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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possible Feb 27. 2016

나 좀 들여보내 줘

집에서 나오지 않는 너에게

얼마 전부터 네가 하는 말은 세 글자.

'어디야? 뭐하고 있어? 걱정돼. 보고 싶어.'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다 똑같았어.

집이야...


헤어지자고 해도 너는 꼭 그렇게 말할 거 같아.

그동안 내 눈에 비친 네 모습, 내 귀에 들려준 네 모습이라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답도 아니지.

어쩌면 나한테 그 말을 들으려고,

그럼 준비된 듯 "집이야."하고 떠나려고, 

계속 그러는 거니.




"저는 잠수를 좀 잘 타는 편이에요. 힘들어지면 아무한테도 연락을 안 해요."

첫 만남에서부터 음산한 기운을 풍기는 여자.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고백을, 그것도 흠만 집어서 들추는 여자.

별로 매력 없었어.


"저는 전화하는 게 취미예요. 심심하면 아무한테나 전화를 하죠."

어떻게 나올까 궁금해서 너랑 대척점에 서보기로 했지.

어디까지 얼마나 못난 자랑을 할까 보고 싶어서.


"고집이 세요. 제가 옳다고 생각하면 남에 말을 잘 안 들어요."

핫초코가 든 머그잔을 두 손으로 꼭 잡고 조곤조곤.

분명 네가 말하는 내용은 어둡고 거친데, 얘기하는 너는 너무 온순해 보이니까. 

이상하게 관찰해보고 싶은 욕구가 생기더라.





"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러는 거예요?"

그건 아니라고 하니까

"그럼 마음에 들어요?"

그것도 아니라고 하니까


밥이나 몇 번 먹자고 너를 만나면서,

묘하게 끌리고 설레는 나를 느끼니까 확신이 들었어.

널 제대로 알아야겠다고.


밥 먹고 영화 보고 드라이브하고 남들 하는 평범한 데이트,

우리도 하면서 예쁜 시간 쌓았잖아.

근데 왜 나는 처음처럼 알고 싶은 상태에만 머물러 있는 걸까.

점점 너를 더 몰라가고 있는 거 같아. 영원히 너를 모를까 봐 겁도 나.


요즘 힘든 거 안다고 너를 토닥이는 나에게

엊그제 너는 불같이 화를 내며 그랬지.

네가 뭘 아냐고. 어차피 혼자 해결할 문제라고.


그래, 잘 몰라. 네가 왜 힘든지, 얼마나 힘든지 나는 몰라.

맞아. 결국은 너만 풀 수 있어. 네가 풀어야 하는 게 맞아.

나도 네가 혼자서 멋지게 털고 일어나면 좋겠어.


근데 말이야. 너네 집 밖에 서 있는 사람,

꽤 능력 있는 사람이니까 이용 좀 해.

모르쇠 일꾼이라서 아무런 이유도 묻지 않겠대.


너 그냥 민달팽이 해라.

니 껍질은 내가 메고 가게.

가볍게 미끄러져 다녀보면 어때.

느릿느릿 아주 천천히라도 좋으니까

나한테 오는 방향만 잊지 말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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