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총을 100-55
#책과 강연#백배글쓰기#14기#새총
우연히 TV를 보다가 새총으로 새를 잡는 아프리카 아이들이 반갑다. 새총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의 배경으로 주인공이 인터뷰한다. 클로즈업된 주인공 보다 뒤에 새총에 시선이 꽂힌다. 내가 만들었던 새총을 가지고 노는 이이들 표정이 해맑다. 그 아이들이 반갑다.
겨울이 시작되면 동네 아이들은 새총을 만들었다. Y자형 나뭇가지를 구하러 가려고 모였다. 무리를 지어서 조금 더 먼 산으로 가야 좋은 가지를 구할 수 있다. 대부분 오빠들이다. 새총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따라가겠다고 했지만 모두가 거부한다. 먼 산까지 데리고 가기엔 너무 연약한 아이였다. 데리고 가면 성가실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따라가겠다고 우기고, 안 데리고 가려고 버티는 오빠들을 기어이 이겨 먹고 따라갔다. 우여곡절 끝에 꽤 괜찮은 Y자형 나뭇가지를 얻어서 돌아왔다.
가장 중요한 노란 통고무줄이 필요했다. 사러 가자니 돈이 필요하고, 엄마한테 얘기해도 씨알도 안 먹힐 것이 분명하다. 어렵게 구한 나뭇가지에 검정 고무줄은 용납이 안된다. 고무신을 자른 고무는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다.. 또래 친구들보다 품격을 높이고 싶다. 무조건, 꼭, 노란 통고무 줄이어야 한다. 안방을 서성이며 고민하고 있는데, 막냇동생이 엉금엉금 기어서 나를 향해 오고 있다. 기저귀만 찬 채로 엉덩이를 하늘로 치켜들고 활짝 웃는다. "노란 고무줄 여기 있지롱~ᄒ" 이렇게 얘기하고 있지 않은가! 너무 반갑다. 망설일 이유가 없다. 동생 허리춤에 묶여 있는 노란 고무줄을 냉큼 푼다. 이제는 총알받이가 필요하다. 노란 통고무줄에 검정 고무는 용납할 수 없다. 가죽이 필요하다. 가죽이. 방 안을 둘러본다. 벽에 아버지 바지가 걸려있다. 서울이나 시장 가실 때 입는 양복바지에 가죽 혁대가 있다. 안성맞춤이다. 너무 좋아서 앞뒤 생각 없이 필요한 만큼 혁대를 가위로 댕강 자른다. 새총 만들 재료를 다 갖추어서 엄마가 안 보이는 동네 공터로 갔다. 새총은 힘이 부족한 내가 만들기에는 무리다. 새총을 잘 만들어 줄 것 같은 동네 오빠들을 탐색한다. 대문이 없는 집도 많았다. 나이 상관없이 마당에 모여서 놀았다. 어느 집이든 들어가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집에 있음을 발견하고 새총 만들어 달라고 준비한 재료를 내민다. 아무 의심 없이 동네 오빠는 고무줄을 자르고 Y자형 나무에 고정시킨다. 직사각형 가죽은, 불로 지진 못으로 구멍을 뚫어서 고무줄을 연결하면 완성. 상상한 대로 품격 있는 새총이 완성됐다. 가늘고 비뚤어진 나뭇가지에 검정 고무줄, 검정 고무신을 잘라서 만든 새총과는 비교 불가다. 명품 새총 주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완성된 새총을 들고 아이들이 모여 놀고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내 새총을 보자마자 서로 쏴본다고 아우성이다. 골고루 한 번씩 다 사용해 보도록 인심 쓴다. 다들 좋다고 하고, 부러워하는 기분을 만끽한다. 가죽에 작은 돌멩이를 안착하고 고무줄을 당겨서 쏘아 올린다. 시원한 소리와 함께 날아가는 총알을 보며 희열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