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말했던가요.
나는 9월 10일 생인데요.
원래는 팔월의 끝자락에 태어났어야 했대요.
출산예정일이 일주일도 넘게 초과되는 바람에 우리 가족들은 마음고생이 많았었다 그래요.
지금이야 내 머리가 커서 그랬다고 농담처럼 얘기하곤 하지만
당시에는 내가 잘못되는 건 아닌지, 엄마가 위험해지는 건 아닌지
다들 마음을 졸였다 그러더라고요.
말도 늦게 하고 걸음마도 늦게 떼면, 엄마는 콱 나쁜 생각도 해버릴 뻔했다는데
다행히도 나는 제때에 맘마를 외치고 제때에 걷기 시작했대요.
그래서 그 후로는 아무런 걱정 없이 나를 구박할 수 있었대요.
구구단을 못 외우고, 알파벳을 못 외우는 건
뱃속에서 물려준 게 아니니까, 내 암기력이 약한 거니까.
잔소리를 하면서도 엄마는 속으로 기뻤대요.
그런 우리 집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나는 크게 어긋나는 법 없이 십 대를 보낸 거 같아요.
그런데 고2 때부터인가, 나는 슬픈 진실 하나를 알게 됐어요.
노력하면 모든 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죽어라 해도 안 되는 게 있더라고요.
그래서 부랴부랴 수학 과외를 하게 됐는데
과외 선생님이 했던 말 중에서 아직도 기억하는 말이 있어요.
일곱 문제는 버리자고. 30문제를 다 푸는 건 어차피 시간이 모자란 일이니까
확실하게 풀 수 있는 23문제를 맞혀 보자고.
그렇게 생각하니까 한결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손에 잔뜩 힘이 들어가서 자꾸만 샤프심이 부러진다거나
극도로 긴장해서 답안지를 밀려 쓰는 일 같은 건 없어져 버렸어요.
놓아버리면 이렇게 편하구나
그때 처음 알게 된 거 같아요.
못할게 뻔하면 남들에 비해 속도가 느릴게 분명하면
나는 뛰어들지 않았어요.
누구는 도전정신이 없다고 누구는 뭐가 그렇게 두렵냐고
나를 비난했지만, 내가 잘하는 걸 고르는 게 나한테는 중요했어요.
이제 그만 나를 좋아할 거라고.
노란 낙엽이 깔린 그 길에서 당신은 나를 홀로 세워두고 떠났잖아요.
꼼짝없이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가 나는 이제 할 말을 정한 거 같아요.
나는 참 느린 사람이라서
당신이 떠난 뒤 내 마음을 알게 됐다고.
멀어져간 당신을 잡기엔 많이 늦어버렸지만
못하겠다고 버렸던 수학 문제처럼 보고도 외면하진 않을 거라고.
벚꽃이 저버린 나무에서부터
다시 가을이 올 때까지 부지런히 당신에게로 걸어갈 거예요.
나는 참 느리지만, 느린 게 싫지만, 이번엔 당신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