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필 한 100-40

by 향기로운 민정

모임에서 처음 알게 된 친구가 있었다. 서로 좋아하는 것을 물으며 공감을 찾고 있었다. 책과 글을 좋아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대뜸 자기는 '절필' 했다 한다. '절필"이라는 전문 용어를 듣는 순간 글을 전문적으로 썼던 작가라고 생각했다. 어떤 일이 있었기에 절필을 했는지, 그 사연에 궁금증이 슬쩍 고개를 들었다. 잔뜩 차오르는 나의 호기심이 가까스로 숨겨둔 아픔에 다시 상처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차마 묻지 못하고 있는데, 내 표정을 읽었는지 그 사연을 알아서 풀어놓는다.


중학교를 다니던 어느 가을날이었다고 한다. 국어 숙제가 "시 작문"이었단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가방만 던져놓고 신나게 놀았다는 그. 놀다 보니 저녁이 되었고 밥까지 먹고 나니까 졸린데 숙제가 생각났다고 한다. 갑자기 시를 쓰려고 보니 아무 생각도 안 났단다. 숙제는 해야겠는데 머리는 마비가 된 듯, 아무리 쥐어짜도 '시'는 나오지 않았다는 그. 잠은 밀려오고 숙제를 빨리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숙제라는 형식에 장난스러움이 더해져서 노트에 쓴 시가 바로 가수 이문세님의 노래'시를 위한 시'라고 했다. 노랫말이 시처럼 예쁘고 좋기로 유명한 노래다. 마침 라디오에서 흘러 나외서 노트에 베껴서 냈다고 한다. 유명한 노래니까 선생님이 바로 알아보실 줄 알았던 모양이다. 문제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의 작품 '시를 위한 시'가 최우수 작품으로 선정이 되었다고 한다. 보다 더 큰 문제는 그 시가 시화로 꾸며져 학교 축제 때 전시된다는 천천 병력 같은 소식이었다고 한다. 그 후로 그 맛있던 밥이 맛도 없고 장난기 빠진 그는 밤잠도 스칠 만큼 고민이 생겼다고 한다. 사실을 이야기해도 죽도록 맞을 것 같고 사실을 말하지 않아도 사실이 드러나는 일은 시간문제고 장난으로 숙제를 했다고 죽도록 맞을 일은 '뻔할 뻔'자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단다.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죽도록 맞을 일만 남았는데 맞을 용기가 없었단다. 혼자 가슴앓이만 하고 말도 못했다는 그. 축제는 성큼성큼 다가오고 시화전은 준비 들어가기 직전이고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고 한다. 벙어리 냉가슴 앓듯 망설이고 있을 때쯤 ,보다 못한 친구가 실토를 해버렸단다. 대중가요를' 시'라고 속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선생님은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단다. 머리끝까지 화가 난 선생님은 그를 앞으로 불러내셨다고 한다. 예상대로 몽둥이로 엉덩이를 맞았다고 한다. 죽기 1보 직전까지 맞았던 그는 그 이후로 '절필'을 했다고 한다.


30년이 지났는데도 잊히지 않은 그날 이후 절필했다는 그의 말에 웃음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절필'이라고 해서 글을 전문적으로 써 왔을 것이라고 혼자 단정 짓고 기대했다가 살짝 허무하기도 했지만 풋풋하고 귀여운 소년의 모습을 본 것 같아 재미가 풍부했던 이야기였다. 언젠가 그 상처가 아물면 다시'시'를 쓰고 싶다는 그의 능청스러움에 풋풋한 소년이 엿보인다. 지금쯤 그는 시를 잘 쓰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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