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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동 Jul 20. 2021

지금 여름, 그때 여름

장마를 크게 느낄 새도 없이 장마가 끝났다. 비가 많이 와서 피해를 입은 지역 소식을 접하면 그저 무탈하게 지나간 것에 감사할 따름이지만, 비다운 비가 간절한 마음, 또한 어쩔 수 없다.      


이른 아침, 앞 베란다 쪽 창문을 여니 시원한 바람이 확 들어왔다. 맞바람이 치면 이리 시원한 것을! 

여름이면 소음 때문에 도로와 인접한 앞쪽 창문을 닫고 생활해야 하는 것이 고역이다. 낮에는 그럭저럭 참아내는데, 잘 시간엔 얄짤없다. 

아파트 단지 사이로 난 4차선 도로는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곤 오가는 차량이 그다지 많지 않은데도, 창을 열어둔 실내에서 느끼는 소음은 길거리에서의 느낌과 사뭇 다르다. 특히 심야엔 드물게 오가는 차량과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오토바이 소리에도 단잠을 깨고 만다. 그럴 때마다 밀려드는 짜증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아무리 더위도 꼭꼭 닫고 자는 게 차라리 낫다.

더위에 며칠 잠을 설치고 나면 이사 가고 싶다는 충동이 강하게 인다. 그러다가 여름이 끝나고, 더 이상 창을 열어두지 않아도 될 때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 잊어버린다. 앞이 트여서 좋고, 창을 통해 멀리 초록의 산과 나무들이 잘 보여서 좋다고 중얼댄다. (인간의 마음이 가볍기 그지없다.)         




창문을 다 열어두고,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아침 공기는 상쾌했다. 햇살이 드리워지지 않은 이 시간에만 누릴 수 있는 혜택이다. 

찔끔찔끔 내린 비 때문인지, 개천에 풀들은 저 혼자 웃자라서 개천을 가로막았다. 넓었던 물길은 무성하게 자란 풀들에게 자기 자리를 다 뺏기고 말았다.     

물이 흐르는 개울은 점점 비좁아지고 풀은 점점 자리를 넓혀가고 있다!


아직 태양이 힘을 다 발휘하지 않은 아침이라 샤워를 끝내고 거실에 나앉아 글을 긁적이는 이 순간은 선풍기도 필요 없을 만큼 쾌적하다. 일요일 이른 아침이라 차량의 행렬도 뜸해 앞쪽 문을 다 열어두었는데도 그다지 시끄럽지 않다. 아침 일찍 일어난 덕분에 누릴 수 있는 게 꽤 된다.     


아침나절이 끝나갈 무렵이 되자,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열기가 보태졌다. 이른 아침의 상쾌한 기운은 힘을 잃어가고, 매미는 점점 맹렬하게 울어댄다. 이제 더위와 한판 승부를 펼쳐야 할 시간이 왔다는 뜻이다. 에어컨은 아직 틀지 않았다. 정오도 되지 않아서 더위에 무릎을 꿇는 건 말이 안 된다. (나 혼자만의 논리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버틸 생각이다.          




여름엔 이른 저녁을 먹었다. (‘이르다’ 말은 해가 다 넘어가기 전을 뜻한다) 여름 해가 길기도 했지만, 가능한 불을 켜지 않고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시골에서 여름밤에 불을 켜는 것 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다. 불을 켜는 순간 모기를 비롯한 하루살이, 나방... 온갖 벌레들이 순식간에 몰려든다. 그 때문에 여름밤 시골 마당에선 불빛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른 저녁을 먹고 나면 마당엔 모깃불을 놓았다. 모깃불에 익모초를 넣으면 향이 진해 모기가 달아났다. 모깃불 연기가 집안 곳곳으로 퍼지면서 곳곳에 숨어있던 모기를 다 쫓아냈다. (진짜인지는 알 수 없다. 어른들이 그랬으니 맞는 말일 게다)

사진-붕어터-Tistory

그리고 나선 방방마다 모기장을 쳤다. 시골에서 여름을 나려면 모기장은 필수였다. 사방으로 펼쳐서 고리를 걸고, 안으로 들어가 넓게 밀어낸 다음 모기장 아랫자락 중간중간에 옷가지나 마른걸레로 눌러놓으면 모기장 치기 완성이다. 

우리는 마루에 모기장을 치고 잤다. 안방과 건넛방 사이 뒤란과 이어지는 마루는 넓고 시원했다. 뒤란 쪽 문을 열어두면 들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모기장을 쳐놓은 마루에 누우면 마룻바닥의 차가운 기운과 마당과 뒤란으로 통하는 상쾌한 밤공기가 온몸으로 스며들어 금방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이른 저녁을 끝낸 마을 공터 다리 위엔 할머니들이 더위를 피해 나앉았다. 집보다 탁 트인 그곳이 훨씬 시원했다. 할머니들 손엔 짜맞춘 듯 비닐 포대로 만든 부채가 하나씩 들려졌다. 비닐 포대로 만든 부채는 가벼워 바람도 잘 일으키고, 달려드는 모기를 쫓는 데도 안성맞춤이었다. 

이미지-다음블로그

꼬마 아이들은 다리 아래로 흐르는 개울에 손전등을 비추면서 놀았다. 동그란 불빛 아래 미꾸라지들이 몰려들었다. 미꾸라지를 잡을 생각도 크게 없다. 그저 몰려드는 걸 보는 재미가 전부다. 그 재미에 모기에 뜯기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밤이 깊어 가는 줄도 몰랐다.     


모깃불을 피웠던 재 위에 등겨를 봉분처럼 쌓고 불을 지피면 붉은 기운이 감도는 봉우리가 되었다. 뜨거워진 봉우리 위를 갈라 솥에서 끓인 감주를 담은 옹기를 파묻었다. 뚜껑을 덮은 윗부분만 남기고 붉은 재로 덮었다. 그리고 얼마 후면 빨간색의 석감주가 되었다

더운 여름에 뜨거운 석감주는 참 이해가 안 되었지만, 냉장고가 없던 시절 감주 맛이 변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나름 고안해낸 방법이 아닐까 싶다. 

난 뜨거운 석감주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그 빨간 석감주가 참 그립다.     


그때는 그렇게 여름을 났다.     




자연에서 찾아낸 방법으로 여름을 나던 그때와 견주어 보면 이것저것 많을 걸 갖춘 시대임이 확실한데, 여름 날 걱정이 앞선다. 이상 기후로 지구 곳곳에서 들리는 들끓는 폭염과 미친 듯이 쏟아내는 폭우 소식은 두려운 마음을 부추긴다. 분명 더 나은 세상에서 사는 것 같은데, 정말 그럴까 하는 의구심이 인다.     



(표지 이미지-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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