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im possible Jan 15. 2021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들

아프다면 이제 놓아도 괜찮다

카카오톡을 지웠다. 새해니까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서 라는 말과 함께 '저의 이름이 상태없음으로 바껴도 놀라지 마세요'라는 마지막 멘트를 복사, 붙여넣기 한 후 나는 카카톡을 탈퇴했다. 새해니까는 변명. 늘 지우고 싶은 마음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으나 적당한 명분이 필요했고 이보다 더 좋은 때는 없다고 생각했다. 새해복 많이 받으란 마음에도 없는 으례적인 말들을 주고받는게 매년 석연치 않았으며, 일년에 한두번 덕담을 가장한 인사가 과연 상대에게도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휴대폰 바탕화면에서 노란 이모티콘이 사라지자 속이 다 시원했다. 할일이 없어서 휴대폰을 집어 들지도 않았고, 빨갛게 떠있는 숫자가 나를 재촉하지도 않았다. 어플하나 지웠을 뿐인데, 이 신선한 해방감과 행복감은 뭐지. 이렇게 마음이 가벼워 지는걸 왜 진작 하지 못했을까. 어떤 망설임들이 나를 계속 주저하게 만들었을까. 





전화나 문자보다 편리한 즉각적인 메시지 송수신, 사진 영상 이외의 다양한 파일첨부, 수신자의 읽음여부도 확인가능한 디테일한 기능까지. 기능적인 만족감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친목도모의 역할도 크게 제공했다. 번호를 저장한 모든 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 도 있고, 알만한 사람들을 추천까지 해줬으니 관계를 두배 세배는 확장시켜 줬다. 또한 카카오톡 프로필과 상태메시지로 한사람의 현재 상황이나 기분까지 파악하게 하면서 개인맞춤으로 적당한 멘트를 날릴 수 있도록까지 도와줬다.


이렇듯 일상생활을 인간관계를 잘 굴러가게 만들어 준 건 사실이다. 하지만 누구나 사용하기에 나만 안할 수가 없도록 만들었다. 주변사람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카카오톡을 지우고 싶다고. 왜 피곤하게 사냐며 일일히 문자보내는 고생을 하고 싶은 이유를 묻는 친구도 있었고,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 신석기인이 되려면 너만 그래야지 왜 너랑 연락하는 사람들까지 불편함을 감수해야 되는거냐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내가 불편해 지는건 괜찮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건 문제가 된다. 그래서 지울 수가 없었고 그래서 나가지 못한 대화창이 쌓여만 갔다.


이번 해에는 뭘 해야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한 해를 맞이할까. 목표를 정하고 다짐을 하기보다 시작점에서 나는 왜 끝에 사로잡혀 버린건지 모르겠다. 잘 끝내지 못한 것들이 많아서인지, 이제는 넘어갈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한 건지. 안입는 옷과 쓰지 않는 물건들은 잘도 정리하면서 관계는 그렇지가 못했다. 이사를 하면서 구입했던 종이박스들을 한쪽 구석 벽면에 세워둔지 몇개월이 흘렀을까. 그사이 겨울이 왔고 조금의 이동도 없이 그자리에 방치해뒀던 박스뒤에는 곰팡이가 생겨버렸다. 일교차는 커지고 추운 날씨에 환기를 자주 못해주니까 푸른 반점들이 피어난 것이다. 자취를 하며, 아니 살면서 처음 겪는 광경이었다.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가장 먼저 한 것은 검색이었다. 




방속을 떠돌던 공기층의 습기가 날아가지 못하고 이슬로 맺힌다. 벽이 물을 토해내는 거다. 어둡고 축축한 상태가 지속될 수록 마르지 않는 벽에는 곰팡이가 자리잡는다. 이 곰팡이는 초기에 잡지 않으면 빠른속도로 번져나간다. 찾으면 찾을 수록 그는 무서운 존재였다. 공기중의 포자형태로 번식해서 잘못하면 호흡기질환이나 각종 질병을 유발시킬 수도 있단다. 벽에 조금 생겨난 무늬들이 내건강을 위협한다니. 락스와 식초, 베이킹소다. 곰팡이제거에 좋다는 것들을 구입해 분사하고 습기제거제를 몇개나 깔았다. 모자란 실내건조를 위해 창문을 열어 환기시키고 드라이기로 뜨거운 바람까지 씌워주는 요즘이다. 



필요했다. 그러나 몰랐다. 나를 둘러싼 공간에도 노력이 필요하단걸. 

책상에서 대각선으로 보이는 그 흔적들에 내삶을 잠식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만히 있으면 변하지 않으면 내삶에도 곰팡이가 생겨날 것만 같았다.

사람의 관계에서도 곰팡이가 생긴다. 당연하게 나의 일부라 여겼던 사이일 수록.  

이제는 알 것 같다. 지금 내게 다가온 것. 이별이 필요한 타이밍. 





그런 사람들이 있다. 나쁜 사람은 아닌데 대놓고 나를 공격하고 비난하진 않는데 그래서 더 웃으며 거침없이

아픈 말들을 하는 사람. 결정을 내리는 상황에서 거절의사를 표현하면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너한테는 내가 중요하지 않나보다. 내가 그것밖에 안돼?" 대안이나 협의점을 찾기보다 우선순위 세우기를 원했다. 이거 아님 저거. 극단적인 물음으로 나를 몰아세우는 사람을 볼때면 당혹스럽고 불편하다. 처음엔 응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하다가 내가 정말 그사람을 그렇게 밖에는 생각하지 않는걸까 불안한 마음으로 나를 검열하기도 했었다. 


어느날인가 나는 용기내 되물었던 적이 있다. 내가 아프길 바라냐고. 이 선택을 내리는 과정이 나는 매번 힘들고 괴로운데 그럼에도 강요하는 너는 내가 아팠으면 좋겠느냐고. 그렇게 물어봤을 때쯤 어렴풋이 나는 느끼고도 있던 거 같다. 너와 나사이, 건강한 관계에선 어느 한쪽에게 일방적인 모양은 없다고. 누군가 힘들어 하는 걸 보려고 말과 마음을 주고 받기 시작한 건 아니니까. 한쪽이 아픈 관계를 친구란 이름으로 방치하는 건 정당하지 못하다고. 


나랑 같이 보낸 시간이 있는데, 즐겁고 좋았던 추억도 있었는데, 나에게 필요할 지도 모르는 사람인데... 한사람을 끊어낼 수 없는 많은 이유들이 존재한다. 그럴 수도 있지, 어떻게 좋을 때만 있겠어 모든 일에도 명암이 존재하니까 다시 나를 둘러싼 익숙한 사람들에 안도한다. 그렇게 참고 넘기다 정작 내 안부는 묻지 못했다. 그 사람이 소중하다고 해서 나를 소홀히 하진 않았는지. 기꺼이 하지 못하는 감내가 눈덩이로 불어나 나를 밀고 있진 않은지. 끝까지 좋은 사람으로만 남고 싶은건 아닌지.           




곁에 머무른 다고 해서 나를 아프게 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날이 더워지면 반팔을 입는게 당연한 것일 수 있겠지만 팔에 흉터가 있는 사람들에겐 여름은 피하고 싶은 약점이 된다. 별일 아닌듯 입는 짧은 소매의 옷이 누군가에겐 매번 고민과 상처를 마주하는 시간이 된다. 내가 약해지는 순간을 자꾸 끄집어 낸다면 그 순간을 피하는 건 결코 내가 나약해서가 아니다. 내가 나를 아프지 않게 하는 건 본능적인 거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나를 아프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상처가 나서 피가 흐르면 우리 몸속에선 부르지도 않았던 백혈구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딱지를 만든다. 염증이 생기지 않도록.                                              .        


꾹 참다가 한겨울 맹추위에 sos를 보내온 내방의 벽처럼 늘 잡고 있어서 놓기 어려웠던 사람들의 손이 이제는 말을 걸어오고 있는 거 같다. 수고했다고. 아프다면 이제 놓아도 괜찮다고. 끝을 낸다는 거 참 어려운거 같다. 유지하는 힘보다 끝내는 힘에는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숙제를 빨리 끝내고 느긋하게 아이스크림을 먹던 시기는 많이 지나서. 일등으로 뛰었다고 도장을 찍어주는 이도 이제는 없어서. 빨리 보다는 잘. 새해에 나는 끝으로 잘 걸어가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키스신 없는 드라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