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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도쿠 Jul 15. 2020

문이 열리는데 걸린 시간

문이 열리기까지 14년이 걸렸다. 바로 이웃집의 문이다. 나는 지금 아파트에서 산지 14년이나 되었지만, 바로 맞은편에 있는 이웃과 특별히 교류를 한 적이 없다. 첫 만남부터 그리 좋지 않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아니라 우리 아버지가 받은 느낌이다.


우리 가족이 처음 이사 온 날, 아버지는 떡을 돌리러 맞은 편의 이웃집을 방문했다. 똑똑 문을 두드리니 심드렁한 표정의 여인이 나왔다. 이사 와서 돌리는 떡이라고 하자 그녀는 우리 집은 남이 갖고 온 것은 안 먹는다면서 문을 바로 닫아버렸다. 어이가 없던 우리 아버지는 참 불쾌한 경험이라면서 우리 가족에게 있었던 일을 모두 이야기했고 이는 우리 가족의 공분을 이끌어내어 이웃집과의 교류는 거의 끊기다시피 했다. 아버지와 이웃집 여인 사이에서 있었던 일이지만 각자의 가족마저도 서로 마주치면 인사만 하고 빨리 자리를 피하는 어색한 사이가 되었다. 이웃집 가족과 엘리베이터라도 같이 타면 시선을 어찌할 줄 몰라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다. 애매한 사이로 14년이 지났다.


우리 가족에게 이웃집은 없는 집과 마찬가지였다. 그곳에서 누가 살고 있다는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우리 삶에 충실했다. 도시는 다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겹겹이 콘크리트로 쳐진 벽이 마음까지 갈라놓는 것은 도시의 당연한 특징이라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어색한 침묵을 깨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날은 또 엄마와 이웃집 여인이 같이 엘리베이터를 탔던 날이었다.


평소라면 아무 말 없이 올라왔을 텐데 이웃집 여인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내용은 이러했다. 자기 딸이 혼전 임신을 하게 되었는데 너무 속상하다는 것이다. 한 아이의 어머니로서 충분히 속상하고 많이 걱정되었을 것이다. 어디 터놓을 곳이 없자 가슴속 맺힌 응어리를 우리 엄마에게 풀어내었나 보다. 마침 우리 엄마의 직업은 산부인과 간호사였다. 자그마치 경력도 40년에 가까운 베테랑 간호사였다. 몸 조신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주고 나중에 병원으로 찾아오면 잘 봐준다는 말을 했더랬다. 이웃집 여인은 너무 고맙다고 인사하며 현관에서 헤어졌다.


그리고 갑자기 현관 벨이 울렸다. 우리 가족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누구 택배 주문한 사람 있냐는 무언의 표시였다. 아무도 없었다. 지금 이 시간에 참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조심스레 현관문을 열었다. 이웃집 여인이었다. 아까 그렇게 말해주어서 너무 고맙다며 오리고기를 주고 갔다. 조금 뜬금 없는 감이 있었지만 그냥 평범한 오리고기였다. 그러나 마치 영화의 피날레에서 크레딧이 올라갈 때와 같은 감동이 밀려왔다. 나는 단지 그 광경을 보고만 있었을 뿐이지만 직접 겪은 우리 부모님의 마음은 나보다 더했으리라.


14년 만에 열린 것이다. 이웃의 문을 열고 들어가 마음을 만났다. 그 마음은 오리고기에 따스한 온기로 남아 있었다. 사람과 관계, 그리고 인생은 언제나 흥미진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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