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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도쿠 Mar 12. 2020

면접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지금으로부터 4년 전, 나는 취준생이었다. 도무지 보이지 않는 미래로 인해 항상 마음이 불안했고, 그 불안감 때문에 무작정 많은 회사에 지원서를 넣었다. 일단 서류라도 합격해서 인적성이나 면접의 기회를 늘려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단 한 번에 붙을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역시나 예상대로 서류는 우수수 떨어졌다. 한 번의 면접 기회를 잡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다. 시간과 자존감은 정확히 반비례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존감은 떨어져만 갔다.


내가 살아온 인생을 세상에 평가받는 느낌이었다. 이력서의 몇 줄이 내가 살아온 인생의 가치라는 착각마저 들었다. 지금은 그게 틀린 생각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때는 조바심이 들어 편히 사고하지 못했다. 내가 보는 시야는 매우 좁았고 마치 취업이 인생의 전부처럼 느껴졌다. 여기서 낙오되면 평생을 패배자처럼 살아야 할 것 같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한 대기업의 면접 기회를 얻었다. 10대 그룹 안에 드는 기업이었다. 서류와 인적성을 겨우겨우 통과하여 얻은 1차 면접이었다. 면접 스터디원들을 모아 열심히 준비했다. 꼭 최종 면접까지 가리라 다짐했다.


마침내 당일, 세 명의 면접관을 마주했을 때 다리가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떨림을 멈추고자 내 손은 떨리는 다리를 잡았다. 떨림이 손까지 전해져 왔다. 곧 심장까지 닿고야 말았다. 두근대는 심장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나만 떨리는 모양이었다. 양 옆에 두 명의 지원자는 떨림 없이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면접관과 몇 마디 주고받았는데 뭐라고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제대로 된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하고 횡설수설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가운데 있던 한 면접관으로부터 한 질문이 훅 들어왔다. 뿔테 안경과 매서운 눈빛이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ㅇㅇ씨는 내향적인 사람과 외향적인 사람 중 누가 더 영업에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잠깐 고민 후 머릿속에 가진 생각을 있는 그대로 대답했다. 사람마다 생각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니 특별한 정답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외향적인 사람이 조금 앞서 나가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내향적인 사람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성향과 상관없이 사람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대답을 들은 면접관이 말했다. 그 말은 나를 살짝 자극했다.


"제 생각은 조금 다른데요. 내향적인 사람이 보통 인문학적인 경향이 큰 것 같더라고요. 사람을 이해하는 힘이 있어서 내향적인 사람이 더 영업을 잘하는 것 같아요."


나는 지금은 내향적인 사람이지만, 그때는 외향적인 사람으로 살고 있을 때였다.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했고, 새로운 모임에 참여해보는 것을 즐겼다. 특히, 앞에 나서서 발표하는 것을 정말 좋아했다. 가슴은 떨리지만 살아있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책 읽고 글 쓰는 것도 매우 좋아했다. 만나는 사람들을 더 많이 이해하고 공감하고 싶었다. 그래서 인문학에 한창 꽂혀 있었던 시기였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외향적인 사람이지만 인문학을 정말 좋아합니다. 내향적이라고 해서 인문학적인 경향이 많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 대답을 들은 면접관은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 아마 본인이 했던 말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말이므로 기분이 좋았을 리는 없었을 것이다. 면접관이 다시 한번 물었다.


"ㅇㅇ씨가 생각하는 인문학이 뭔가요?"


"인문학은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학문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나에 대한 질문은 넘어갔다. 그리 좋은 점수는 못 받았을 것이다. 본인의 의견을 반대하는 의견이었고, 특별히 인상적인 대답도 아니었다. 다른 두 지원자는 나보다 더 많은 준비를 했다는 것이 확실히 티가 났다. 그들의 대답은 군더더기 없이 인상적이었다. 몇 번의 문답이 오간 후, 면접이 거의 끝나기 직전이었다. 아까 그 면접관으로부터 마지막 질문이 들어왔다.


"ㅇㅇ씨는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요?"


마지막 말 한마디는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안다. 내가 어떠한 역량을 갖추고 있고 귀사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는지 밝히면 된다. 그 한 마디를 위해 면접 스터디원들과 수없이 연습했다. 그러나 내 입에서는 전혀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그 질문을 들었을 때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좋아하는 인문학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명확히 알려주고 있었다. 내가 읽어왔던 인문학을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가치관을 토했다.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사람은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어렵게 잡은 면접의 기회였다. 정말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이 말은 꼭 하고 싶었다. 이 말을 하지 않으면 내가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느끼던 모든 것들이 송두리째 날아가버릴 것만 같았다.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말은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진심이었다. 내가 찾은 내 인생의 정답이었다.


누군가는 그런 식으로 소중한 면접 기회를 날려버린 것을 비웃을지도 모른다. 그런 가치관을 잠시 접어두고서 눈 앞의 목표에 집중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말 한 번쯤은, 다시 오지 않을 그 순간에 멋지게 내 가치관을 얘기하고 싶었다. 내가 살아온 모든 것을 걸고 말하고 싶었다. 잘못 살아온 것이 아니라고. 그것이 내가 사는 방식이라고 말이다.


면접관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그리고 면접은 끝났다. 함께 들어왔던 면접자들과 나오는데 그들의 표정은 쾌거를 외치고 있었다. 면접에서 저런 얘기를 하다니, 자신들의 합격률이 높아지는 소리가 들렸을 것이다. 그런 말을 한 것에 대해 후회는 없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지막 그 장면이 자꾸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끓어오르면서 눈물이 났다. 대낮에 한적한 지하철에서 소리 없이 울었다.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눈을 감았다. 멍청하게 기회를 날려버린 것에 대한 후회였을까, 아니면 시원하게 모든 것을 말했다는 카타르시스였을까. 아직도 그 눈물의 의미를 정확히 모르겠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결국 해당 기업에서 합격통보를 받았다. 믿을 수 없었지만 그런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기에 세상은 참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나는 그 회사를 선택하지 않았다. 정상적으로(?) 면접을 치른 다른 회사에 운 좋게 합격하여 입사하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 이제는 그때처럼 절박하지 않다. 세상에 대한 깡다구가 좀 생겼다고나 할까.


그때가 아니었으면 언제 그런 얘기를 해볼 수 있었을까. 취업만이 전부였던 그 시절, 전부를 걸고 말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때를 떠올리면 내 가슴은 여전히 뜨거워진다. 면접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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