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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동 Jul 05. 2021

'엄또버'가 된 사연

“엄마, 그때 그 문자 좀 보여줘 봐요.”

“무슨 문자?”

“있잖아요. 그거 영어학원에서 보낸 문자…….”

“지웠는데.”

“하여튼! 엄마는 정말 엄또버라니까.”     


엄또버

딸이 나한테 붙여준 별명이다. 정확히는 딸과 신랑의 합작품이다. 어느 날 둘이서 나를 두고 이렇게 부르면서 키득키득 웃어댔다.

엄또버는 “ 렸어요”의 줄임말이다.

    

내가 ‘엄또버’가 된 데에는 너저분한(?) 걸 참아내지 못하는 성질이 한몫했다. 난 물건들이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있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심지어 컴퓨터 바탕화면도, 이메일 편지함이나 문자와 카톡창에도 뭔가가 어지러이 널려 있거나 쌓여 있는 것을 그냥 두고 보지 못한다. 깔끔하게 정돈되고 비워내야 안심됐다.’ 

대화가 끝난 단톡방에서도 재깍 나와 버린다. 서로 할 얘기도 끝났고, 카톡창이 여러 개 열려 있는 것을 그냥 두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그리 한 것뿐인데……. 그것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그래서 요즘은 한참 내버려 뒀다가 아무도 관심 두지 않을 때쯤 조용히 빠져나온다.  




그때 그 화분들을 그렇게 줘버리는 게 아니었는데……      


우리 집에 와서 근 8년간 한 번도 분갈이하지 않아서 제멋대로 뒤틀리고 웃자라버린 고무나무를 더는 볼 수가 없어서 유튜브에서 삽목하는 방법을 찾아보면서 따라 했다.

가지를 다 잘라내고 보니까, 생각보다 꽤 많았다. 저걸 다 나눠 심자면, 화분이 많이 필요했다. 유튜브 영상을 보니 고무나무만 문제가 아니었다. 다른 식물들도 이미 분갈이 시기를 놓쳤다. 하는 김에 다 하기로 맘먹었다. 필요한 화분의 수가 더 늘어났다.

필요한 화분의 수를 꼽다 보니, 얼마 전까지 우리 집 베란다 한쪽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던 크고 멋진 화분들이 눈에 어른거렸다.

     

‘화초들은 우리 집에 오면 왜 다 죽을까?’ 어떤 이의 궁금증처럼 우리 집도 그랬다. 산세베리아가 한창 유행할 즈음에 이 집으로 이사 들어오면서 직접 산 것부터 집들이 선물까지 해서 여러 개의 산세베리아 화분들이 생겼다.

산세베리아와 고무나무는 화초를 키워본 경험이 없는 내게 화원에서 키우기 쉬운 거라며 권했던 식물이었다. 그 말처럼 그들은 별다른 보살핌 없이 우리 집에서 잘 컸다.


그러던 어느 겨울 끝자락이었나, 이른 봄이었나, 하여튼 유난히 햇살이 좋은 날이었다. 무슨 바람이 들었나, 평소엔 무심히 지나치던 화초들이 그날따라 갑자기 내 눈에 들어왔고, 화분의 흙이 몹시 메말라 있는 것이 안 돼 보였다.

끙끙대며 거실에 있던 화분들을 모조리 베란다로 꺼냈다. 화분에 물을 줄 때는 화분 바닥에 있는 구멍으로 물이 빠져나올 정도로 흠뻑 주라는 가르침을 충실히 따랐다. 무거운 화분을 들어다 옮기고, 물과 함께 빠져나온 흙을 청소하느라 등줄기에 땀이 배었지만, 모처럼 애정을 쏟은 것 같아서 마음은 흡족했다.

그런 내 마음과 달리 그날 그렇게 베란다에 나와서 내 사랑(?)을 듬뿍 받은 산세베리아는 다 얼어 죽고 말았다. 내 기분에 취해서, 때 이른 봄바람에 홀라당 유혹돼서 그런 사달을 냈다.


이사하고 나름 큰맘 먹고 장만했고, 집들이 선물로 들어온 화분들이라 다들 큼직하고 꽤 멋스러웠다. 나로 인해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한 화분들은 죽은 화초와 흙을 다 토해내고 깨끗하게 씻겨서 베란다 한편에 고이 모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화분에는 먼지만 쌓여가고, 멋스러운 빛깔은 온데간데없어졌다. 점차 구석으로 처박히는 듯싶더니, 베란다 물청소 때마다 거슬리는 존재가 됐다.

그러다가 집 일부를 손보게 되면서 오신 한 분이 화분을 왜 이렇게 뒀냐는 말에 원하시면 가져가라고 했더니, 같이 온 다른 분들까지 나서서 화분이 맘에 든다며 가져가겠다고 했다. 버리기 아까웠는데 잘됐다 싶어 다 가져가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 깔끔해진 베란다를 보면서 흐뭇해했다.

다*소에서 저렴한 화분을 사서 삽목과 분갈이를 마쳤다. 중간에 몇 개가 죽어 나갔지만, 꽤 잘 크고 있는 중!

    



그때 그렇게 내줬던 화분들이 이제 와 필요에 의해 다시 떠오르면서 내 속을 어지럽혔다.

필요 없다고 다 가져가랄 때는 언제고,  이제서야 이렇게 아쉬워한들…… 너저분한 걸 다 치워서 속이 개운하다고 할 땐 언제고, 인간의 마음이 간사하기 이를 데 없다더니……!     


그렇게 난 엄또버가 됐다.

유난스러운 성격 때문에 엄또버라는 별명까지 얻고, 가끔 뒤늦게 다시 찾아봐야 할 문자나 카톡 메세지가 내 급한 손끝에서 사라져버린 탓에 당황할 일이 종종 생기면서 나의 이 고질병(?)을 좀 고쳐보려고 애쓰는 중이다.  

   

“엄또버”

내 너를 반드시 버릴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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