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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기로운 민정 Feb 03. 2024

인형옷을  100-83

#책과 강연#백백글쓰기#14기#인형#옷

잠을 자려고 외출복을 갈아입은 초등 6학년 조카 모습이 능청스러워 호탕한 웃음을 자아낸다. 옷이 왜 이렇게 크냐는 물음에 상의는 아빠 반팔 티를, 하의는 엄마 반바지라고 무덤덤하게 얘기한다. 남들과 다름을 추구하고 옷에 관심이 많은 아이다. 예쁘거나 귀여운 옷을 입을 것이라는 예상을 뒤집었다. 1cm 부족한 180cm인 아빠 옷이 편안하다  배시시 웃는다. 평범함을 거부하는 내 취항을 닮은 듯하여 마냥 귀여워 꼬집어 주고 싶다.


엉금엉금 네다리로 걸을 때부터 우리 집에 오면 내 방부터 들어온다. 어느 정도 소통이 될 즈음되면서 행거에 걸려 있는 모든 옷을 다 입어 보기를 원다. 처음에는 세 살 위 언니를 따라 하려는 호기심에 지나지 않았다. 나의 길이가 짧다 보니 다리길이가 우월한  아이들이 입어도 길이는 무난하다. 허리 사이즈만 옷핀으로 고정해서 입어도 귀여움의 끝판 왕이다. 옷장 깊숙이 있는 옷까지 골고루 수없이 입었다 벗기를 반복한다. 그 어떤 놀이보다 좋아한다. 색깔도 화려하고 디자인도 다양한 나의 옷은 호기심을 자하기에 충분하다. 세 살 위 언니를  따라 하다가 당연한 일이 되다 못해 필수되었다.


어쩌면 인형같이 귀엽고 예쁜 아이들에게 내 옷을 더 적극적으로 입혀주며 즐거워했던 건 나였는지도 모른다. 어릴 적에 마루 인형이나 종이 인형에게 옷 갈아입히며 놀았던 것처럼, 작고 인형처럼 이쁜 아이들에게 내 옷을 입혀주며  개성이 독특한 패션을 연출하면서 더 즐거워했다.

반팔 소매에 허리가 좀 긴 티를 입히고 벨트를 채워주면 아이에겐 원피스가 된다. 7부 레깅스로 패션을 완성시킨다. 볼레로는 아이들에게 허리까지 내려와서 앙증맞은 모습이 연출된다. 미니스커트는 옷핀으로 고정하면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럴싸하다. 이렇게 저렇게 인형 옷 갈아입히듯이 상식을 깨트려가면서 다양하게 입히면서 더 많이 웃는다. 셋이서 옷장에 있는 모든 옷으로 옷 갈아입히기 놀이는 심심함을 잊게 한다.


언젠가부터는 집에서 가져온 옷이 오염이 묻어 더 이상 입을 옷이 없을 때도, 갑자기 추운 날씨에 밖에 나갈 때도, 내 옷을 아무렇지도 않게 입는다.

아예 잠옷을 챙겨 오지 않고 내 옷을 입을 생각을 하고 툴레툴레 오기도 한다.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옷을 입으면 맵시가 도드라져서 더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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