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나오지 않는 너에게
얼마 전부터 네가 하는 말은 세 글자.
'어디야? 뭐하고 있어? 걱정돼. 보고 싶어.'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다 똑같았어.
집이야...
헤어지자고 해도 너는 꼭 그렇게 말할 거 같아.
그동안 내 눈에 비친 네 모습, 내 귀에 들려준 네 모습이라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답도 아니지.
어쩌면 나한테 그 말을 들으려고,
그럼 준비된 듯 "집이야."하고 떠나려고,
계속 그러는 거니.
"저는 잠수를 좀 잘 타는 편이에요. 힘들어지면 아무한테도 연락을 안 해요."
첫 만남에서부터 음산한 기운을 풍기는 여자.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고백을, 그것도 흠만 집어서 들추는 여자.
별로 매력 없었어.
"저는 전화하는 게 취미예요. 심심하면 아무한테나 전화를 하죠."
어떻게 나올까 궁금해서 너랑 대척점에 서보기로 했지.
어디까지 얼마나 못난 자랑을 할까 보고 싶어서.
"고집이 세요. 제가 옳다고 생각하면 남에 말을 잘 안 들어요."
핫초코가 든 머그잔을 두 손으로 꼭 잡고 조곤조곤.
분명 네가 말하는 내용은 어둡고 거친데, 얘기하는 너는 너무 온순해 보이니까.
이상하게 관찰해보고 싶은 욕구가 생기더라.
"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러는 거예요?"
그건 아니라고 하니까
"그럼 마음에 들어요?"
그것도 아니라고 하니까
밥이나 몇 번 먹자고 너를 만나면서,
묘하게 끌리고 설레는 나를 느끼니까 확신이 들었어.
널 제대로 알아야겠다고.
밥 먹고 영화 보고 드라이브하고 남들 하는 평범한 데이트,
우리도 하면서 예쁜 시간 쌓았잖아.
근데 왜 나는 처음처럼 알고 싶은 상태에만 머물러 있는 걸까.
점점 너를 더 몰라가고 있는 거 같아. 영원히 너를 모를까 봐 겁도 나.
요즘 힘든 거 안다고 너를 토닥이는 나에게
엊그제 너는 불같이 화를 내며 그랬지.
네가 뭘 아냐고. 어차피 혼자 해결할 문제라고.
그래, 잘 몰라. 네가 왜 힘든지, 얼마나 힘든지 나는 몰라.
맞아. 결국은 너만 풀 수 있어. 네가 풀어야 하는 게 맞아.
나도 네가 혼자서 멋지게 털고 일어나면 좋겠어.
근데 말이야. 너네 집 밖에 서 있는 사람,
꽤 능력 있는 사람이니까 이용 좀 해.
모르쇠 일꾼이라서 아무런 이유도 묻지 않겠대.
너 그냥 민달팽이 해라.
니 껍질은 내가 메고 가게.
가볍게 미끄러져 다녀보면 어때.
느릿느릿 아주 천천히라도 좋으니까
나한테 오는 방향만 잊지 말아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