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즈음 100-43

#책과강연#백백글쓰기#14기#크리즈마스

by 향기로운 민정

어둠과 함께 눈이 내린다. 눈이 오는 밤은 그림 같은 풍경을 자아낸다. 새하얀 눈으로 덮인 세상에 반짝이는 트리와의 조화로움이 정겹다.

인터넷이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에는 크리스마스카드 쓰기에 바빴다. 12월이 되자마자 캐럴송을 들으면서 크리스마스카드 고르는 것도 중요한 일과였다. 예쁨과 멋스러움을 뽐내며 진열대 위에 나란히 나란히 앉아 있었던 카드. 그 많은 카드는 그림이나 사진은 중복이 없을 만큼 다양했다. 한 번에 선택할 수 없어 한참 동안을 돌고 돌고, 보고 또 보았어도 선택을 망설였다. 저마다 다른 디자인을 구경하며, 하나씩 선택하는 재미에 푹 빠져 시간도 잃어버렸다. 보낼 사람을 생각하면서 카드를 선택한다. 그 사람과 잘 어울릴 것 같은 이미지를 선택한다. 내가 좋아하는 취향과 그 사람이 좋아할 것 같은 디자인 사이에서 마음이 방황할 때도 있다. 개구멍에 쥐방울 드나들듯, 카드를 사기 위해 문방구에 드나들면서 준비하는 마음도 즐거웠다. 종교와 상관없이 한 해를 마감하면서 친척 어른들께, 사촌들에게, 친구들에게,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냈다. 용돈을 모아서 짬짬이 사 모은 카드가 100여 통이 됐다. 봉투에 크리스마스 씰도 붙이고, 우표도 붙이고, 주소를 써놓는다. 그 많은 카드 내용은 똑같이 쓰지 않았다. 영혼 없는 인사가 아니라 정성을 다해서, 받을 사람을 생각하면서 진심으로 써서 보냈다. 그러다 보니 12월은 크리스마스카드를 사고, 쓰면서 대부분을 보냈다. 같은 반 친구나 가까운 친구들은 직접 전해주었다. 학교 친구들에게 전해 주기 위해 새벽 일찍 학교에 갔다. 친구들이 오기 전에 책상 서랍에 넣어놓고 설레며 친구를 기다렸다. 카드를 읽고 좋아하던 모습을 지켜보며 웃음 짓다가 눈 마주치며 함께 더 크게 웃었던 모습이 그립다. 내가 보낸 카드에 감동받은 사람들은 신년 카드라도 급하게 써서 보내왔다. 답장에 기쁨이 넘쳐흐르던 친구의 필체가 아득하게 느껴진다.


겨울에 눈 덮인 세상은 크리스마스카드 앞면 사진 같다. 빛나는 트리와 깜깜하고 고요함이 느껴지는 분위기, 비슷비슷한 분위기지만 똑같지 않은 풍경들. 이지적이면서 동화적인 포근함이 느껴지는 눈 오는 밤을, 그래서 정감이 더 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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