이 빵빵한 히어로물 영화도 신나고 즐겁게 느껴진다. 영화 속 등장하는 캐릭터와 대략적인 스토리 라인 등 히어로물에 대해서도 꽤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세계관부터 시작해서 영화 속 등장하지 않았던 다양한 캐릭터들의 배경을 알고 있을 정도로 알고 있지는 않다. 어디까지나 실제로 접한 내용에 한해서만 대략 인지하고 있는 편이었다.
그러므로 조커에 대한 생각도 단편적이었다. 광대 같은 분장을 하고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입었으며 항상 웃는 얼굴을 유지하는 악당. 영화 다크나이트에 등장하여 배트맨을 속 썩이는 순수악을 대변하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악당이 된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게 조커는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사악한 본성을 바탕으로 나쁜 짓만 일삼는 평면적인 악당이었다. 조커 역을 맡은 히스 레저의 연기는 매우 뛰어났지만, 조커란 캐릭터는 어디서나 볼 법한 평범한 악당이라고 여겼다.
이런 상태에서 조커를 봤으니 내가 받은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유를 알 수 없는 불편함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조커는 안쓰러우면서도 괴기스러웠다. 유년 시절부터 지속된 내적 결핍, 웃음이 그치지 않는 정신질환, 사회의 조롱과 핍박, 저소득층에 대한 차별 등 조커가 겪은 일상은 영화를 넘어 오래전부터 모두 현실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었다. 영화 기생충을 봤을 때와 비슷한 마음이 지속됐다. 한 마디로 정의 내리기 어려운, 부정적인 느낌의 묘한 심리.
그런 환경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겠구나. 영화를 보고 나도 모르게 조커에게 느끼는 연민이었다. 조커의 행동이 나쁜 짓인 것을 알면서도 속 시원한 감정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물론, 나쁜 짓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서 속 시원함이 공포로 변해갔지만. 영화는 조커는 왜 조커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개연성 있게 잘 표현했다. 오히려 개연성의 밀도가 너무 높은 것이 문제였다. 영화가 끝나고 찝찝한 감정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커는 영화 속 인물이지만, 조커가 느끼는 감정은 현실 사회에도 고스란히 전달이 되었다.
통계학적으로 봤을 때 대한민국은 분노 지수가 매우 높은 국가라고 한다. 빈부격차, 경기 하락, 청년실업, 부동산 등에 대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고, 정쟁으로 번지고 있는 최근 일련의 사태들이 사람들의 분노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분노라는 것은 대체로 어딘가로 표출되기 마련이다. 말이든, 행동이든 매개체를 통해 마치 바이러스처럼 여기저기 전염시키고 스스로를 복제하여 늘려나가는 경향이 있다. 현실에서 조커가 탄생하지 말란 법은 없다. 분장만 하지 않았을 뿐 이미 조커 같은 심정의 사람은 주변에 널렸을 수도 있다.
우리 사회에 불 같이 퍼지고 있는 분노가 당장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우리는 현실 조커가 탄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세워야 한다. 효과적인 대책이 나오면 좋겠지만 한 순간에 모든 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없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일단 '사회 돌아가는 것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정치보다 더 큰 의미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말이다. 관심을 갖는 것만으로도 분명히 세상은 좋아질 수 있다. 관심을 표현하면 타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이는 의사결정자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리고 모든 행동의 시작은 원래 관심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