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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possible Feb 24. 2016

곶감은 싫어

떫은 그녀의 사랑

추석선물로 들어온 감 한 박스.

하나를 깎아 맛을 본 엄마는 그녀에게 말했다.

곶감을 만들어야겠다고.


뜬금없는 엄마의 말에 영문을 모르는 그녀.

 "왜 죄 없는 감들을 다 곶감으로 만들어?"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떫.어.서.

태어나서 감을 한두 번 먹어본 것도 아니고, 그녀도 감이 떫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감을 먹다 보면 어떤 건 달고 어떤 건 텁텁하고 떫디떫다.

하지만 사과도 배도 귤도 딸기도 다 각자의 맛을 가지고 있듯 

감이란 건 원래 어느 정도의 떫음을 고유 성격으로 가지고 있으니까.

나이가 들면 단걸 더 찾게 된다던데, 아직 그녀 입에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녀의 엄마는 자못 과학적인 설명까지 곁들였다. 

"아침프로에서 봤는데 말이야.

감에는 디오스프린이라는 타닌 성분이 들어있는데, 

그게 바로 감을 떫게 만드는 정체라더라.

그런데 감이 익어갈수록 그 성분이 변해간대. 

설익어서 떫었던 감이 잘 익으면 달아지는 거지."


 "그럼 며칠 놔두면 되잖아, 굳이 곶감으로 만들 필요가 있어?"


"먹어보면 알아, 얘네는 며칠 지난다고 해서 달아질 애들이 아니야.  

가만 보지만 말고 부엌에서 칼 좀 꺼내와. 껍질 다듬게."



그녀의 엄마는 선물 받은 감들을 모조리 홀딱 벗기기 시작했다.

껍질이 없어진 감들은 옷걸이에 줄줄이 매달려 베란다에서 한 달 반가량 말려질 것이다. 

60% 이상의 수분이 날아가고 부피는 쪼그라들면서 당도는 4배까지 증가한다. 

그렇게 달짝지근한 결정체만 남아 곶감이 된다. 초기의 떫은맛은 온 데 간데 없이.


반질반질 윤이 나는 주황빛 감이 쪼글쪼글해지는 것도 모자라 

어둡고 칙칙한 진갈색으로 바뀐다는 게 어쩐지 조금 슬퍼졌던 것도 잠시, 

문득 그녀는 곶감이 싫어졌다. 그리고 엄마 또한 밉게만 느껴졌다. 


떫었던 적이 있기라도 했냐는 듯이 몰라보게 달아질 곶감.

달지 않은 감을 보면 언제고 껍질을 깎아 곶감을 만들 엄마. 


달지 않으면 다 곶감이 돼야 하는 걸까.

조금 쓰고 조금 덜 단 사랑은 하면 안 되는 걸까.


그녀의 사랑은 달지만 않다. 서로가 쓴맛을 나눠가지면 조금은 덜 쓸 텐데, 

그녀는 달지도 않은 감을 혼자서만 먹고 있다. 

그래도 아무것도 먹지 않을 때보다 떫은 감이라도 먹는 지금이 좋으니까.

'쓰면 얼마나 쓰겠어, 못 먹을 때까지 가볼 거야.' 그렇게 호기롭게 덤벼들었다.


입을 옷이 없다며 쇼핑을 나섰다 선배에게 어울릴 넥타이를 발견하고 살까 말까.

후배가 이 정도는 사줄 수 있잖아! 하면서도 여자친구가 알면 기분 나빠할까? 

다시 제자리에 내려놓았던. 


선배의 야근이 확정된 어느 날, 시침이 6에 놓이기가 바쁘게 

쌩하고 달려가 당 충전용 커피와 도넛을 사오고도 

"도시락 사 온다고? 알았어. 아무것도 안 먹고 기다리고 있을게. 조심히와." 

들려오는 통화소리에 왔던 길로 발걸음을 돌렸던. 


선배의 SNS에 '경리단길에서 행복한 우리'라고 올라온 사진을 보며, 

회식자리에서 얼큰하게 취해 다 같이 찍은 사진 속 선배와 자신을 떠올리던. 


참고하면 좋을 거 같다며 가끔씩 선배가 건넨 포스트잇, 

서랍을 열 때마다 보이도록 한쪽 모서리에 고이 보관해 뒀었는데, 

그가 그녀에게 줄 수 있는 건 딱 그것뿐이겠구나 서글퍼졌던.


선배가 쓴맛을 보면 나는 달까. 그래서 힘들어하는 선배를 보는 건 내가 더 힘든데. 

쓰린 속 달래자고 고백이라도 했다간 하나뿐인 다정한 사수마저 잃게 될 텐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잘 웃는 선배가 나를 보며 웃을 수 있고, 나도 선배를 향해 마음껏 웃어도 되는 시간.

그냥 이 시간을 늘릴 수 있을 만큼 늘리기로 돌아온다.


선배의 사랑이 달아질수록 그녀의 사랑은 떫어져 간다. 


사랑을 혼자 하는 그녀가 곶감을 먹을 수 없는 이야기. 

떫은 감을 맛있게 먹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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