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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맷돌 Feb 20. 2023

날짜를 잊어버렸어요

  한 달 30일, 하루하루에 번호가 있다. 번호는 숫자이고 숫자는 이미지가 없다. 그것을 우리는 날짜라고 부르자고 약속했다. 는 숫자이고 나는 수에 약하다. 많은 벽돌이 마당에 즐비하게 내려져있던 날, 벽돌이 몇 개인지 물어보는 아버지의 의도처럼 숫자는 내 머리에 잡히지 않는다. 그 이유는 친하지 않기 때문이다.


  친한 숫자는 계절이 떠오른다. 그날 일어났던 일과 함께 기억을 한다. 큰애가 태어나던 날은 낙엽이 지는 10월이었다. 아이를 안고 병원에서 퇴원하던 날은 바람이 불고 갑자기 추웠었다. 그래서 바람 불고 낙엽이 잔뜩 나무에 무성하게 떨어질 날만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 그때 그 시간 속으로 돌아간다.


  제일 많이 봤기에 기억할 수 있는 가족은 애착관계에 있다. 가족 구성원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아지의 기일, 이력서에 기입해야 하는 학교 입학 연도와 졸업 연도, 그런 국직 국직 한 날짜들에는 이미지가 있다. 촛불을 켜고 생일 축하송을 하던 날, 그런 이벤트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어린 고사리손으로 손뼉을 치며 웃고 있었다. 기념일에는 희로애락이 있다.  함께했던 기억이 살아나 그날이 되면 설레고 슬프기도 하다. 나이를 먹어가고 있구나,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가고 백업 된 모습에서 어릴 적 귀여운 얼굴을 작별한 느낌이 든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큰맘 먹고 같이  즐거운 외식을 했던 날, 켜켜이 인생이 팥시루떡처럼 맛있는 기억이 스멀거렸다.


   어느 날 지인이 몇칠인지 물어본다. 딱히 할 말이 없다. 날짜가 내 머릿속에서 튀어나오지 않는다. 오늘이 며칠인지 까먹었다. 핸드폰을 켜고 보면 될 것을 왜? 물어보는지. 내 뭘 뚱한 얼굴에 지인이 그제야 휴대폰을 열고 본다.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았다.  

  너무 바쁘게 생활하다 보니 시작하고 끝나는 일상의 반복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돌고 돌았다. 새로울 건 없지만 시간 안에 움직이는 하루하루가 사고에 대한 안전을 염두에 두고 행동하는 일들은 그런 것이었다. 신경 쓸 여력이 소진되어 가기 바쁘고  돌아오기 바쁘게 저녁이 되었다.


  날짜는 간략하게 월급날과 가족 생일정도가 내가 챙겨야 하는 숫자였다.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아는 게 날짜보다 더 중요했다. 일주일은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순환하며 돌아간다. 나는 격주로 쉬기 때문에 토요일, 일요일이 중요해졌다. 이것을 혼동하면 업무에 지장이 있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일에 떠밀려 표류하는 하루를 보내다 보면 날짜보다 오늘은 일요일인데 첫 스타트를 길게 가겠네, 하는 힘에 안배를 생각하게 된다. 흔히 월요병이라고 부르지만 일요일을 일을 할 경우 월요일은 그저 일주일의 연장선상에 있을 뿐이다.

  

 주말이 있어도 25일을 채워야 한 달 월급을 주는 시스템은 말이 좋아 월급제이지 그냥 남는 자투리 천과 다름없다. 일에 효율을 높이기 위해 쉬는 주말은 한 달 일에 포함된 게 아니라 그저 마찰을 줄이기 위한 벽속에 보이지 않는 완충제다.


  학창 시절 숫자에 대한 기억을 생각해 봤다.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은 담임선생님과 학과별 선생님으로 나뉘었다. 담임선생님은 반 아이들을 번호로 부르지 않는다. 이름을 불렀다. 1년을 함께 동고동락해야 하는 운명으로 받아들였기 때문다. 선생님은 학생들 이름을 기억할 때 학생생활기록부 가정 난에 정보를 자라온 배경이나 성장과정을 보고 기억한다. 1등과 꼴찌가 졸업 후 기억나듯 선생님들도 공부를 잘하는 범생이와 꼴찌에 말썽쟁이를 기억한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있으나 없으나 너 무 조용하고 유순한 아이는 기억을 잘못한다. 숫자도 날짜도 그랬다.


  학과별 선생님들은 통괄해서 전 학년에 우수학생만 기억한다. 그 외에 학생들은 출석부를 보고 번호를 부른다. 아무 느낌도 없이 그냥 읽는다. 날짜에 맞는 번호를 부르는 선생님은 유독 숫자를 가르지는 수학선생님이었다. 생물 선생님은 자리를 좋아하는 앞에서 두 번째, 뒤에서 오른쪽으로 첫 번째 이런 식으로 아이들을 지목했다. 아이들은 자기 번호가 불릴까 봐 날짜를 부르는 과목이 들은 날은 그 날짜 번호인 아이가 긴장했다. 또 기준을 좋아하는 선생님도 계셨다. 체육선생님이다. 한 아이를 기준이라고 손들게 하면 그 아이 중심으로 줄을 세웠다. 눈이 마주치는 아이를 불러놓고 몇 번이지? 하고 묻고 그 번호에 곱빼기를 부르는 식으로 오름차순 정렬을 했다. 내림차순은 없었다. 번호가 증식하는 것을 선호됐다. 그럴 때는 선생님과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고 고개를 숙였다.


  이렇듯 선생님들의 숫자 사용법은 다 다르다. 날짜를 학생 번호와 연계해서 써먹는 분은 날짜를 항상 잊지 않기 위해 그랬을 것이다. 자기만의 각인시키는 방법이다. 학생 때는 매일매일이 날짜와의 전쟁이었다. 요일별 챙겨야 하는 과목 책과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특징까지 신경 쓰지 않으면 하루가 기분이 안 좋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과제물도 더 압박을 주는 요인이다. 늘 시험을 염두에 두고 D-DAY를 기억나게 하는 칠판에 날짜, 시간 안에 풀어야 하는 문항수대 분까지, 시계 안에 시침과 분침처럼 타이트하게 숫의 노예가 되었다.


   는 건망증이 있다. 그것도 심리적으로 불안할 때 더 심해진다. 목표를 잃어버리고 의욕이 없을 때는 더 그랬다. 요즘 치매가 잘 걸린다는데, 나 도치매가 오면 어떻게 하지? 참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데 싸우지 않고 사는 게 꼭 좋은 건만도 아니다. 그렇다고 누군가를 설득하고 고치기에 내 에너지는 바닥이다. 매스컴에서 전문가들이 말하는 치매에 증조는 본질을 잊어버리는 거라고 한다. 자식을 보고 누군지 알 수 없어서 누구세요? 하는 노인들은  TV에 당골 캐릭터다. 거울을 보지 않고 머리를 빗지 않는 것도 자기에게 조차 관심이 없어지는 게 치매의 전조다.


  에서 겉으로 별다를 게 없어 보이는 노인을 만났다. 그런데 갑자기 앞만 보고 걷던 노인이 여기가 어디냐고 했다. 머리는 백발이었지만 호리호리한 체형에 꼿꼿한 등이 잘 늙은 세월을 말해주었다. 요즘 삐끼를 노인을 쓴다는데, 연극하나 했다. 나 좀 집에 데려다줘요 1 믿을 수 없었다. 건강해 보이는 남자 노인 의 말을 믿을 수는 없었다. 나는 시간이 없었고 내 앞에 걷는 여자분이 노인과 말을 하기에 이상한 일도 다 있네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치매는 알고 보니 갑자기 방전는 휴대폰처럼 모든 이 날아갈 수 있는 병이었다. 나도 저렇게 될 수가 있다는 생각에 스트레스받지 않기로 했다. 화나는 일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평온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휴대폰이 일반화되고부터 전화번호를 외우려고 노력한 적이 없다. 시계 대신 휴대폰을 열었다. 중요한 정보는 휴대폰이 메모지가 됐다. 나 대신 기억해 주니 긴장하지 않아서 편했다. 그런데 휴대폰이 오래되니 방전되고 내 정보는 사라졌다. 집 현관 비번을 까먹어서 머리보다 습관적인 손동작이 더 잘 알고 나를 믿을 수 없어 자신감이 바닥났다. 숫자 외우는 게 쉽지 않아 은행계좌를 통장을 봐야 하고 노력하지 않고 절실하지 않으면 뇌는 게으름을 피운다. 쥐어짜야 겨우 가동되는 뇌는 그동안 내가 너무 안일하게 산 증거이다.


  잘 알던 배우의 이름을 까먹어서 성씨를 달리 말하면 남편은 날 놀린다. 그건 건망증인데 배우 이름 잊어버렸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다. 전에 기분 나쁘게 군 사람이 있었다. 뇌는 그 상처를 감추느라 이름까지 터러 버렸다. 내 기억에 그 기분 나쁘게 한 사람의 이름이 지워지자 아무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 바로 이거였어! 내가 30일의 하루하루를 잊고 싶었던 건 아닐까? 날짜가 중요하지 않는 건 나를 기분 나쁘게 한 기억이 매해 쌓이고 겹쳐서 년도수는 바뀌어도 날짜는 똑같잖아.


   요일을 기억하면서 날짜는 날아간 것은 필요하지 않아서이다. 요일에는 의미를 부여한 노래가 있다. 월요일은 월급 타서 한잔 하고 화요일은 화가 나서 한잔 하고 수요일은 수금해서 한잔 하고 목욕일은 목 마려워서 한잔 하고 금요일은 불금이라 한잔하고 그런 식으로 이제 보니 노래가 있었다. 그리고 국경일, 명절, 큰 사건이 일어 난 날짜 등 테마가 있고 드라마가 있는 날짜들이다.


  이름이나 날짜는 추상적인 이다. 서로 약속해서 그렇게 하자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친하지 않으면 낯선 사람을 기억할 때, 뚱뚱한가, 날씬한가, 통통한가로 체형을 구분해서 기억한다. 이름이 낯설기 때문에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얼굴 어디에 점이 있는지로 특징지어 기억하려 한다. 안경을 썼는지, 그 안경 색이 어땠는지가 또 기억의 근거가 된다. 피부색이 흰지, 검은지, 누런지, 잡티가 있는지, 다크서클이 있는지 등 우리는 어떤 사물을 구별할 때 특별한 무늬나 색상, 크기로 구분해서 기억한다. 당근은 그 단어에 주황색 무가 연상된다. 맛을 봤었던 기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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