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 걷기만이 아니었다. 2011년 겨울 무렵에 시작한 요가는 작년 1월 말 코로나 19가 우리를 위협하기 전까지 근 8년간 주 5회로 다녔다. 요가원의 원장님이 3차례나 바뀌고, 강사와 실장이 여러 번 바뀔 동안에도 난 계속 다녔다. 어느 실장님이 나의 꾸준함을 칭찬하기도 했다.
궁금하지도 않을 나의 운동 이력을 이다지도 세세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이런 운동 이력이 날씬함(?)으로 이어지지 않는 답답함을 호소하고 싶어서다. 솔직히 ‘날씬’은 바라지도 않는다. 적어도 ‘복부비만’ 이딴 것과는 친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ㅠㅠ
내 동료들과 친구들은 내가 이렇게 운동한다는 걸 잘 모른다. 어쩌다 운동 얘기가 나와 말을 꺼내면 다들 깜짝 놀란다.
‘그렇게 운동하는 것 치고는 몸매가……?’
아마 이런 생각 때문에 나오는 놀람일 거다.
개중엔 “몸이 근육질인가 보다.”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한다.
당황스럽지도 않다. 우리 아이들도 “엄마 뱃살 좀 봐! 엄마는 그렇게 운동을 하는데, 왜 살이 안 빠져?” 놀림과 궁금을 섞어서 말하니까. 그럴 때마다 째려 보지만, 나 역시 궁금하다.
왜지?
많이들 출산과 더불어 살이 쪘고, 왕년엔 다들 한 몸매 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에겐 그 ‘왕년이’ 없었다. 그렇다고 특별히 뚱뚱하지도 않았다. 날씬하다는 표현은 적절치 않고, 좋은 말로 통통하다 정도. 그 통통함은 몹시 일관됐다. 그 때문에 늘 날씬함을 동경했다.
“요즘 운동하나 봐? 날씬해졌어!”
이 말이 듣고 싶어서 이런저런 운동을 많이 했다. (학창 시절엔 잘하는 운동이 하나도 없었다. 100m 달리기가 20초에 가까웠다면 뭐……) 수영, 스쿼시, 에어로빅…… 대부분 1년 이상은 했다. 뒤늦게 시작한 요가와 걷기를 가장 오래 했고, 나한테 젤 잘 맞았다.
하지만, 듣고 싶어 했던 그 말을 여태 못 듣고 있다.
내 인생에서 딱 한 번 날씬했던 적이 있다. 첫째를 낳고 모유 수유가 끝날 무렵 한약을 먹었다.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다. 아무 옷이나 쑥쑥 다 들어가고, 길거리 노점상에서 파는 5000원짜리 티를 입어도 예뻤다. 옷 사는 재미가 쏠쏠했다. 51.7kg 성인이 된 뒤 가장 가벼울 때였다.
쉽게 얻은 건 또 쉬이 사라진다고, 금방 요요가 왔다. 어느 틈엔가 돌아보면 난 뭔가를 입속으로 욱여넣고 있었다. 눌러놓은 식욕이 폭발했다. 두 번은 할 게 못 되었다.
난 먹는 걸 좋아한다. 그렇다고 그렇게 과한 정도는 아니다. 남들 먹는 정도로 먹는다. 여기서 제외할 남들이 좀 있다. 그중 동료이자 친한 친구 A는 완전 제외다.
A와 둘이서 초밥 세트를 먹을 때면, 내가 내 몫의 초밥과 곁들어 나오는 우동과 새우튀김을 다 해치울 동안 A는 맨 처음에 나온 계란찜과 초밥 서너 개를 겨우 먹을 정도다.
서로의 식성을 잘 아는 터라 A는 초밥이 나오면 먹기 전에 먼저 몇 개를 내 접시에 올려 준다. 난 그걸 넙죽넙죽 잘도 받아먹는다. 하지만 A가 도저히 못 먹겠다고 남긴 튀김이나 우동까지는, 나 역시 배가 터질 듯해서 먹지 못한다.
1인분으로 나온 초밥 세트에서 한 숟가락이면 끝날 계란찜과 초밥 대여섯 개면 배가 다 차는 A를 어떻게 그 ‘남들’ 기준에 포함 시키겠나? 이런 부류의 남들을 제외한 그 밖의 평범한(?) 사람들처럼 1인분으로 나온 음식을 깨끗이 비울 정도니 나를 과하다고 볼 순 없다.
그럼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신경 쓰이는 게 하나 있긴 하다. 음식을 특별히 가리지는 않지만 주로 얼큰하고 간간한 음식을 선호하는 편이다. 밍밍한 맛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때문인지 갈증이 잦아 물을 많이 마신다. 누구는 물을 억지로 마신다고 하는데, 내 경우엔 하루에 물2L쯤은 일도 아니다. 다이어트에 좋다는 물도 이렇게 잘 마시는데……ㅋㅋㅋ 어쩜 그만큼 짜게 먹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