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야 알게 되는 것들
내 친구 중에 말이야.
쇼핑의 여왕이 있거든.
집이 잘 산다거나 사치스러운 애는 절대 아니야.
본인 말로는 단지 옷을 좋아할 뿐이라는데
내가 보기엔 소비하는 행위를 즐기는 게 틀림없어.
한 번은 그 친구 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는데
예상한 것보다는 옷이 적더라고.
내가 봤던 옷들이 다 걸려있으려면 개는 잘 데가 없어야 하거든.
이상하다 싶어서 어디 숨겨 뒀냐고 그러니까
태연한 표정으로 이게 다라고 하는 거야. 보이는 게 전부라고.
알고 보니 친구는 샀던 만큼 팔기도 했대.
구입했다가 마음에 안 들면 팔고, 그렇게 생긴 돈으로 또 누군가 파는 걸 사기도 하고.
언젠가는 서로 만나서 직거래를 하는데
친구는 처음에 택배비가 안 드니까 오천 원만 깎아달라고 부탁했대나봐.
그런데 물건 주인은 많이 아끼는 거라서 안된다고 거절하더래.
진짜 아끼는 거라면 팔았겠냐고 따져 물으니까, 그 사람은 당황했는지
그럼 삼천 원만 덜 받겠다고 했다는 거야.
그냥 싫다고, 원래 비싼 거라고 했으면 화가 안 났을 거 같은데
왜 아끼는 거라고 마음을 들먹이냐고.
나는 친구의 그 말이 오랫동안 잊혀지지가 않았어.
우연히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알게 됐는데 저장 증후군이라는 게 있대.
뇌의 전두엽은 의사결정이나 행동계획을 관장하는 역할을 하는데
그 부위가 제기능을 하지 못하면 필요한 물건인지, 버려야 할 물건인지를 판단하는 게 어려워 진대.
쓰레기 더미 같은 집에서 사는 건 게으른 게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병일 수 있다는 거지.
저장 증후군으로 고생했던 사람이 방송의 도움으로 정리하는 법을 배우면서 그러는 거야.
버리다 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게 뭔지 알게 될 거 같다고.
티끌마저 병으로 만드는 세상 같아서 불쾌한 마음으로 지켜보다가
나는 콧등이 시큰해지는 걸 느꼈어.
싫증이 났거나 쓸모가 없어졌다거나 너무 많다거나.
무언가 버리는 이유는 보통 이 세 가지 안에서 해결되는데
좋아하는 걸 알고 싶어서 버린다는 건 일반적인 상식과는 반대잖아.
버릴 생각보다는 어떻게든 더 갖는 걸 고민하잖아.
"너는 왜 사랑한다고 안 해?"
네 팔짱을 끼고 걷다가 나는 갑자기 궁금해졌는데
"쑥스럽잖아, 그걸 꼭 말로 해야 아냐. "
사람들 많은 거리니까 원래 넌 그런 말 잘 못하니까
조금 삐진 척하며 그냥 넘어갔던 거 같아.
좋아한다곤 말해도 사랑한다고는 안 했던 건
부끄러워서가 아니었구나. 넌 진짜 그 말을 할 수 없었던 거였어.
사랑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었으니까.
날 옆에 둔 이유는
사랑하는 걸 알고 싶어서.
날 버린 이유도
사랑하는 걸 알고 싶어서.
버려진 사람보다
버리는 사람이 어쩌면 더 불행한 건지도 모르겠어.
진짜 좋아하는 게 아직 없는 사람일 테니까.
날 버리고 네가 알고 싶었던 거, 찾고 싶었던 사람
이제는 찾았니. 사랑하고 싶어서 버리는 너는
참 힘든 사랑을 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