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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도쿠 Aug 29. 2020

실수하는 것이 두렵지 않아

업무를 하면서 실수를 할 때가 있다. 실수를 하면 일단 당황스럽다. 어떻게든 해결을 해야 하는데 상사나 동료에게 말하기 부끄럽다. 자칫 큰 책임을 지거나 질책을 들을 수도 있다. 그럴 때 나는 곰곰이 생각한다. 이것을 숨겨서 나중에 큰 문제로 발전하는 것과 바로 이야기하고 한시라도 빨리 해결하는 것 중 어떤 것이 나을까. 언젠가 해결해야 할 문제이고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라면 무조건 지금 말하는 것이 낫다. 그래서 나는 실수를 하고 나면 바로 이야기를 하는 편이다.


단 한 번도 실수 없이 살아온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사람이 아니다. 사람은 실수를 하기 위한 생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동물이 실수를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실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원래 그렇게 행동하는 동물이라 여길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실수를 한다면 그것을 분명하게 실수라고 여긴다. 다행인 것은 실수는 개선을 위한 과정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실수를 하고 나면 다음에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또 실수는 한다.


실수는 원래라면 정상적으로 해결했을 문제를 잠시 생각의 착각이나 행동의 오류로 범하는 것이다. 실수는 몇 차례로 끝날뿐 수십, 수백 차례로 가지 않는다. 그것이 실수의 특성이다. 실수는 오랜 시간 지속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실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실수를 하고 나면 상사에게 질책을 받거나 동료에게 불평을 들을 수 있다. 조직에서 업무 역량을 의심받을 수도 있다. 그때는 당연히 나의 마음도 힘들다. 하지만 내가 업무를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분명히 점차 실수량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어떤 업무든지 실수의 절대량이 있다고 생각한다. 해당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꼭 하는 실수 패턴들이 있다. 신기하게도 해당 업무를 맡은 사람은 그 절차를 그대로 따라가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므로 중요하는 것은 실수를 하는 두려움이 아니다. 실수를 하고 고백해야 하는 두려움이다. 입 다물고 있으면 큰 문제로 발전하는 실수가 있다. 그 실수는 더 큰 문제로 확대되기 전, 바로 고백해야만 한다.


어떻게 하면 고백의 두려움을 줄일 수 있을까. 생각보다 답은 단순하다. 나를 믿는 것이다. 내가 살아온 삶을 믿는 것이다. 내가 살면서 수없이 많은 실수를 했는데도 지금 여기까지 이렇게 왔다. 앞으로도 실수의 절대량은 채우겠지만 나의 삶은 그대로 나아갈 것이다. 깊게 박힌 고목이 가지 몇 개 부러졌다고 쓰러지지 않는다. 삶 전체로 보면 거창하게 느껴졌던 실수는 생각보다 미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실수에 대한 죄책감을 너무 오래 두고 있지 말자. 다만 빨리 고백하자.


물론, 법적 테두리를 넘어선 행동을 하고 실수라고 한다면 절대 안 된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의 합의를 무시한 무조건적인 잘못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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