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탱동 Jun 30. 2021

나를 달리게 한 그녀!

출처: pngtree

산책길을 달리고(?) 왔더니 얼굴이 시뻘겋다. 달렸다는 말에 굳이 물음표를 단 이유는 좀 애매한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평소처럼 걸었다. 다만 좀 힘찬 걸음이었다. 난 한때 늘 이렇게 걸었다. 

“전투적으로!”  

    

매일 한 시간가량 규칙적으로 걷기 시작한 지는 꽤 됐다. 2009년부터였으니, 10년은 훌쩍 넘었다. 그전에도 고정적으로는 아니지만, 걷기나 가벼운 등산은 자주 했었다. 

그러다가 작년 6월부터는 조금씩 뛰기 시작했다. 처음엔 ‘1분 뛰고 9분 걷기’로 평소 걷던 산책길을 완주하는 걸 목표로 했다. 처음 달릴 때는 채 1분도 뛰지 못했다. 별것 아닌 것 같은 1분이 생각보다 길었고, 숨이 엄청 가빴다. 

넉넉한 체중에, 날렵하지도 않은 중년의 몸으로 처음 시작한 달리기는 온몸이 쑤시게 했다. 허벅지 안쪽부터 시작해서 다리 곳곳이 돌아가면서 아팠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는 물론이고 그냥 걷는 것도 버거울 만큼 통증이 왔다.  

    

며칠을 하고 나니, 호흡도 조금씩 편안해지고 시간도 수월하게 지나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날엔 시간을 보지 않고, 달릴 수 있을 만큼 최대한 달려봤다. 2분을 훌쩍 넘겨 거의 3분에 다다랐다. 뿌듯했다. 숫자 하나가 이렇게 으쓱하게 만들다니! 

날이 가면서 1분 2분 더해졌고…… 10분, 15분, 20분을 채우려고 의도적으로 멈추지 않고 달렸다. 숨이 가쁘고,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견뎠다. 참고 도달했을 때 얻는 그 짜릿한 맛에 중독되어 갔다.     


모든 것이 언제나 순조로울 수 없다더니, 달리기 역시 그랬다. 

하루는 달리다가 허벅지 안쪽에 터질 듯한 통증으로 얼마 못 가고 멈춰 서야 했다. 매일같이 상승 곡선을 그리며 갈 줄 알았는데…… 패잔병처럼 아픈 다리를 질질 끌면서 돌아왔다. 의지만 앞세워 억지로 뛰었다가 무너졌다! 

다리가 다 풀릴 때까지 달리는 것 대신 걷기만 할 때도 있었다. 그런 날엔 개운한 맛이 없었지만, 다리가 풀리고 다시 달리는 날엔 그 전보다 훨씬 더 가뿐하게, 길게 달릴 수 있었다. 모든 것엔 쉼이 필요했다.     


하루 간격으로 달리기와 걷기를 병행했다. 다리의 피로도 풀리고, 근육도 강화되었는지 그렇게 아팠던 곳곳의 통증이 사라졌다. 달리는 시간은 점차 길어지고, 마침내 전 구간을 쉼 없이 달릴 수 있었다. 드디어 멈춤 없이 40여 분을 줄곧 달려 늘 걷던 산책길을 달리기로 완주했다. 

이걸 내가 다 해내다니!!!     




처음 달렸을 때를 돌이켜보면 그때는 끊임없이 숫자만 셌다. 백번 셀 때까지만 달리자, 200번 셀 때까지만, 300번……. 그러다가 저기까지만 달리자, 아니 저 다리까지만 더 달려보자. 가쁜 호흡과 아픈 다리를 참아가면서 달리느라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달리기만 했다. 시간이 빨리 가길 바라면서, 도달점만 생각하면서 땅만 보고 달렸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는 산책길 옆으로 흐르는 하천의 물도 보이고, 나무들과 꽃들, 주변 풍경들을 다 눈에 넣으면서 달릴 수 있다. 또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달리다 보면 어느새 다 달렸다. 달리기에 여유가 생겼다.          


그렇게 5개월가량 줄기차게 달리다가 11월 초에 회전근개파열 진단을 받고 급하게 어깨 수술을 받았다. 입원과 6주 동안 보조기 착용 그리고 재활치료, 팔에 무리가 가지 않게 조심하라는 지시에 따라 달리는 대신 예전처럼 다시 걸었다.      


4개월 정도 지나면 안정기에 접에 든다고 해서 넉넉잡아 4월쯤엔 다시 달리겠지 했다. 그때는 그랬다. 달리기에 대한 나의 애착이 컸다. 수술을 위해 입원하는 날 아침에도 달리고 입원했을 정도니까.

그런데 4월이 되고, 5월을 지나, 6월이 다 끝나가도록 달리기는 좀처럼 다시 시작되지 않았다. 그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냥 걷는 게 편하고 좋았다. 

실은 내 달리기 열정에 찬물을 끼얹은 게 하나 있다. 똑같은 거리를 걷는 대신 뛰는 데 소비되는 에너지 차가 겨우 15칼로리 뿐이라는 걸, 우연히 포털 운동칼로리 계산에서 해보는 바람에……. 뛰는 게 걷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힘든 거 같은데, 고작 15칼로리 차이라니……! 

어쩜 다시 뛰기 싫은 마음에 일부러 그걸 찾아 계산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고 있던 차에 그녀를 만났다.

팔을 아래위로 요란하게 흔들면서 내 앞을 지나가는 그녀를 보자, 갑자기 내 걸음이 빨라졌다. 아까 말한 것처럼 난 참 전투적으로 걷는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걸음 자체가 빨라서 웬만한 사람들은 나를 잘 추월하지 못했다. 

그런데, 뜻밖에 그녀가 그런 요란한(?) 걸음걸이로 나를 앞서가는 것에 흠칫 놀랐던 거 같다. 이상하다고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하여튼 승부욕이라고는 좀처럼 부리지 않던 내게 갑자기 그것이 솟구쳤다.

난 빠르게 그녀를 추월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싶을 만큼 앞지르고 나서 나도 모르게 속도를 좀 늦췄나? 누군가 내 뒤에서 쌕쌕거리며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발걸음 소리와 휙휙 바람을 일으키는 몸짓! 그녀가 분명했다. 바로 뒤에서 그녀의 숨결이 느껴졌다. 과하게 속도를 내면 너무 속 보이는 것 같아서 살짝만 속도를 내봤다. 하지만 그녀의 독기(?) 품은 속도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녀는 순식간에 날 앞질러 걸었다. 여전히 위아래로 요란하게 팔을 휘저어 가면서 말이다.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그 순간 왜 그런 생각이 일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8개월가량 멈췄던 달리기를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불끈 솟았다.


달렸다! 


눈앞에 있는 그녀를 추월하는 건 우스웠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공백기를 무시하고, 준비도 없이 갑자기, 그것도 밥을 먹은 지 채 30분도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달렸기 때문에 숨이 턱까지 찰 뿐만 아니라, 속도 매스꺼웠다. 하지만 뜬금없이 달리다가 또 뜬금없이 멈출 수는 없었다. (알고 보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데, 저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는 중이었다~ㅋㅋㅋ)   

  

더 이상 달렸다가는 정말 어떻게 될 거 같아서 속도를 늦추고 걸었다. 산책길 끝에 다다라서 되돌아오다 보니 그녀는 저만치에서 여전히 씩씩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괜한 아집에 혼자 뛴 걸 생각하니…… 덕분에 시간은 단축됐다만. 집에 와서 씻는데 계속 기침이 났다. 예정에도 없었던 달리기를 이상한 심보로 달린 탓일 거다. 다만 이 달리기가 내가 다시 달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아니어도 할 수 없고. 고작 15칼로리 차이뿐이라잖아!     


도대체 왜 그렇게 그녀를 추월하고 싶었을까?!         


        

이전 13화 그때도 아팠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