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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도쿠 Sep 04. 2020

닭의 별에서 도망친 인간

평소 일주일에 치킨을 3번 이상은 먹는다. 보통 퇴근하고 저녁에 시켜먹는 편이다. 회사생활이 유달리 힘이 드는 날이면 그 날은 치킨 먹는 날이다. 오늘 치킨 먹는 날이라는 생각이 들면 점심부터 이미 기분이 좋아진다. 업무도 더 잘 되는 것 같고 왠지 모를 힘이 난다. 이렇게나 치킨을 좋아하고 많이 먹는데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치킨 덕후는 못 되는 것이다.


요새 보면 한 가지를 열심히 파고드는 덕후가 많다. 정말 좋아하는 것을 깊이 파고들면서 영역을 넓혀간다. 그들의 해박한 지식을 보면 굉장히 놀랄 때가 많다. 나는 치킨을 정말 좋아하지만 덕후가 될 수 없다. 그 이유는 내가 먹는 치킨의 종류는 매우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치킨은 웬만하면 다 좋아하지만, 다양한 종류로 먹는 편은 아니다. 음식이 쉽게 질리는 편이 아니므로 보통 한 가지에 꽂히면 계속 그것만 먹는다. 내가 주로 먹는 치킨은 멕시카나와 BHC이다. 그중에서 멕시카나는 양념, BHC는 뿌링클만 먹는다. 10번 중 7번은 두 종류에서 시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를 깊게 파는데 너무 좁은 곳을 깊게 파는 느낌이다. 두 종류의 치킨으로 할 얘기는 그다지 없어서 유튜브 방송은 진작에 포기했다.


원래 최애 치킨은 멕시카나에 있던 부매랑 치킨이었다. 참고로 부매랑은 부어먹는 매콤한 소스랑의 줄임말이다. 당시 아이유가 광고모델이었는데 표지가 너무 예쁜 나머지 홀린 듯 멕시카나 치킨에 전화를 걸었다. 그때 처음 주문한 치킨이 바로 부매랑 치킨이었고 한눈에, 아니 한맛에 반해버렸다. 슬프게도 부매랑 치킨은 어느 순간 단종되었고 치킨집 사장님은 내게 그 사실을 직접 구두로 알려주었다. 영원한 이별이었다. 첫사랑은 아니지만 가장 사랑했던 치킨으로 아직까지 내 마음에, 아니 내 혀에 남아 있다.  


어렸을 적부터 치킨을 좋아하는 내 모습을 보고 항상 엄마가 하시는 말씀이 있다. 엄마는 간호사인데 당시 나를 낳기 몇 시간 전에도 계속 병원에서 근무 중이었다고 한다. 그 날따라 양념치킨이 유독 먹고 싶은 날이었다. 하지만 많은 환자로 인해 업무가 바빠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쉬움을 달래며 업무를 지속하는데 갑작스레 진통이 시작됐고 얼마 뒤 내가 나왔다. 그러므로 엄마의 말씀은 이렇다. 그날 치킨을 먹지 못한 한이 너에게 이어진 것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태몽(?)은 항상 양념치킨이라고 하신다.


학창 시절부터 치킨을 좋아하는 내게 친구들은 '치킨 슬레이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친구들도 치킨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나를 신기하게 쳐다본다. 치킨은 국민 음식답게 내 친구들도 모두 치킨을 좋아했다. 우리는 치킨팸을 만들어 여기저기 치킨집 탐방을 다니기도 했다. 특히, 고등학교 때 한 친구와는 부어치킨을 일주일에 3번씩 방문하기도 했다. 당시 6,900원 정도의 저렴한 가격이어서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우리에게는 딱 맞는 치킨집이었다. 둘이서 최대 4마리까지 먹은 기억이 있다. 마음뿐만 아니라 식성도 맞는 그 친구와는 눈빛만 교환해도 상대의 치킨력을 파악할 수 있었다.


치킨을 좋아하는 이에게는 꼭 따라다니는 말이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이미 널리 통용되는 관용적 표현이다. 전생에 닭이랑 원수 졌냐는 얘기는 정말 수십 번 들어보았다. 아마 닭에게 심하게 괴롭힘 당하거나 혼쭐이 난 뒤, 인간으로 태어나 닭에게 복수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런 얘기를 듣다 보면 가끔 상상도 해본다. 닭과 원수를 진 삶은 과연 어떤 것일까. 닭의 부리를 피해 어디로 도망가야 하는 것인가. 어쩌면 닭의 별이 따로 있고 나는 거기서 도망친 인간이 아닐까. 지구로 오면서 머리를 부딪혀서 기억은 못하지만 말이다.


오늘도 그렇게 치킨을 먹었다. 지금까지 미루어 보았을 때 누적 2,000 마리 정도는 먹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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