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강의# 백백글쓰기#14기#만보
오랜만에 만보를 걸었다. 운동을 잘하지 않아서 걷기라도 해 보려고 늘 마음은 먹고 있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요즘은 춥다는 이유로 방구석 1 열에 자리를 잡으면 꼼작하기 싫다. 버스를 타고 30여 분을 가야 하는 거리를 걸어가 보기로 했다 왕복 1시간여를 걸으면 만보가 될듯하다. 바람이 매워서 몇 겹의 옷을 껴 입고 눈만 빼고 모두 가리고 대문을 나섰다. 너무 많이 껴입었는지 몸이 기우뚱한다. 걷기 10여 분 만에 지나치게 두껍게 입은 사실을 후회했다. 다시 되돌아갈 수는 없으니 기우뚱기우뚱 거리며 추운 것보다는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위안해 본다. 거리는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겨진 가로수가 줄을 지어 걸어와 반겨준다. 무성했던 나뭇잎들은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도시가 텅 빈듯한 느낌이 든다. 떨어진 나뭇잎 자리에 겨울눈이 돋아나 있다. 나처럼 몇 겹의 껍질을 두르고 봄을 기다리고 있을 새싹들을 생각하니 찬 바람이 맵지 않다. 곧 봄이 올 것만 같다. 걸어서 상승되는 체온 덕분인지, 두툼한 보온의 효과인지 춥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래도 코끝을 스치는 찬바람은 겨울답다. 만보를 채우고 집에 들어가겠다는 목표가 괜스레 돌아가는 길을 선택하게 한다. 추워서 걷기 싫어 지름길을 선택했던 내가 아니다. 해야 할 일은 그저 핑계일 뿐 만보가 목적이다. 앞만 보고 걷는 것이 아니라 주위도 둘러보고 생각도 하면서 느긋함을 즐겨본다. 머리 위로 부서지는 햇살이 따사롭다. 이 계절에 햇살이 귀하게 느껴진다. 햇볕을 피해 다녔던 날들이 무색하게 한다. 땀은 나지 않지만 춥지 않아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