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판 위에서 100-42

#책과방연#백백글쓰기#14기#빙판#얼음판

by 향기로운 민정

얼음판 위에서 축구를 해봤는가!

이렇게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는 계절,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 한 점에도 파르르 느껴지는 한기에 이불 속을 찾고 싶다.


혈기 왕성한 20대는 황소바람에도 아랑곳 안 하고 밖에서 놀았다. 우르르 함께 몰려다니는 건 수가 많았다. 차를 타고 가다가 얼음이 얼은 호수나 냇가를 만나면 무조건 멈추었다. 계획에 없어도 즉흥적으로 놀다 갔다. 맨 앞에 가던 차가 멈추면 자연스럽게 뒤차들도 멈추었다. 빙판 위에서 한바탕 놀다 가려는 심상이었다.

먼저, 주변에서 돌이나 깡통을 구해 온다. 운동을 잘하는 남자친구들 기준으로 두 팀을 만든다. 가위 바위, 보도하지 않고 대충 편을 가른다. 뛰는 선수들 수는 아무 의미 없다. 서로 다치지 않는 수준에서 무엇이든 허용된다. 반칙이 난무한다. 적당한 이름이 없어 축구라고 부를 뿐이다. 대부분 남자친구들은 돌멩이를 차는데 집중하지만 여자친구들은 반칙하기에 바쁘다. 못 가게 잡아도 되고 속력을 못 내도록 가는 길을 가로막고 알짱거려도 된다. 빠르게 달려가는 친구 옷자락을 잡아도 된다. 체력이 뛰어난 남자친구들을 여자친구 2~3명이 에워싸서 진행을 막아도 상관없다. 얼음판 위 돌멩이는 살짝만 차도 저 멀리 도망가 버린다. 돌멩이를 쫓아가는 상대방 남자친구를 붙잡으라고 여자친구들에게 코치한다. 여자친구들은 돌멩이를 쫓는 것이 아니라, 발 빠른 남자친구가 표적이 되어 우르르 따라다니기 바쁘다. 옷을 잡고 앉기도 하고 썰매 태워 달라고 조르기도 한다. 남자 친구들은 힘으로 뿌리치고 앞으로 나갈 수도 있지만 여자친구들이 다칠까 봐 포기한다. 상대팀 남자친구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난감해한다. 포기하는 틈을 타서 돌멩이를 쫓아가는 같은 편 남자친구들, 역시 상대팀 여자 친구들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돌멩이는 덩그러니 놔두고 우리끼리 엉켜서 허우적거리며 웃느라 정신이 없다. 축구라고 부르지만 돌멩이는 몇 번 못 차고. 반칙이 난무하는 몸싸움이 더 많다. 바닥이 미끄러워서 제대로 걷지도 못해서 엉거주춤 걷는 모습만 봐도 웃기다. 안 넘어지려고 옆친구 잡았는데 같이 넘어지면 더 웃기다. 여기서 꽝!, 저기에서도 꽝! 넘어지는 광경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다. 넘어진 친구를 일으켜 세우려고 손잡아 주다가 같이 넘어져 그대로 주저앉아서 폭소 자아냈다. 웃음이 많은 나는 놀이는 뒷전이고 배꼽 잡고 웃느라 바빴다. 가끔, 잡은 옷이 찢겨서 난감한 상황을 자아내면 한바탕 웃고 시작했다. 이래저래 우리들 웃음소리와 이름 부르는 목소리가 청아한 창공을 들썩였다. 돌멩이 보다 깡통은 소리까지 내서 또 다른 맛이다.

결국 발로 차는 것은 남자친구들 몫이고 여자친구들은 더 많은 반칙으로 방해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어쩌다 한 골인은 기적과도 같은 일,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었다. 놀이에 지나치게 열중하다가 자기 편도 잊은 채 같은 편을 방해하는, 그 엉뚱한 매력에 또 웃는다. 그 엉망진창인 놀이가 한 겨울 동장군도 이겨서 땀을 흘리게 했다. 열심히 뛰어다니다가 시간을 잊는다. 돌멩이를 호수 중앙 쪽 깊숙이 온 힘을 다해서 차버린다. 축구 놀이를 끝낸다는 메시지다. 누군가 한 사람이 맥을 끊어야 비로소 몸싸움이 마무리된다. 체력이 방전되었거나 시간이 많이 지났다는 의미다.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미련 없이 끝낸다.


그토록 추위를 이기며 뛰었도 피곤함에 젖어드는 것이 아니라 더 개운했던 20대 젊은 혈기가 그리운 나이가 됐다. 대단한 도구가 아니어도 특별한 장소가 아니었어도 우리들의 청춘은 얼음판 위에서 돌멩이 하나만으로 열정의 도가니였던 그해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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