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입맛 때문에 100-39
#책과강연#백백글쓰기#14기#토종입맛
20여 년 전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갔다. 예약된 비행기 좌석을 찾아갔더니 낯선 할머니께서 앉아계셨다. 표와 좌석번호를 번갈아 보면서 좌석을 확인했지만 할머니께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뒤늦게 나를 발견하시고는 처음 비행기를 타셔서 창가에 앉아서 가고 싶다고 하신다. 나에게 선택권은 주지 않고 당신 의지만 표현하셨다. 당황했지만 연세 드신 분이 그러겠다는데 안된다고 할 수가 없었다. 얼떨결에 옆좌석에 앉았다. 창가 쪽 좌석을 배정해 달라고 미리 여행사에 부탁해 두었다. 긴 시간 비행기를 탈 자신이 없어서 부탁한 특별한 좌석이 무색해졌다." 할머니도 미리 창가 쪽을 부탁하셨으면‥. 일행도 이 비행기 안에 있을 텐데‥. 아쉬움이 쉽게 내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비행기가 이륙하는가 싶더니 창공을 비행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할머니는 창문 너머 풍경에 눈을 떼지 못하고 감상하시며 좋아하셨다. 처음 본 할머니지만 웃는 모습에 내 마음도 샤르르 풀렸다. 슬쩍슬쩍 창문 너머 풍경과 구름을 감상하며 여행에 대한 설렘을 만끽했다. 점심은 기내에서 현지식으로 준비됐다고 한다. 메뉴는 다양하지 않았다. 입맛이 토종이라서 김치와 쌈, 그리고 된장 없는 식단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메뉴판을 뚫어지게 봐도 토종인 입맛을 당기는 메뉴는 없다. 아무리 봐도 느끼한 생선 밖에 안 보인다. 무엇을 먹어도 느끼할 것 같다. 그 어떤 것도 맛있을 것 같지 않다. 고민 끝에 생선요리를 선택했다. 할머니도 한참을 고민하시더니 같은 메뉴를 선택하셨다. 식사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콧구멍만 한 고추장을 한 개씩 준다. 할머니는 받자마자 인상을 구기시며 나에게 주신다. 당신은 전라도 순창에서 오셨다고 했다. 평생을 고추장을 담가서 드셨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목에 힘이 가득 들었다. 고추장에 대한 대단한 자부심이 서려 있다. 당신이 담근 고추장이 아니면 절대로 안 드신다고 했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고추장은 고추장도 아니라면서 손사래까지 치며 거절하셨다. 고추장을 받자마자 나에게 주셨다. 가지고 있으면 쓸 일이 있겠다 싶어서 '감사하다'라는 인사와 함께 받아서 주머니에 챙겨두었다. 식사가 나왔다. 엄청 큰 생선이 쪄서 나왔다. 고등어도 느끼해서 김치에 싸서 몇 점도 겨우 먹었던 나다. 고등어보다 큰 생선에 놀랐다. 두 번 찍어 먹었는데 김치가 생각나고 된장국물이 생각났다. 샐러드라도 있으면 싸 먹고 싶었다. 향신료향은 식욕을 감퇴시키고 배는 더 고프다. 먹으면 먹을수록 칼칼한 맛이 그리웠다. 화물칸으로 보낸 가방 속 장아찌 한 점이 아쉬웠다. 불현듯 받았던 고추장이 생각났다. 생선 살을 찍어 먹으니 살 것 같았다. 고추장 양이 너무 적어서 아쉽다. 힐끔힐끔 나를 향하는 할머니 시선이 느껴졌다. 할머니께서 주셨던 고추장을 다시 드렸다. 반갑다는 듯이 재빠르게 가져가셨다. 고추장에 찍어서 너무 맛있게 드신다. 조금 전에 온몸으로 거부하셨던 모습이 불현듯 떠올라 웃음이 삐져나왔다. 포장지에 묻은 고추장까지 핥아 드시고도 아쉬워하는 모습이 폭소를 자아냈다, 차마 크게 웃을 수 없어 허벅지를 꼬집으며 홀로 참아야 했다. 할머니께서도 나와 같은 토종 입맛이셨다. 그때는 몰랐다. 넉넉하게 추가시켜도 된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