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불을 100-41

#책과강연 #백백글쓰기 #14기#군불

by 향기로운 민정

TV 속 기상 캐스터는 한파가 며칠째 계속된다고 외치고 있다. 방안 온도를 높이기 위해 가볍게 보일러 버튼을 몇 번 누르면 방안은 금방 후끈후끈 해진다.

어릴 적 우리 집은 나무로 불을 지펴서 방안 온도를 높이는 온돌방이었다. 오늘처럼 견디기 힘든 추위가 몰아치는 날이면 어김없이 군불을 지펴야 했다. 군불은 특별히 정해진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 내 차지가 되었다. 온돌방은 천천히 데워졌다. 그러나 웃풍 탓인지 너무도 쉽게 식어버렸다. 군불을 지폈던 시간과 노력이 덜 무색하게 방바닥엔 늘 이불을 깔아 놓았다.

방을 식지 않게 하기 위해 아궁이에 불을 오래도록 타게 해야 한다. 마지막에 굵은 통나무에 불이 붙여질 때까지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적당한 불쏘시개와 적당한 바람구멍을 만들어줘야 한다. 아궁이 앞을 지키지 않아도 잘 태워지게 해야 한다. 불의 깊이도 중요하다. 아궁이 안 너무 깊숙이 밀어 넣으면 온기가 굴뚝으로 빠져나가고 너무 얕으면 솥단지 안에 물만 끓일 뿐 방이 뜨거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군불이 너무 세면 방바닥이 타버릴 수도 있으니 지나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그 알맞음을 맞추기 위해서는 많은 경험치가 필요하다. 저녁에 군불을 잘 지펴야 아침까지 따뜻하게 잘 수가 있다. 그 군불은 중요한 일이다. 군불을 지피면 탐스러운 숯불이 많이 생긴다. 숯불을 보면 무엇인가를 구워야 할 것 같은 본능이 일렁인다. 절편이나 가래떡, 고구마나 감자, 밤도 좋다. 탐스러운 숯불에 고구마를 굽겠다고 설치면 잔소리는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잔소리를 이기고 고구마를 굽는다. 달콤하고 구수한 맛의 대가로 새벽녘의 추위로 이불 싸움을 예약해야 했다.


나무로 군불을 지피는 것이 일반적이라면 벼 껍질인 겨로 군불을 지필 수도 있다. 가을걷이를 끝낸 벼를 방아를 찧으면 쌀이 나오고 겨가 남겨진다. 쌀 양보다 더 많은 부피의 겨를 집으로 가져와서 불을 지폈다. 겨를 태우려면 풍로가 필요했다. 풍로로 바람을 공급해 줘야 잘 탄다. 겨는 겉으로 보면 잘 타는지 안 타는지 알 수 없다. 속으로 활활 타고 있어도 겉으로는 안 보인다. 엎드려 아궁이 속을 살펴보면서 부지깽이로 뒤적이면 불꽃이 갑자기 아궁이 밖으로 나올 수도 있다. 빠르게 피하지 못하면 그 불꽃에 앞머리도 태워 먹고 눈썹도 태울 수 있다. 군불을 지핀다는 명목으로 불놀이를 할 수 있어 좋았다. 불놀이가 세상 재미있는 놀이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절필 한 10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