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란 말은 참 매력적이다. 꾸밈없는 순수함이 묻어나는 것 같기도 하고, 존재의 본질을 다루는 표현 같기도 하다. 팔색조 같은 말임을 결코 부정할 수 없지만, 마냥 좋아하는 표현은 아니다. 보통 있는 그대로 다음에 붙는 문장은 다음과 같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그게 과연 쉬울까. 아니 그전에 현실 가능성이 내포된 말일까란 의문을 좀처럼 감출 수가 없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나를 사랑하라는 말은 물론 훌륭하다. 그러나 그런 사랑은 동기부여와 관련된 말을 들었을 때 잠시일 뿐 오랫동안 지속되기 어렵다. 외모든, 능력이든, 환경이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삶은 우리가 스스로를 가만히 사랑하게끔 놔두지 않는다. 끊임없이 쥐고 흔들어 나를 사랑하려는 마음을 탈탈 털어버린다.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라는 말은 조금 무책임하게 들린다. 누가 봐도 괜찮은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만족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만족하기에는 대내외적인 장벽이 많다. 예를 들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에 비해 있는 그대로의 만족도가 높을 것이다. 원만한 성격으로 인간관계가 좋은 사람은 예민한 성격으로 친구가 없는 사람에 비해 있는 그대로의 만족도가 높을 것이다.
있는 그대로란 말은 멈춰 있으란 말처럼 들린다. 변화를 내포하지 않은 말이다. 무수히 변화하는 세상에서 변화 없이 그대로 있을 수 없을까. 사실 나를 사랑하려면 나 또한 변화해야 한다.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나를 사랑하기 위해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나를 변화해야 하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도 소박한 취향을 가지고 있다면 상관없다. 그러나 다양한 활동을 즐기고 싶은데 돈이 없다면 문제가 생긴다. 예민한 성격으로 친구가 없어도 외로움을 잘 견디는 사람이라면 상관없다. 그러나 친구는 갖고 싶은데 성격을 고칠 수 없다면 문제가 생긴다.
있는 그대로는 어쩌면 미봉책에 불과하다.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 없이 덮어버리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만족해하지 않는다. 타인도 마찬가지이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아무 이유 없이 좋아하기는 쉽지 않다. 나조차도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데 왜 타인에게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좋아하길 원할까. 어폐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는 현실과 타협하여 타인이 원하는 모습을 갖출 필요가 있다. 상대가 나를 좋아하게 만들려면 상대가 좋아하는 모습을 갖추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무조건적임이 틀림없지만, 매일 말 안 듣고 술 먹고 깽판만 치는 자녀를 무조건적으로 좋아하라는 것은 인내심의 한계를 보겠다는 것이다. 자녀의 입장에서 부모의 사랑을 원한다면 부모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적어도 부모님께 따뜻한 말 한 마디나 애정표현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있는 그대로의 나보다, 변화하는 나를 사랑할 필요가 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해 주길 바라는 것보다, 상대방을 통해 변화하는 나를 좋아해 주길 바랄 필요가 있다. 고대 그리스 사상가 헤라클레이토스는 말했다. 이 세상에 모든 것은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한다는 사실 하나뿐이라고. 사람은 있는 그대로 머물러 있기보다는 변해야 한다. 사람과 세상으로 하여금 때론 흔들리고, 상처 받고, 울기도 하겠지만 그럼에도 변해야 더 나은 삶을 맞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