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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possible May 25. 2016

짝사랑이 많은 이유

누군가 아파야 누군가는 아물 수 있는 걸까

"어떤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하는 마음을 사랑이라고 하잖아."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면서 네가 그랬다.


"응. 그게 왜?"

약간은 몽롱한 기분이었던 나는 시원한 밤공기를 맞으면서 

그저 고분고분하게 네 말에 반응했었어.


"그럼 반대말은 증오나 미움일 테고.

근데 비슷한 말, 동의어는 없어.

사모한다거나 그리워한다거나 연모한다거나.

이런 말도 누군가에게 보내는 애틋함을 표현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다르잖아. 

미묘하게도 아니고 대놓고 달라.

그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르기엔 부족한 게 있다기보다 본래 다른 성격의 것들이지."


"음... 그렇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나타나는 가로수에 정신이 팔려서 건성으로 대답했던 거 같아.

어느새 꽃은 지고 짙은 푸름이 매달려 있어서 신기했거든.



"근데 또 한쪽만 상대편을 사랑하는 짝사랑은 말이야.

동의어가 굉장히 많아요.

외짝사랑, 척애, 편련, 외쪽사랑.

얘네들이 다 짝사랑의 표기만 다른 말들이야."

내 한쪽 어깨에 팔을 걸치면서 너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두 사람이 하는 사랑보다 

한 사람이 하는 짝사랑이 세상에는 더 많다는 거야.

사랑한다고 '사랑해'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보다

그럴 수 없는 사람이 더 많으니까. 그래서 짝사랑은 그렇게 다른 이름이 많은 거라고.

힘내. 기죽지도 말고. 너만 혼자 하는 거 아니니까.

벌써 든든하지? 알게 모르게 너 같은 사람이 수두룩 빽빽하다고 생각하니까 말야."


차갑게 들이켰던 술이 아직 내려가지 못하고 

가슴 언저리에 머물러있었는데, 왠지 네가 해주는 말을 들으니까

따뜻하게 풀려서 내려가는 거 같았어. 


"이제 혼자 갈 수 있지? 나는 버스 타러 간다~"

마지막으로 편의점에서 캔맥주 어떠냐고 하니까

손을 흔들면서 너는 이미 뒷모습으로 사라지고 있었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또다시 그 사람에게 고백을 했어.

열 번이 되려면 아직 한참 멀었으니까, 늘 나한테 찍어볼 용기를 주는 네가 있어서

나는 뻔뻔한 얼굴을 하고 찾아갈 수 있었던가봐.

아니라고 하면 한잔하자고 너를 불러낼 참이었는데 

오늘 모하냐고 문자도 보내 놓았는데, 그날 나는 너를 만나지 않았어. 

그 사람 결국 나를 받아 줬으니까.


그 뒤로 좀처럼 연락이 없다가 몇 주 만에 만났는데

오랜만에 보는 네 얼굴은 꺼칠했고, 다시 회사로 들어가야 한다면서

너는 커피를 반도 마시지 못한 채 떠났어.


짝사랑 끝낸 거 축하한다고.

나한테도 축하할 일이 있는데, 내 짝사랑도 끝이 났다고.

당분간은 바쁠 거 같아서 좀 지나면 거하게 축하하자고.


웃으면서 말하는데 깊고 검은 눈은 계속 흔들렸어. 

그 눈을 똑바로 쳐다보다가는 내가 울어버릴 거 같아서

오히려 도망치듯 떠난 네가 고맙기도 했어. 


나는 물어볼 수가 없었어.

네가 짝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대체 왜 나에게 말하지 않았는지.


나한테 해줬던 것처럼

어깨를 두드리며 괜찮다고 위로할 수가 없었어.

네가 외사랑을 하게 둘 수는 없으니까.

좋아하는 걸 알면서도 받아주지 않아서 한쪽만 상대편을 사랑하는 일.

그걸 외사랑이라고 한대.


짝사랑보다 더 가혹한 말이 있다는 거 넌 알고 있었니.

한 사람만 사랑을 하는 것도 아픈 건데

그 사실을 들키고도 계속 혼자서 사랑을 해나가는 건 더 아픈 거잖아. 


나는 모를 거야.

내가 사랑을 받았다는 것도

네가 어떤 마음으로 내 사랑을 응원했을지도 

꺼내본 적 없이 끝나는 너의 사랑도



생각해보면 너는 늘 혼자였다.

나는 너라도 있었지만

너 때문에 덜 아팠을 거지만

너는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혼자서 고스란히 아팠던 거였다.


끝까지 모를거니까

조금만 아파하고 돌아와.

네가 아프지 않아야 난 네 옆에 있을 수 있으니까. 


두 사람이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거, 

어쩌면 많은 이들의 짝사랑 속에서 가능한 것일지 모르겠다.

누군가 아파야 누군가는 아물 수 있는.

질량 보존의 법칙이 내 사랑을 지킨 거 같아 마음이 아린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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