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100-45

# 책과강연 #백백글쓰기# 14기#어쩔

by 향기로운 민정

휴대폰이 어느 시간이 지나면 꺼진다. 켤 때마다 비번을 누르고 들어가야 한다. 문자와 숫자 4 자리까지. 문득 번거롭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은 매번 그러했지만 기계치다 보니 변경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 불편함을 견디는 쪽을 선택했다. 갑자기 변심을 해서 핸드폰 설정에 들어가 비번을 지문으로 등록한다. 지문을 등록했는데도 그대로 비번을 입력하라는 창이 뜬다. 무슨 일인가 다시 들어가 안내 메시지를 확인하면서 변경했지만 바뀌지 않은 것 같다. 지문인증을 안 해도 들어갈 수 있고 비번도 없이 들어가진다. 이번에는 너무 헤퍼 보여서 마음에 안 든다. 시간은 자정을 넘었고 잠이 우선인듯하여 그대로 두고 꿀잠 모드에 들어갔다.

알람 소리에 눈을 뜨고 핸드폰이 궁금했다. 들어가지지 않는다. 비번을 누르라고 해서 비번을 눌러도 안된다. 아침부터 부랴부랴 서비스점을 찾아갔다. 원인은 서비스 기사도 모른단다. 비번을 무시하고 휴대폰을 들어가려면 정보가 모두 날아가 버린다고 한다. "저‥정보란 ‥ 어떤 것들을 말 ‥할까요...?" 몹시도 당황스러워 넋을 잃고 질문한다. 톡. 문자. 사진. 앱. 그리고‥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는 주소록이란다. '하아~ 어쩌란 말이냐 이 아픈 가슴을~' 찰나에 스치는 건 어느 대중가요의 노랫말이다. 참담한 내 마음을 잘 이해해 줄 것 같은데 더 슬퍼진다. 애써 마음을 추스르고 정리해 본다. 그래. 그래. 괜찮다. 괜찮아. 그러면서 사는 거지 뭐. 태연한 척 보이려고 애써봐도 날아가는. 훨훨 날아가 버리는 나의 추억이 아쉽고 아쉬울 뿐이다. 다른 건 다 용납해도 전번을 잃어버릴 것을 생각하니 마음까지도 헛헛 해진다. 서비스 기사에게 복구 방법이 없냐고 묻는다. 다른 저장 파일에 백업하지 않았으면 없다고 한다. 이래도 아쉽고. 저래도 아쉬움만 남는다. 마음이 아프다. 영화처럼 필름을 감아서 어제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휴대폰이 마비가 되니 나의 소통도 막혀버렸다. 답답하고 불안하다. 하필 오늘 약속도 있는데 걱정이 되지만 연락할 방법이 없다. 톡에 친구 목록도 저 멀리. 훨훨 날아갔을까 봐 마음이 급하다. 텅 빈 휴대폰을 잡고 집에 가는 길이 멀게 느껴진다. 30여 분 동안 버스를 타고 오는 길에 서툴지만 휴대폰 앱을 복구해 본다. 쉽지 않은 이놈의 기계치. 구글 아이디도 비번도 생각나지 않는다. 어찌어찌해서 들어갔다. 톡 대화 내용은 사라졌어도 친구 목록은 남아 있다. 감사하다. 졸아든 가슴이 조금 느슨해진다. 약속한 사람을 톡에서 찾아 사정 얘기하고 전화번호 받아서 종이에 적는다. 혹시나에 대비해 놓는다. 이 난감한 상황에서 나를 도와줄 사람을 찾는다. 전화번호를 찾는 법을 물으니 예전 아이디로 로그인하면 복구가 된단다.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보았다. 지금 나는 새로운 아이디. 새로운 비밀번호로 로그인되어 있다. 빠져나가는 방법을 모르겠다. 고객센터 상담원과 1시간여를 통화해도 해결이 안 된다. 상담원이 이야기하는 창이 내 휴대폰에는 안 나와서 서로 난감하고 서로 답답하고 서로가 죄송해서 몸 둘 바 모르다가 끝맺었다. 내가 상담원과 실랑이하는 사이에 친구가 답을 찾았는지 결과를 보내왔다. 친구가 같은 화면을 열고 내 아이디랑 비밀번호 찾는 중이라서 내 휴대폰에는 창이 없었나 보다. 친구가 찾아준 예전 아이디로 로그인하니 주르륵 올라오는 전화번호들이 반갑고 반갑다. 버선발로 마중 나가는 심정으로 주르륵 목록을 살펴본다. 제대로 올라왔음을 확인하니 안도감에 눈물이 핑 돈다. 8시간 동안 나를 감금시켰던 휴대폰 덕분에 10년은 늙은듯한 이 피로감 ‥ 어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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