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룽지가 생각나는1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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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기로운 민정


오늘 저녁은 누룽지를 끓여서 숭늉을 따끈하게 먹고 싶어졌다. 마침, 누룽지가 있다. 누룽지랑 쌀뜨물을 끓이면 뽀얀 국물이 구수함의 극치점을 달려간다. 전기밥솥에 밥을 하면 밥은 맛있게 되지만 누룽지는 없다. 굳이 만들지 않아도 시중에서 판매된다. 더 구수한 누룽지도 많아서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맑은 물에 누룽지를 끓여도 누룽지에서 나오는 구수함이 있어 좋다. 쌀 씻은 물을 버리지 않고 받아서 누룽지랑 끓이면 눈으로 구수함을 먹고, 입으로 또 한 번 구수함을 먹을 수 있다. 밥 대신 누룽지로 요기를 채우는 것도 좋지만 누룽지를 튀기면 맛 좋은 간식이 된다. 과자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누룽지를 튀겨서 설탕을 뿌려 먹으면, 세상에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간식이 된다. 누룽지는 밥 하면서 조금만 신경 쓰면 만들 수 있어 엄마가 잘해주셨다. 누룽지 튀김은 큰마음 먹고 해야 하기에 바쁘다는 이유로 늘 다음이 되어버렸다. 기다리다 지쳐 들에 일 가신 틈을 타서, 식용유를 꺼내서 튀겼다. 식용유 양을 못 맞춰서 지나치게 많이 쏟아붓고 튀겼다. 설탕을 뿌려서 밖에 나가 친구들과 나누어 먹었다. 어렸다 보니 튀김은 겨우겨우, 어찌어찌했지만 치우는 것은 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버렸다. 식용유와 설탕가루와 그릇들이 제 맘대로 굴러다니고 난장판을 만들었지만 내 눈엔 보이지 않았다. 쓰나미가 집어삼키고 간 자리 같은 부엌을 보고 얼마나 기겁을 하셨을지 지금은 알 것 같다. 고소 달콤한 누룽지를 들고나가서 친구들과 나누어 먹고 신나게 놀다가 들어갔다. 부엌에서 저녁 상 차리느라 바빠 잔소리할 틈이 없어 슬그머니 지나갔음을 이제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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