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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possible Aug 14. 2016

손이 가는 가방, 손이 가는 사람

편하단 건 언제나 최선이란 것

옷장을 여는데, 주렁주렁 걸려있는 옷들이 영 거슬렸다. 빵빵한 패딩점퍼와 무거운 모직코트 군락이 크지도 않은 내 옷장 생태계를 다 잡아먹고 있었다. '정리해서 박스에 넣어야지, 다음에 넣어야지' 하다가 결국엔 후덥지근한 공기가 밀려올 때까지 그냥 둔 것이다. 부피 큰 옷들을 해치우고 나니, 바닥에 포개 놓은 얇은 옷가지들이 보였고, 그 위에 사뿐히 앉아있는 검은 더스트백(dust bag)이 눈에 들어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스크래치를 막고, 바람이 잘 통할 수 있도록 얇은 천을 입고 있는, 더스트백 속의 진짜 백(bag) 말이다.


이런, 애물단지. 보고 있자니 튀어나온 진심. 하지만 보물이던 시기도 있었는데. 

몇 년 전 내 생일이 다가올 때였다.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 나도 한 번은 그걸 해보자고, 내가 나한테 주는 거라면 '뭔가 특별한 것'이어야 한다고. 지금 내게 없는 것, 한 번도 갖지 못했던 것을 떠올려 보다가 가방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들의 대사가 '시계는 좋은 걸 차야지'라면, '가방은 좋은 걸 들어야지'는 여자들의 대사 같은 거니까. 누구나 알만한 브랜드의 명품은 아닐지라도 내 기준에선 쉽게 허락할 수 없는 가격의 가방을 나는 나에게 주고 싶었다.       

   



원하는 디자인과 적당한 브랜드를 고르고, 최대한 싸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다닌 끝에 구매대행을 통해서 나의 생일선물은 비행기를 타고 3주 만에 내 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이트에서 본 것보다 더 괜찮은 실물에 들어간 시간과 돈을 생각하니 흐뭇함과 동시에 남다른 애착이 생겼는데, 며칠 뒤 아침이 되자 석연치 못한 감정을 느꼈다. 늘 여유라곤 찾아볼 수 없는 출근길 몇 분 전 가방을 챙기면서, 나는 평소처럼 '빠르고 거침없이' 손을 움직이지 않았으니까. 소지품을 툭툭 던져 넣고 뛰어나가기 바쁜 상황에 물건 하나하나가 제동을 걸었다. 새 가방 안쪽을 감싼 연분홍 안감이 자꾸만 거슬린 까닭이었다.


볼펜을 던져 넣다가 혹시 잉크가 묻어나진 않을까 뚜껑이 있는 펜을 찾고, 틴트를 넣으려다가 새는 건 아닐까 염려돼서 가지고 다니지 않던 파우치를 찾아 그 안에 1차로 봉하고 나서야 비로소 가방에 넣는 식이었으니, 하루 시작부터 엄한 데다 신경을 뺏겨 영 꺼림칙한 기분이었다. 그런 기분은 약속이나 한 듯 저녁에도 찾아왔다. 필요한 책이 있어 들른 서점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하고, 천천히 몇 페이지를 읽어보려 할 참이었다. 자연스럽게 한쪽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으려다가 슬며시 아래로 향한 시선은 방향만 고쳐 메고 무겁게 책을 보도록 만들었다. 행여나 때가 탈까 봐서, 털썩털썩 잘도 내려놓던 가방은 물가에 내놓지 못하는 어린애가 된 것이다. 


처음 들었던 날의 잔상 때문인지, 다음번 가방을 들 때에는 순순히 불편해지는 지점을 받아들였던 거 같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는 또 호되게 당해버렸다. 한가한 주말 벼르고 별러 가방을 들고 외출했다가, 갑자기 내린 소나기 때문에 건물 안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을 때였다. 하염없이 기다릴 수만은 없어서 웬만큼 젓는 건 감수할 생각이었는데, 역시나 문제가 되는 건 비에 젓는 몸이 아니라 가방이었다. 돌연 명품과 짝퉁을 구분하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며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했던 말이 떠올랐다. 비 오는 날에 가방을 메고 가는 사람은 모조품, 가방을 안고 가는 사람은 진품을 드는 거란다. 허허실실 넘겼던 말은 사실로 돌아왔다. 가방을 머리 위로 올려 얼굴을 가리기는커녕, 오히려 품 안에 꼭 안고 빠른 걸음을 옮기던 나였으니까. 가방을 드는 건지 상전을 모시는 건지, 나조차 우습게 느껴졌다. 


"음식에 소금을 집어넣으면 간이 맞아 맛있게 먹을 수 있지만,
소금에 음식을 넣으면 짜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소!
삶 속에 욕망을 넣어야지, 
욕망 속에 삶을 집어넣으면 안 되는 법이오!"


인도를 여행했던 작가는 그의 산문집에서 한 식당에서 겪었던 일화를 적었다.

음식이 짜다고 지적하자 괴짜 포스를 풍기는 주인은 미안해하거나 난처해하지도 않고, 도리어 그를 꾸짖으며 얘기했다고 한다. 비싸지만 무능력한 가방에게 나는 한 수 가르침을 얻는다. 가방을 들어야지, 욕망을 들어선 안 되는 거라고. 그러게 가방을 들었어야지!!


"이게 예뻐? 막 진짜 예뻐서, 마음에 들어서 산거야?" 어느 날엔가 엄마가 입고 있는 바지를 보고 채근하듯 물었던 기억이 있다. 정말이지 이해가 안됐으니까. 가족으로서 구성원의 안목을 챙겨야 할 책임감도 어느 정도 들어서 그랬더니 다행히도 엄마는 그건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이어진 대답은 "편하니까 샀지. 편한 게 최고니까." 내가 싫어하는 말이었다. 익히 들어온 말이지만 그래도 이해하고 싶지 않은 말. 편한 게 최고라는 말.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만 울컥해서 목소리가 커졌던 거 같다. 어째서 편한 게 최고냐고. 고무줄 바지가 최고라고, 늘 그것만 입고 다니면 고무줄 바지만 입는 사람이 되는 건데. 남들이 그렇게 봐도 좋다는 거냐고. 





거울을 보며 가방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는다. 그리곤 원래 있던 더스트백 속으로 쓱 집어넣고 만다. 그러다

문득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려놓게 되는 건 가방만이 아닐 거란 생각. 살면서 맺게 되는 모든 것들과의 인연 또한 그렇지 않을까. 어딜 가든 지니게 되는 가방, 어딜 가도 만나게 되는 사람들. 첫눈에 시선을 잡아 끄는 건 그들을 둘러싼 화려하고 멋진 외관이지만 겪어보면 알게 된다. 내 것인지 내 것이 될 수 없는지. 신기하게도 내가 기대하고 품고 있었던 이상적인 모습과 거리가 있는 존재들이 늘 나와 함께 해준다. (나부터 그들의 예쁘고 똑똑한 벗이 돼주지 못하듯.)


어떤 옷을 입어도 어느 자리에 가도 고민 없이 들게 되는 가방이 하나 있다. 낡은 티가 제법 나는 이 가방은 칙칙한 검은색이라 긁히거나 얼룩이 생길 걱정 없이 참 편하게 들고 다닌다. 저렴한 가격이란 점도 쉽게 손이 가는 이유. 이렇듯 나는 이 가방이 만만했고 조금은 얕잡아 봤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편하다'는 가치마저 오해하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편하다는 건 하찮게 보아도 괜찮고, 쉽게 대해도 좋다는 게 아니다. 편하단 것은 언제나 최선이란 뜻 아닐까.  


나의 부족하고 못난 구석을 펼쳐 보일 수 있고, 스스럼없이 그것들을 인정해주는 사람들을 만날 때, 나는 초조하거나 불안하지 않다. 나의 밑바닥이 드러나 그들이 실망하진 않을까 하는 생각 따위도 하지 않는다. 나는 그들이, 그들에게 나는 '편한' 존재이니까. 흠을 보일 용기는 몸과 마음이 좋은 상태인 편안할 때 나오는 거니까, 편한 사이라는 건 가장 약해진 순간에 나를 잡아줄 첫 번째 손일 것이다. 나는 내 사람들과 되고 싶다. 

오래, 자주, 서로에게 손이 가는 사람이. 서로의 홈을 알아보고 끌리듯 맞물리는 퍼즐 조각처럼.



> 류시화 지음, 지구별 여행자,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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