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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동 Aug 03. 2021

여름 산행의 맛

오랜만에 산에 갔다.

산이라기엔 좀 그런, 높다란 언덕 정도로 여길 만한 높이에 오르내리는 방향도 제각각이라 인근에 사는 사람들이 여러 방향에서 오르고 내린다.

우리 집 쪽에서 올라가서 반대 방향으로 다 내려오다가, 다시 방향을 틀어 올라와 되돌아 내려오면 1시간 조금 더 되게 걸리는 산행길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내려오는 길에 아이스크림이라도 하나 입에 물고 올 요량으로 산 반대 방향으로 내려와서 도로를 따라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이제는 산행을 따라나서지도 않는 탓에 그렇게 할 이유가 없어졌다. 다시 오르는 게 좀 버겁더라도 오롯이 산길로만 다닐 수 있다는 점이 좋아서 그렇게 하고 있다. 특히 이런 여름철엔 더더욱 산길이 좋다. 한낮에도 울창한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줘서 오르내리는 힘듦을 조금만 참으면 훨씬 더 시원하고 유익한 산행길이 된다.  


   



아이들과 산행을 할 땐 비록 언덕배기에 불과한 작은 산이지만,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담은 보온병과 간식이 필수였다. 이것들은 산행을 유혹하는 미끼였다. 신랑이랑 가면 한 시간 남짓이면 거뜬히 해치우는 산행인데, 아이들과 나서면 뒤치다꺼리가 많다. 산 입구에서부터 라면 언제 먹냐고 시작된 물음은 몇 발자국 가지도 않아서 또 이어서 나온다. 이들의 산행 목적은 오로지 컵라면뿐이었다.

그런 유혹이 눈앞에 있을 때 최대한 많이 가놓을 심산으로 아이들을 다독이면서 길을 재촉한다. 더는 못 버틸 때쯤 만나는 정자나 벤치에서 짐을 풀어 라면을 먹는다. 산에서 먹는 라면은 아이들 못지않게 어른인 나한테도 꿀맛이다.

라면을 다 먹고 나면 이제는 얼마나 더 가면 되냐로 질문이 바뀌어서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젠 미끼도 없는 탓에 조금만 가면 된다고 어르기도 하고, 엉뚱한 질문을 해대어 생각을 다른 곳으로 몰아간다. 가끔 이게 정말 잘 먹힐 때가 있다. 아이들은 이야기에 빠져서 산행의 힘듦도 지루함도 다 잊고 오로지 그것에 대해 재잘대다가 어느새 다 내려온 자신들을 발견한다. 그럴 땐 모두가 즐겁다. 이런 요행이 자주 있진 않았다. 산행하는 것보다 애들 뒤치다꺼리에 진이 더 빠지는데도 아이들을 앞세워서 하는 산행이 좋았다.


이젠 그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는다. 마음이 내키면 아무런 조건 없이 따라나선다. 그런 경우가 비록 드물긴 해도 그렇게 나선 산행에선 산행을 자주 하는 우리보다 더 씩씩하게 잘 올라간다. 젊은 피를 이길 수는 없나 보다.     




아침 운동을 했으면 굳이 산행에 나서지 않았을 터인데, 코로나 백신 접종을 하고 쉬는 게 좋다는 권고에 따라 3일 동안 아침 운동을 하지 않았다. 주사 맞은 부위에 묵직한 통증도 사라져 팔이 가볍고 해서 늦은 아침을 먹고 산행에 나섰다. 때마침 날도 흐려서 마음도 가벼웠다. 평소처럼 햇살이 강했으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텐데.


날은 흐렸지만 시원하기보다는 좀 후덥지근했다. 도로를 벗어나 산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새들과 벌레들의 소리에 귀가 얼럴럴했다. 이런 맛이지!^^ 마지막 가장 높은 언덕까지 가려면 초입에서 시작된 오름길부터 네 개의 오르막이 있다. 가면 갈수록 조금씩 더 높아진다. 마지막 언덕인 깔딱고개를 올라오니 숨도 가쁘고 온몸에 땀이 비 오듯 했다.

여름 날씨에 이 정도 땀이야 그러려니 하는데, 땀 냄새 때문인지 조그마한 날벌레들이 떼를 지어 눈앞에 어른대는 데, 쫓아도 쫓아도 계속 달라붙는 게 정말 귀찮기 짝이 없다. 쓰고 있던 창모자를 벗어 휘둘러 대면, 잠시 사라지는 듯하다가 모자를 쓰고 조금만 걸어가면 어느새 또 따라붙어서 눈앞을 어지럽혔다. 내 너희들을 다 잡고야 말겠다고 손을 휘저어보지만, 마치 놀리기라도 하는 듯이 폴폴 달아났다가 이내 돌아오길 반복한다. 내가 포기하는 게 맞지 싶구나!

땀이 온 얼굴에 흥건한데, 닦아낼 마땅한 게 없어서 소맷자락을 잡아당겨 닦았다. 다음엔 꼭 수건을 따로 챙겨 오리라 맘먹었다. 하지만 또 잊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ㅋㅋㅋ 산을 다 내려왔을 즈음에 마시고 남은 차가운 물로 얼굴과 팔에 부어 시원하게 했다.      


집으로 와서 땀으로 범벅인 온몸을 씻어내고 나니, 산행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든 해서 후회하는 건 잘 없다고 하더니, 오늘 산행 역시 그랬다.


여름엔 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산행이 역시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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