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만나면서 뜻밖에 시작된 달리기는(나를 달리게 한 그녀 https://brunch.co.kr/@kmh9397/13) 곧장 이어지지 못했다.
본격적으로 달릴 결심을 하고 시작한 건 칠월 중순쯤이었다. 한동안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는 만큼 처음부터 완주를 목표로 하지 않았다. 첫날 달릴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달려봤다. 23분이었다. 오래 쉬었다가 달리는 것 치고는 꽤 괜찮은 출발이었다.
23분을 기점으로 하루에 1분씩 더했다. 어떤 날엔 힘이 넘쳐 더 달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날은 괜찮지만, 다음날엔 압박감이 커서 나오기 싫은 마음 들것 같기 때문이다.
‘그냥 내키는 대로 달리면 되지, 뭐가 이리 복잡해?’ 싶지만 이상하게 저 혼자 정한 규칙에 목매는 경향이 있는 나로선…… 사람마다 저마다의 성향이 있듯이 난 이런 것에 잘 꽂혔다.
운동은 시작이 전부다.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그냥 하게 된다. 날씨가 궂은 날에도 ‘나갔다가 힘들면 그냥 들어오지머’ 스스로한테 사탕발림을 하고 나선다. 그런 마음으로 나와서 일단 시작하고 나면 웬만해선 중간에 끊고 들어가는 일은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여기까지 한 게 아까워서라도 끝까지 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기고, 또 어느 정도 몸이 풀리고 나면 저절로 하게 된다. 언제나 나오기까지가 늘 시험에 드는 시간이다. 그 때문에 늘 느긋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나를 밖으로 끌어내는 게 필요하다.
우리 아파트 뒤쪽으로 나서면 곧바로 산책로와 이어지고, 산책로는 개울을 끼고 양쪽으로 뻗어있다.
운동을 나서면 나는 곧장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걷거나 달렸다. 왜 그렇게 하냐고 물어보면 딱히 이유가 없다. 그냥 처음에 그렇게 했기 때문에 늘 그렇게 하는 거라고. 지금까지 별문제 없었다. 실은 문제가 있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여겼다.
여름날 이른 아침 시간에 운동을 나가면, 시작할 땐 괜찮았는데 되돌아올 때는 강렬하게 내리쬐는 해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그러다가 어느 날 반대 방향을 보니 여전히 그늘져 있었다. 그렇다면? 시작할 때 왼쪽으로 먼저 가면, 되돌아올 때 해를 마주할 필요가 없다? 유레카! 다음 날부터 방향을 달리해서 가봤다. 나의 예상은 적중했다. 그런데, 난 여태껏…… 이런 단순한 것조차 생각 없이 그저 익숙한 대로 해버리고 말았다! 입으로는 ‘난 합리적인 사람이야!’ 외쳤지만, 실은 그렇지 못했다.
이른 아침에 운동을 나가면 나이 지긋한 분들이 많다. 휙휙 스쳐 지나치는 게 대부분이지만, 간혹 시선이 가는 경우가 있다. 고운 빛깔의 옷을 입은 두 분이 저만치 앞에서 걸어가다가 한 분이 멈춰서 길섶에서 웅크리고 앉았다. 다른 한 분은 그대로 가던 길을 갔다. 내가 좀 더 가까이 갔을 때, 길섶에 앉았던 분의 손에 들꽃 한 송이가 들여져 있었다. 꽃을 꺾은 게 아니라 뿌리째 뽑았다. 그걸 등 뒤로 하고 잰걸음으로 앞서가던 일행을 쫓아갔다. 꽃을 건네는 두 분을 추월해서 앞으로 나갔다. 내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 웃음은 바이러스처럼 나한테도 전달 됐다.
운동을 하다 보면 어떤 날은 입에서는 거친 숨소리가 내뿜어 나오지만, 머릿속에서 쓸 거리가 저절로 떠올라 마구마구 글이 써질 때가 있다. 그 순간 머리에서 이는 게 실제 글로 써져서 괜찮고 안 괜찮고는 나중 일이다. 그럴 때면 뛰는 게 정말 하나도 힘들지 않고, 끝나고도 몸이 붕붕 떠다니는 기분이 든다. 다만 흔치 않은 게 흠이다!
달리기는 숨이 가쁘고 힘들지만, 땀을 흠뻑 흘리고 난 뒤의 짜릿함은 어디 견줄 데가 없고, 걷기는 좀 지루하지만, 등골을 타고 흐르는 자잘한 땀과 함께 편안하고 여유로운 마음을 준다. 어쩌다 쉬는 날의 달콤함은 헤어날 수 없을 만큼 참으로 매혹적이다. 세상 모든 것에 제각각의 맛이 있는 것처럼 운동 역시 그런 것 같다. 하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맛이다. 세상사 거저 없다더니, 느끼는 감정마저 공짜가 없다!
(사진: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